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한 말들 / 심리학관
내가 결혼하기 전,
그는 결혼해봐야 진짜 힘든 일이 시작된다고 했다.
내가 결혼을 하자,
그는 애가 있어야지 진정한 고생이라고 했다.
첫째가 태어나자,
그는 애가 둘이니 장난 아니라면서,
하나면 행복한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둘째가 태어나자,
그는 딸은 생각보다 손 안 간다면서,
자신은 아들이 둘이라 죽을 지경이라 했다.
내가 월세 살 때,
그는 2년마다 전세금 오르는 거에 비하면,
월세는 큰 부담이 아니라고 했다.
내가 전세 살 때,
그는 대출 받아 산 집이 오르지 않아 초조하다며,
전세는 돈이라도 돌려받지 않냐고 했다.
경기도에서 버스 출근하던 그는,
겨울에 사당역에서 버스 기다려 보지 않은 자는
인생을 모른다고 했다.
서울로 이사 와 지하철을 이용하던 그는,
9호선 지옥철 타본 사람만
월급쟁이의 비애를 안다고 했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던 그는,
대기업에서 돈 많이 받는 사람이
어떻게 같은 노동자냐고 했다.
대기업으로 이직한 그는,
큰 회사 다녀보니 중소기업이 왜 욕먹는지
알겠다고 했다.
프리랜서가 된 그는,
출근해서 어떻게든 버티면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사람이
무슨 고민이냐고 했다.
사장님이 된 그는,
직원들 월급날이 너무 무섭다면서
자기 사업 안 해본 자가
어찌 이를 알겠냐고 했다.
"나보다 더 힘드냐?"
그는 항상 이런 말로
타인의 하소연을 단칼에 끊는다.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해.
혼자만 힘드냐"
그는 항상 이런 말로
타인이 어렵게 꺼낸 말을
납작하게 만든다.
그는 늘 개개인의 삶을 수직으로 비교해,
상대의 고충을 징징거림으로 규정하고
무안을 준다.
그는 늘 자신이 가장 힘들어야 한다.
그래서 늘 생각한다.
'지가 힘들어봤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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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작한 말들>
차별에서 고통까지,
"어쩌라고"가 삼킨 것들.
* 저자 : 오찬호(사회학자)
* 2025.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