증명과 변명 / 심리학관
우진은 자신이 삼수 당시에 스트레스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것은 고3 때부터 계속된 문제였고,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고 계속 쌓이다가 삼수 때 병으로 완전히 터진 것이다. (p102)
그는 취미도 특별히 없었다. 음악을 듣는 것도 아니었고, 드라마를 보는 것도 아니었고, 게임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었다. 재수 때 주로 국어 공부에서 비롯된 강박이 삼수 때 불안과 우울로 이어졌는데, 그 과정에는 우진의 신앙도 영향을 끼쳤다.
그는 술이나 연애처럼 수험 생활의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는 선택지들을 말했지만, 그것을 하지 않은 이유로 수험생으로서의 윤리와 자신의 신앙을 언급했다. 그는 신앙을 이유로 '금욕주의 생활'을 선언했고, 그는 삼수의 실패 원인을 여기서 찾았다. (p103)
금욕주의 생활이 삼수를 위한 과정이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표가 되면서, 오히려 수험 생활에서 적절히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안들이 사라졌다.
설령 그 방안들을 실제로 실천하지 않았더라도, 금욕주의 때문에 그것을 향한 욕망마저 부정해야 했다. 그 결과가 불안, 우울, 강박이었다. (p104)
가장 큰 문제는 우진이 수험 생활 중에 자신이 힘들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제대로 털어놓은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자신이 힘들다고 남들에게 말하는 것이 민폐일 것이라는, 남에게 피해를 주기 싫다는 그의 일관된 태도와 관련된다. (p106)
(우진) "내가 그걸 말하는 게, 징징대는 것 같았어. 징징대는 거 싫어. 가족은 '네가 선택한 거 아니냐'. 그러니까 우리 가족이 약간 그게 있다?
우리 가족 입장이 누칼협('누가 칼들고 협박했냐?')이야. 그러니까 이거. 정확히 악깡버야. 네가 선택한 삼수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p107)
강박과 불안이 우울이 되는 과정에는 중요한 요소가 하나 더 있었다. 우진은 수험 생활이 끝난 다음에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그런 걸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수능만 끝나면' '대학만 가면' 이라는 말을 앞에 붙이며, 지금 하고 싶은 것들을 인내하라고, 행복을 뒤로 미뤄두라고 요구한다. (p110)
우진에게 행복은 약속되어 있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좋은 대학에 간다고 해서 행복이 찾아온다는 믿음조차 그에게는 없었다.
좋은 대학에 가면 행복이 찾아오는 게 아니라, 행복을 생각이라도 하려면 좋은 대학에 가야 하는 것이었다. (p111)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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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명과 변명>
죽음을 계획한
어느 청년 남성이 남기는 질문들.
청년의 삶에서 우울과 강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저자 : 안희제
(문화인류학을 공부하는 작가이자 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