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태 변호사님 / 심리학관
캄보디아 사건은 단순히 몇몇 범죄자들의 일탈이 아니다. 왜 어떤 젊은이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그런 범죄의 소굴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으며, 왜 어떤 한국인들은 그 범죄에 협조하며 동포의 등을 쳤는가? 이 질문은 정확히 다음 질문과 맞닿아 있다.
Q. 왜 그토록 많은 2030 세대가 말도 안 되는 '리딩방' 사기에 수억을 날리고, '아트테크' 같은 허무맹랑한 다단계에 전 재산을 쏟아붓는가?
A. 답은 간단하다. 절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절망을 해결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희망이 없다.
<파산 법정에서 마주한 '절망의 민낯'>
본 변호사는 회생/파산 전문이다. 매일 법원에서 만나는 채무자들의 얼굴은 우리 시대의 가장 정직한 자화상이다. 그리고 최근 몇 년, 그 자화상의 절반은 2030 세대가 차지하고 있다.
서울회생법원 통계(2023년)를 보면 개인회생 신청자 중 2030세대가 47.5%다. 거의 절반이다. 성실하게 미래를 설계해야 할 청년들이, 왜 감당 못 할 빚의 굴레에 갇혀 법원으로 달려오는가? 이걸 그저 "요즘 애들이 분수를 몰라서" 혹은 "개인의 무모한 투자 실패"로 치부하면, 우리는 절대 본질을 볼 수 없다.
데이터는 더 무섭다. 2014년부터 2023년까지 9년간, 전체 가구 부채가 51.8% 늘 때 20대 부채는 217.9%, 30대는 115.3%가 늘었다. 이건 증가가 아니라 폭발이다. 심지어 질도 나쁘다. 담보 없는 고금리 신용대출, 카드론이다. 29세 이하 청년 가구는 자산의 42.4%가 빚이다. 자산 가격 조금만 흔들리면 바로 '깡통'이다.
이 거대한 비극에는
두 개의 얼굴이 있다.
바로 '영끌'과 '빚투'다.
1.'영끌': 뒤처지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몸부림
사람들은 청년들의 빚이 사치나 과소비 때문이라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청년 총대출의 80% 이상이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 대출이다. '집' 문제다.
지난 몇 년간 서울 아파트 중위 가격이 두 배 뛸 동안, 2030의 소득은 그 발끝도 못 따라갔다. "지금 안 사면 영원히 못 산다"라는 '벼락 거지'의 공포가 이들을 '패닉 바잉'으로 내몰았다. 이건 탐욕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발버둥이었다.
내 의뢰인 중 대기업 남편과 교사 아내, 누가 봐도 완벽한 중산층 신혼부부가 있었다. 저금리 때 변동금리로 '영끌'해 경기도에 아파트를 샀다. 완벽한 계획처럼 보였다. 하지만 금리가 폭등하고, 아내의 출산휴가로 소득이 줄고, 부모님 병원비까지 겹쳤다. 이미 담보대출이 꽉 차 1금융권은 막혔다. 제2금융권, 카드론을 돌려막다 14%가 넘는 이자에 무너졌다. 이들은 "집을 포기하면 끝장"이라는 생각에 파산 신청도 못 하고 매일 채권자들의 독촉 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최근엔 오피스텔, 지식산업센터 분양권 문제가 터졌다. "부동산은 무조건 오른다", "중도금, 잔금 다 대출해준다"라는 말에 계약금만 들고 뛰어들었다. 지금? 공실 폭탄에 가격은 폭락하고, 잔금 대출은커녕 중도금 이자만 쌓인다. 결국 개인파산으로 몰리고 있다.
2. '빚투'와 캄보디아, 마지막 탈출구라는 도박
'영끌'이 어떻게든 기성세대의 사다리를 따라가려 한 몸부림이라면,
'빚투'는 그 사다리 자체가 썩었다고 판단한 이들의 도박이다.
"성실하게 일해서 저축해봤자 집은커녕 결혼도 못 한다."
근로소득의 가치가 자산소득의 증가 속도를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이 냉소와 절망이, 청년들을 고위험 투자판으로 내몰았다. 이게 바로 사기꾼들이 파고드는 지점이다.
내가 만난 한 30대 남성은 텔레그램 '리딩방'에 초대받았다. 시키는 대로 하니 이틀 만에 두 배 수익이 났다. 신나서 1억 원을 넘게 입금했다. 거래소 화면엔 5억 원이 찍혔다. 출금하려 하자? 거래소는 먹통이 됐고, 그들은 사라졌다. 모든 게 사기였다.
최근 담당하는 '아트테크' 사기는 더 기가 막힌다. 3천만 원짜리 그림을 사면, 자기들이 그걸로 전시하고 '저작권료'로 월 2.5%를 준단다. 그림은 내 소유니, 손해 볼 것 없고 이자는 막대하다? 수많은 사람이 속았고, 피해액은 최소 1조 원대로 추정된다.
Q. 똑똑한 청년들이 왜 이런 허술한 사기에 당할까?
A.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내일'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 '나만 뒤처지고 있다'라는 상대적 박탈감이 합리적 판단을 마비시킨다. 그리고 이 절망은, 돈을 잃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 절망이 임계점을 넘으면, 범죄에 가담하는 쪽으로 넘어간다.
캄보디아 사건이 바로 이 절망의 가장 어두운 단면이다. 일부 청년들은 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아니라, 한국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월 1,000만 원 보장' 같은 미끼에 홀려 스스로 정글로 들어갔다. 그것이 불법적인 일임을 알면서도, 혹은 애써 외면하면서도 말이다. 왜? 한국에서의 '정상적인' 삶이 이미 지옥이었기 때문이다.
더 끔찍한 것은, 그곳에서 이들을 착취하고 관리한 이들 역시 한국인이었다는 점이다. 아마도 그들 역시 이곳에서 먼저 절망을 맛보고, 먼저 벼랑 끝에 몰렸다가, 결국 동포의 등을 치는 범죄자가 되는 길을 택했을 것이다. 절망이 절망을 낳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이 끔찍한 순환. 캄보디아의 사기 피해자와 사기 가담자는, 사실 같은 구조적 절망이라는 스펙트럼의 양 끝에 서 있을 뿐이다.
<청년이 없으면 국가는 존속할 수 없다>
결국 이 모든 문제의 뿌리는 하나다. 소득 증가가 자산 가격 상승을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적 모순. 20대 소득이 9년간 21% 오를 때(전체 평균 45.2%), 부채는 217%가 폭증했고, 자산 가격은 미쳐 날뛰었으며, SNS는 타인의 자산 증식 성공담으로 도배되었다. 이 불균형과 박탈감이 청년 세대 전체를 빚을 동원한 추격 매수(영끌)와 투기적 도박(빚투)으로 내몰았다.
그 결과가 지금 터져 나오고 있다. 29세 이하 주담대 연체율은 1년 새 3배 폭증하며 전 연령대 1위다. 이들에겐 외부 충격을 막아줄 완충 자산이 없다. 정부의 '청년도약계좌' 같은 땜질 처방은 답이 안 된다. 이건 총상에 밴드에이드 붙이는 격이다. 질병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려면 과감하고 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부동산 시장 안정시키고 양질의 일자리로 실질 소득을 높여야 한다.
(너무 당연한 소리라 하품이 나오지만 이게 근본이다.)
둘째, 국가의 부를 청년에게 직접 이전해야 한다.
국방과 출산은 국가 공동체 유지를 위한 핵심 요소이며, 오직 청년 세대만이 감당할 수 있는 역할이다. 마침 트럼프 같은 인물들이 동맹국들에게 방위비 증액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시점이다. 좋다. 그 돈, 엉뚱한 데 쓰지 말고 사람에게 쓰자. 여러 안이 있겠지만, 예컨대 사병 급여를 월 500만 원으로, 획기적으로 인상하는 것은 어떨까. 18개월 복무 기준으로, 제대할 때 약 1억 원의 종잣돈(Seed Money)을 쥐여주는 것이다. 이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에게 빚이 아닌 자산을 제공함으로써, 출발선 자체를 바꾸는 가장 강력한 정책이다.
물론 당장 '역차별' 논란이 나올 것이다. 장애 등으로 복무가 불가능한 청년들은 어쩔 것인가? 그리고, 여성은? 바로 그 지점 때문에, 우리는 이제 여성 징병제(혹은 남녀평등 복무제)를 공론의 장에서 진지하게 토론해야 할 때가 되었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국방의 의무를 남성에게만 지울 수 없고, 인구가 줄어가는 상황에서 남성만으로 국방을 모두 담당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국가 존속을 위한 의무를 남녀가 함께 지고, 그에 상응하는 파격적인 경제적 보상(1억 원의 종잣돈)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
출산 역시 국방만큼이나 국가 존속을 위해 필요한 것이므로, 일정 기간까지 일정 수 이상을 출산한 사람(부부가 출산한 것이면, 자율적으로 부모 중 1인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은 국방 의무를 다한 것으로 보아 징병을 하지 않고 사병 월급만큼의 종잣돈을 마련해주는 것. 이것은 본 변호사가 생각한 가안일 뿐이지만, 빚의 굴레를 끊고, 국가의 부를 청년 세대에 합법적으로 이전하는 사회적 대타협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셋째, 실패를 용인하고 재기를 지원하는 '자본주의의 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 그 핵심은 개인회생과 파산 제도다.
우리는 '이자'의 본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국가가 은행에게 이자 장사를 허용하는 이유는, 그 이자에 돈을 떼일 위험, 즉 연체율과 손해율을 계산하여 스스로 그 위험을 감수하라는 뜻이다. 은행은 그 위험비용을 이자에 전부 녹여내 막대한 이익을 거둔다.
실제로 2025년 상반기, 4대 금융지주의 당기순이익은 10조 원을 가뿐히 넘겼다. 그들은 내 의뢰인 같은 채무자들이 파산할 위험까지 모두 계산에 넣어 그 천문학적인 돈을 번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은행이 탐욕과 오판으로 위기에 처하면 어떻게 되는가? 국가는 "Too big to fail(대마불사)"이라며 즉각 공적자금, 즉 우리 세금을 쏟아부어 그들을 구제한다. 은행은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모순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에게만 '도덕적 해이'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위선이고, 타당하지도 않다.
우리는 기업의 회생은 '시장의 순기능'이자 '구조조정'이라 부르면서, 개인의 파산은 '도덕적 해이'라며 손가락질한다. 완전히 틀렸다. 빚에 깔려 아무것도 못 하는 노동력은 죽은 노동력이다. 이들을 파산 제도를 통해 빚의 굴레에서 해방시켜야, 그들이 다시 경제활동에 나서고, 소비를 하고, 창업 같은 '위험 감수(risk-taking)'에 나설 수 있다.
가장 자본주의적이라 불리는 미국에서도, 개인이 위험을 감수하고 혁신을 하려다가 실패하는 것에 대해 ‘도덕적 해이’라 부르지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조차 최소 4번의 파산을 경험했다. 실패가 인생의 끝이 아니라는 사회적 믿음이야말로 혁신을 불러일으키는 진정한 동력이고, 국가를 존속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혁신 기업보다 은행과 보험사가 더 많은 이윤을 얻고, 부동산 투자가 더 많은 이윤을 얻는 사회가 아닌, 혁신 기업을 키우는 사회가 되어야 하고, 그 근본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사회가 보장해 주는 것이다.
2030 세대의 가난과 부채는,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존속의 문제다. 국가를 존속시키는 가장 원초적인 수단은 출산과 국방이다. 그리고 이 둘은 오직 청년만이 담당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다. 청년을 살리지 않으면 국가는 무너진다. 국가의 부를 청년에게 이전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진짜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캄보디아의 비극은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직면한 ‘보편적 미래’가 될 것이다.
***************************
박기태 변호사님
법무법인 한중
딴지일보
2025.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