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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리학관 Nov 19. 2021

[심리학관 / 박정민의 수다다방] 남의 개똥을 주우며

명랑한 하루

정우열 만화가님의 ‘노견 일기’를 참 좋아합니다.


노견 일기. 출처 : 알라딘



강아지. 하면 쬐끄맣고 귀엽고 똥꼬발랄하며 에너지가 넘쳐 흐르는 모습을 흔히 떠올리지만요. 햇수가 지나가면서 사람의 몇 배 빠른 속도로 나이를 먹고 눈에 띄게 체력이 떨어져서, 그렇게 즐겨 하던 바다 수영도 하지 못하게 된 “나이가 들어가는 나의 소중한 개 풋코”를 키우는 이야기가 정말 마음에 꼭 들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정우열 만화가님이 잡지 '시사인'에 쓰신 글이 또 한번 마음속에 쑤욱 들어왔습니다.



‘차가운 남의 개똥을 주우며’

(시사인. 735호. 2021.10.19)



예전엔 남의 개똥, 정확히는 누구건지 모르는 개똥이 싫었다. 산책로에서 내 개가 모르는 개똥에 심취해 킁킁거릴 때면 혹여 코라도 닿을까(이미 닿았다), 밟지는 않을까(이미 밟았다) 줄을 당기기 바빴다. 개똥 방치자를 표적 삼아 허공에 짜증스러운 감정의 화살을 쏘아댔다.

차가운 남의 개똥을 주우며. 정우열.


-> 저요! 저도요! 나는 이렇게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데!! 누군가는 ‘나도 힘들어 죽겠지만 해야 되니까!! 약속을 지키려 안간힘을 쓰는 규칙과 규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어겨대고’. ‘난 원래 이런 인간이라며 배째라고 자빠지고’. ‘뺀질뺀질 일안하고 남에게 편승하며, 어떻게든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도망다니고’, ‘손발은 최대한 움직이지 않은 채 입만 놀려대는’ 거죠! 이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분노가 차올라 뚜껑이 열리는 폭발을 너무나 자주 경험하곤 했었습니다.



그때에는, 내가 잘나서 일을 잘하는 거고, 그저 내가 열심히 했으니까!! 내 능력으로!!! 나혼자서!!!! 성과를 만들어냈다는 말도 안되는 허무맹랑한 환상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고저 고저 부끄럽습네다. ㅠㅠㅠㅠ.


그저 부끄럽습니다 / 출처 : Unsplash



(이제는) 내 개똥이든 남의 개똥이든 그냥 줍는 편이 좋다는 생각이다.

한 사람이 개 한 마리를 온전히 혼자 키우는 일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매일 더 절감하고 있다. 모르는 사람과 아는 사람의 끊임없는 호의와 도움에 의지해 간신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차가운 남의 개똥 정도는 흔쾌히 주워야 하는 거라고 믿는다.

차가운 남의 개똥을 주우며. 정우열. 


-> 반성. 반성. 반성했습니다. 나이를 쬐~~~~끔씩 더 먹으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제가 현재의 모습으로 크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나 하는 것이더라구요.



상담 분야에서 만나뵙게 된 선생님들은 제가 어렸을 때 얻지 못해서 배고프고 목말라 했던 부분을 다정하고 상냥하게 채워 주셨구요. 어려운 과제를 마주할 때마다 아이디어로 가득찬 머리를 빌려주셨고, 엎어지고 자빠져서 무릎이 깨지고 뒷통수를 세게 부딪혀 눈물이 글썽해졌을 때 기대어 훌쩍일 어깨를 내밀어 주셨고,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쩔쩔매고 있을때 뛰어오셔서 토닥여주시며 문제를 함께 풀어주셨거든요.



그 덕분에 털도 안난 겁쟁이 울보 삐약이 아기 병아리가 겨우겨우 커나가서 두발로 혼자 설 수 있었습니다.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꾸벅. 꾸벅. 꾸꾸벅. 저도요. 콩알만한 제 자원이라도 주위 사람들을 위해 나눠주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도움 덕분에 비틀비틀 아가 병아리가 이제 두 발로 서게 되었습니다 / 출처 : Unsplash


정우열 만화가님의 글을 읽으면서, 또 하나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 교수님의

도쿄대학교 입학식 축사(2019.04).


여러분들은 노력하면 반드시 보상을 받는다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을 겁니다. 그러나 서두에서 불공정 입시 이야기를 했던 것처럼, 노력해도 공정한 보상을 주지 않는 사회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노력하면 보상을 받는다고 여러분이 생각한다는 것 그 자체가, 여러분의 노력으로 인한 성과가 아니라, 환경 덕택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 주세요.

여러분들이 오늘 “노력하면 보상을 받아”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건, 지금까지 여러분들 주위의 환경이 여러분들을 격려해주고, 등을 밀어주며, 앞에서 끌어주고, 성취해낸 것을 평가하고 칭찬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우에노 치즈코 교수님. 도쿄대 입학식 축사.


-> 얼마나 감사해야 할 분들이 주위에 많은지. 그리고 나의 노력만으로 통제 불가능한 부분에서 따라준 운이 얼마나 컸는지 그 생각을 점점 더 많이 합니다. (솔직히 노력을 그렇게까지 많이 한다고 말도 못합니다만. 긁적긁적긁적)



제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제가 원하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없잖습니까. 기회가 왔을 때 뛰어들 수 있도록 준비를 할 수는 있겠지만, 그 기회가 언제 어떻게 올지에 대해서는 제가 통제할 수 없으니까요. 그런 저를 밀어주고 끌어주신 분들 덕분에 그래도 밥벌이를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꾸우뻑.



Many Thanks! / 출처 : Unsplash


이 세상에는 노력해도 보상을 받을 수 없는 사람, 노력조차 할 수 없는 사람, 너무 노력해서 몸과 마음을 망가뜨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노력하기 이전부터 “어차피 너 따위가 (라는 말을 들어서), “내가 해 봤자 뭘” 이라며 노력할 의욕마저 꺾여버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노력을, 부디 자기 스스로만 이겨 내기 위해 쓰지 말아 주세요. 축복받은 환경과 축복받은 능력을, 축복받지 못한 사람들을 깎아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사람들을 돕기 위해 써 주십시오. 그리고 강한 척하지 말고,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서로 기대며 살아가 주세요.

우에노 치즈코 교수님. 도쿄대 입학식 축사.


-> 역시 또 반성, 반성, 반성했습니다. 물론 현재 나의 상태가 축복 100%로 가득한 것은 아닐 겁니다. 모든 것이 차고 흘러 넘쳐서 남아도는 환경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살고 있는 중에서도, 주위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너무나 손쉽게 할 수 있고,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작은 것도, 누군가에게는 아주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소중한 것이 될 때가 많으니까요.



내가 줄수 있는 선물을,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 출처 : Unsplash


독자님들도 아마 지금까지

너무나 가치있는 도움들을 많이 받아서

쑥쑥 커오셨겠지요.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고민에 빠져 있는

주위 분들의 차가워진 손을

따스하게 잡아주고 계실거라 생각합니다.


남의 개가 싸놓은

차가운 개똥을 기꺼이 주워주시는

우리 독자님 같은

바르고 상냥한 분들 덕분에


저희가 살고 있는 지구가

멈추지 않고 돌아가고 있습니다.


정말정말 많이많이 진짜진짜

감사드립니다.


[COZY SUDA 박정민 대표]


* 박정민 소개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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