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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빵심리] 타당화

내가 그랬던 건 그럴 만해서 그런 것

by 심리학관


안녕하세요? 지난 번 “나 명명하기”에 대해 살펴보았죠? 다들 자신에 대해 새롭게 정의 하셨나요? 오늘은 지난 번 예고해 드린 대로 “타당화”에 대해 얘기해보려 합니다.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상상해 보겠습니다.


* 사례 1


무더운 날 다같이 점심을 먹으러 가는 상황이에요.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다들 시원한 음식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아, 정말 덥네. 시한 냉면이나 먹죠?”

“좋죠! 콩국수도 좋습니다.”

“이런 날은 그냥 시원한 냉면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쭉 빨면!”


그러나 동료들의 마음과는 달리 “나”는 더운 날 오히려 뜨끈한 국물이 땡기는 것이었습니다. 이열치열을 몸소 보여주는 체질이었던 것입니다! 메뉴는 냉면으로 정해졌고 마침 냉면집에 설렁탕이 있어 그걸 시키려고 합니다.


“저는 설렁탕이요.”


그러자 다음과 같은 말들이 쏟아지죠.


“아니? 이 더운 날 무슨 설렁탕이야? “

“으아, 안 더워요?”

“이런 날은 물냉면이 나을텐데? 여기 물냉면 맛있어요.”

"하하하! OO씨도 나이 먹었나봐? 뜨뜻한 거 땡기지?"



© Eqd


위의 대화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다음과 같은 상황을 또 상상해 봅시다.



* 사례 2




다양한 상품이 있는 가게입니다. 노트건, 양말이건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 뭐든요. 여러가지 색상 중 마음에 드는 색이 있어 골랐는데



“어… 좀 칙칙하지 않아?

그 색 보다는 좀 더 화사한 게 나을텐데?”

"요즘 유행하는 색은 이거야."

"넌 좀 더 밝은 색이 어울리는데."



@Eqd



위의 말을 듣는다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어떤 감정이 드시나요?


그럼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상상해 봅시다.

이번에는 어린 시절 자신을 상상해 보는 거에요.



* 사례 3




어린 시절 내가 아끼던 장난감을 동생이, 또는 그 누군가가 가지고 노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내구성이 약했는지 아니면 장난감을 가지고 간 사람이 힘이 셌는지 장난감이 망가졌어요.



“이건 내 꺼야! 이게 뭐야! 으아앙!”


© Eqd



이 때 이 모습을 본 부모님(또는 양육자)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어어~ 왜 울어?”

어린 나는 대답합니다.

“이거 내 껀데 이렇게 됐어요! 이거 내 껀데!”



그 때 당신은 다음과 같은 말을 듣습니다.

“다 같이 갖고 노는 거야. 그렇게 소리치면 어떻게 하니.

너는 꼭 소리 치고 울어야겠어!”

"하여간 OO이는 희한해. 다른 것 가지고 놀면 좀 어떠냐."



© Eqd


어떤 감정이 드시나요?



타당화(validation)


위의 사례들은 “타당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들입니다. “타당화”란 “그러할 만 하다” 라고 수용하는 것을 뜻합니다.




더운 날 뜨뜻한 국물을 먹고 싶어하는 마음, 누군가에게는 칙칙해 보였을테지만 내가 좋아하는 색에 대한 내 마음, 다같이 놀 수도 있었겠지만 내가 아끼고 사랑했던 물건에 대한 내 마음, 갑자기 빼앗긴 내 마음을 위의 상황에서는 부정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감정에 대해 타당화 받지 못한 생애 초기의 경험들은

성인이 되었을 때 상당히 많은 부작용을 야기합니다.


내가 제일 아끼던, 비싸지는 않았지만 귀여웠던 인형이 망가졌을 때 아이였던 나는 얼마나 슬펐을까요? 내 허락도 없이 가져간 사람에 대해서는 또 얼마나 화가 났을까요?


슬프고 화가 났던 나의 감정이 타당화 받지 못했을 때 분명 아이였던 나는 억울함을 느꼈을텐데 그 억울함도 타당화 받지 못했다면 성인이 되어서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인식하고 스스로 위로하기도 전에 이 감정이 맞는지 틀린지부터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왜 나는 화를 냈을까'

'왜 나는 그냥 못 넘어갔을까'

'내가 좀 참았으면 조용했을텐데...'

'내가 좀 특이한가? 그럼 이상한 사람인가?'

'저 사람이 저렇게 얘기하는 걸 보니

저 사람이 맞는 건가?'

라는 생각을 하며 자책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자책"은 방향 없이 맴돌다 결국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자신도 모르게 부정하는 습관으로 굳어집니다.



감정은 맞다, 틀리다로 정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감정을 스스로 인식하고 수용하며 위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는 처음부터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수용하며 위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타당화”를 해 주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수용하고 “나는 틀렸어.” 라는 자기 인식이 아닌(이 때 지난 글에서 본 자신에 대한 잘못된 명명이 이루어집니다!) “내가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라고 자신을 수용하게 됩니다. 이 때 누군가는 부모님 또는 양육자자 되겠죠.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의 부모님이, 나의 양육자가 나에게 타당화를 잘 해주지 않았다면 성인이 되어가는 내가 나를 “타당화” 해 나가야 합니다.


내 감정은 거의 모든 일의 첫 번째 알람시스템이 되며 내가 올바른 의사결정을 하게 하는 나의 든든한 지원군입니다.


“감정”에 대해서는 곧 따로 페이지를 내어 함께 살펴보아요!(아닛! 또 깨알같이 다음 포스팅에 대한 홍보를? 하하핫!)


여러분, 여러분은 얼마나 자신을 “타당화” 하고 있나요? 나를 타당화 해 주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지 모르시겠다구요? 그렇다면 다음의 방법을 써 보세요.


내가 슬플 때, 화 날 때 무의식으로 내가 한 행동에 대해 곱씹고 있다면 얼른 정신을 차리고 다음과 같은 말을 스스로에게 해 주세요.


‘속상했구나, OO(나의 이름)아.

아이구, 얼마나 속상했으면

그렇게 눈물이 났어~’


‘화가 났구나.

누구라도 열심히 한 결과물에 대해 비난하면

화가 날 거야.’


‘더운 날이지만 뜨뜻한 것을 먹고 싶었구나?

그런데 다른 사람들 눈치보느라

냉면을 시켰으니 마음이 영 좋지 않았겠네.’


자신에게 해 주는 말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잘 해 주는 말들 아닌가요? 그러나 정작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는 그동안 타당화 해주지 않았으니 지금부터라도 자신을 “타당화” 해 주세요.


제대로 타당화 받게 되면 요동치던 감정은 잠잠해지고 그 감정을 조절할 수 있게 됩니다. 감정이 조절되면 차갑고 정확한 나의 이성이 그 다음 바톤을 이어받아 나를 위한, 내가 목적했던 결과를 낼 수 있는 의사결정을 하게 해 준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타당화 하면 정말로 나를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어요.


여러분, 오늘부터 꼭 같이 해 봐요!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거에요!


“그랬구나. 그럴 만 했구나.”


© Eqd


** 주의!


타당화는 자신의 입장을 그럴 듯하게 포장하는 방어기제 “합리화”와 다릅니다! 또한 타당화는 “감정”에 대해 해 주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장난감을 뺏어놓고 ‘내가 가지고 놀고 싶었으니까 뺏은 거지! 그러길래 처음부터 줬으며 됐잖아!’ 라고 행동에 대해 합리화 하는 것이 아닌, 장난감을 갖고 놀고 싶었던, 내가 아끼는 물건에 대한 “감정”에 대해 타당화 하는 것입니다.


찰빵심리 소식

그동안 찰빵심리를 사랑해 주신 여러분께 소식을 전해드릴 것이 있어 말씀드립니다 ^o^

찰빵심리가 인스타를 열었어요!

블로그가 다양한 사례, 어렵지 않게 설명하려고 노력한(!) 이론으로 여러분을 만나는 자리라면 인스타에서는 좀 더 직관적으로 "나로 살아가고자 하는 분들을 위한" 심리학적인 내용을 다루려고 합니다.


그럼 심리학관처럼 많은 사랑 부탁드려요!!

인스타 아이디 : @eqdchbb

링크 : https://www.instagram.com/p/CErwEd4HttU/?igshid=1ghen9mxzz8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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