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관계심리학] 합의되지 않은 기대의 함정:1/2-부부편

심도인의 관계심리학

by 심리학관

“대부분 모른다. 알 것이라 생각하지 말고 기대하는 바가 있으면 말을 하자!”


♪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저 바라보면~ ♪♬

- 초코파이 CM송 가사 중 일부 -


♬♪ ASAP 내 반쪽 아니 완전 Copy

나와 똑같아 내 맘 잘 알아줄~ ♪

- STAYC의 ASAP 가사 중 일부 -


어릴 때부터

‘내가 말하지 않아도

찰떡같이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냥 또 한명의 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고등학교, 대학교 때 쓴 일기를 보니

얼마나 절절하게 그런 바람들을

적어 놓았는지... 흐흐)


지금도 비슷한 생각을 할 때가 있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때만큼 절절하진 않다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과

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포기?

아닙니다.

기꺼이 받아들인 것이니 성장입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내 마음을

나도 캐치하지 못할 때가 많은데

타인이 알아서 알아준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그럼에도 우리는

오래된 관계(친구, 연인, 부부)나

자주 보는 관계(직장 동료, 상사)에서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고...

어느 정도는 알 것이라고...

대강이라도 알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특히, 서로의 기대에 대해 말이지요.


다음 사례를 함께 보시겠습니다!


어느 날...

심도인 상담실에 맞벌이 부부가 찾아옵니다.


20211216_심도인_그림-3.jpg



아내: 회사 다니느라, 아이 키우느라, 집안일 하느라 너무 정신이 없어요. 몸이 남아나질 않아요. 요새같이 힘들 때는 저 혼자 이렇게 고생하려고 결혼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남편: 누가 들으면 혼자 집안일 다하는 줄 알겠어. 나도 같이 하잖아.


아내: 시키는 것만 하잖아! 아니 시키는 것도 제대로 못하잖아!


남편: 시키는 것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막 하려고 하는 찰나에 당신이 왜 안 하냐고 잔소리 하는거야. 그리고 내가 제대로 못한 게 뭐 있어?


아내: 제발 설거지만이라도 제대로 해줘.


남편: 설거지 하잖아!


아내: 상담사님, 한번 들어보세요! 식사를 했으면 설거지를 해야하잖아요. 그럼 그때부터 눈치 싸움이 시작되는 거에요.


남편: 무슨 눈치 싸움이야!


아내: 아이는 엄마만 찾지, 씻겨야 하지 정신이 없는데 남편은 핸드폰만 보고 있어요. 보다 못해 설거지 좀 하라고 하면 그때서야 퉁퉁 부은 얼굴로(남편: 뭐? 퉁퉁 부은 얼굴?) 설거지를 해요. 시켜야 하는 것까지는 어느 정도 봐줄 순 있어요. '그래, 시켜서 하는 거라도 하는 게 어디야'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설거지 해 놓은 꼴을 보면 정말 참을 수가 없어요. 순간 모든 인내심이 바닥을 찍고 무언가 가슴과 머리 안에서 펑 터지는 것 같아요. 싱크대 옆엔 물이 흥건하고 가스레인지 위 냄비와 프라이팬은 그대로 있어요. 설거지를 해 놓은 그릇도 보면 음식물 자국이 남아있는 경우도 있구요. 결국 제 손이 한번 더 가야해요. 이게 집안일을 같이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건가요? 이게 집안일 안 한다는 소리 듣지 않으려고 겨우 하는 척만 하는 게 아니면 뭐겠어요.


남편: 아니 보통 설거지를 할 때 싱크대에 있는 그릇들만 씻지, 가스레인지 위에 설거지까지 할 냄비가 있는지 제가 어떻게 압니까? 모를 수도 있는거지!


아내: 저녁 식사로 찌개와 국을 먹었는데 그걸 끓인 냄비가 있다는 걸 왜 생각을 못해! 그럼 싱크대 옆에 물은 왜 정리를 안 하는 건데?


남편: 그냥 물이 좀 튀고 흐른 건데 굳이 뭘 정리를 해? 더러운 물도 아니잖아!


아내: 그 물을 안 닦으면 그게 나중에... 하아... 됐어. 그냥 내가 하고 말지... 가끔 보면 일부러 이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니까요. 앞으로 안 하려고 못하는 척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어요.


남편: 아니, 내가 안하는 게 아니라니까! 그리고 일부러 못하는 척이라니!




부부의 대화를 읽으면서 어떠셨나요?

아내와 남편, 누구의 입장에 더 공감이 되시나요?

아니면 그냥 갑갑하고 답답하셨나요?


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우리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서로 기대하는 것들이 생깁니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오히려 기대가 없는 관계는

그만큼 친밀도가 떨어지는 관계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기대가

약속된 것도 있지만

미리 약속되지 않은 것도 많다는 것이지요.


위 부부 사례를 보면

'어디까지를 설거지 작업으로 볼 것인가?’

라는 것에서 둘의 기준과 기대가 다릅니다.


(남편이 일부러 못하는 척 할 수도 있다는

가정은 이번 주제와는 다른 이야기이니

예외로 두겠습니다)


남편은 싱크대에 있는 것들만,

아내는 가스레인지 위에 있는 냄비와

싱크대 주변 물기 제거까지.


이 상황에서 누가 맞는지 따지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구요?


이것은 하나의 정답이나 승자를 가려내는

게임이나 시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따져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요. 사실은 저도...)


우선 순위 목적은

개인, 부부마다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아마도

아내가 다시 손을 대지 않아도 될 수준으로

(완전히 만족하는 수준이 아닌)

남편이 설거지를 '기꺼이' 하는 것일 겁니다.


그럼 우선 기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합니다.

설거지 작업에 대한 아내와 남편의 기대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까지를 설거지로 볼 것인가!


20211216_심도인_그림-2.jpg


심도인: 자, 우선 두 분이 합의를 해주셔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전에 한 가지를 묻고 싶습니다. 남편분은 본인이 설거지를 하여 아내분이 설거지에 대해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저녁 시간을 만들고 싶습니까?


남편: 네, 그렇죠. 그렇지 않다면 제가 왜 설거지를 하겠습니까? 전 집안일을 하는 것이 싫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일부는 제가 하겠다고 하는 것이구요.


심도인: 네, 좋습니다. 그럼 두 분이 합의할 수 있는 지점을 정해야 합니다. 평소 남편분은 어디까지를 설거지라고 생각하십니까?


남편: 싱크대에 있는 그릇들을 닦는 것까지요.


심도인: 네, 좋습니다. 아내분은 어디까지를 설거지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내: 싱크대 그릇과 가스레인지에 있는 냄비, 식탁에 남아있는 물컵 등 썼던 모든 그릇과 컵을 씻은 후 마지막에 싱크대 주변에 물까지 다 닦는 것이요. 제때 물을 닦지 않으면 물때가 생기거든요.


남편: 물때가 생겨? 아... 그건 몰랐네.


심도인: 네, 좋습니다. 서로의 기준을 들어보니 어떠십니까?


남편: 저는 사실 저런 과정들이 설거지에 포함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설거지라고 하면 그냥 싱크대에 있는 그릇들을 씻어 건조대에 올려놓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저런 과정에 다 설거지라고 생각했다면 아내는 그 동안 제가 일을 하다 말았다고 생각했겠어요.


아내: 몰랐다고?


남편: 그 동안 저는 저대로 한다고 했는데, 아내의 기분이 따라 매번 기준이 달라진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난 똑같이 일을 하는데 아내가 기분이 좋은 날은 그게 별 문제가 안되고, 기분이 안 좋은 날은 문제가 되는 거라 생각해서 내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나 생각하며 억울하고 화가 나기도 했었어요. 근데 오늘 얘기해 보니까 아내의 기준이 있었던 거였네요.


아내: 그렇게 생각했다고? 아니야. 내가 좀 여유가 있는 날은 참을 수 있었던 거고 여유가 없었던 날은 참지 못하고 말을 했던 거야. 근데 그걸 기분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는 거라고 생각했었구나... 아, 그래서 원하는 게 있으면 확실하게 말을 하라고 했던 거구나.


심도인: 네. 아내분은 기준이 있었는데 신체적, 심리적 여유가 있었을 때는 참았던 거고 여유가 없었던 때는 참지 못했던 것을 남편분은 그 기준을 모르니 아내의 기분에 따라 판단과 행동이 달라진다고 생각하며 억울함과 화를 느끼셨던 거군요.


남편: 네, 그랬던 것 같아요.


심도인: 네, 좋습니다. 두 분은 서로의 기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남편: 아내의 기준처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설거지를 하기 싫은 게 아닙니다. 오히려 아내가 다시 손을 대지 않을 정도로 설거지를 하고 싶은 쪽인 것 같아요. 다만, 가스레인지 위 냄비는 왜 확인 안 했냐고 해서 그다음 번엔 냄비를 확인해서 닦고 나면 이번엔 식탁은 왜 안 봤냐며 얘기하니 답답하고 힘이 빠졌던 것 같아요. 오늘 얘기해 보니 아내도 답답했을 것 같네요.


아내: 남편이 그것까지 설거지라고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을 저는 몰랐어요. 저는 남편이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한다고 생각했었어요. 그 모습이 제 눈엔 본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구요. 그러다보니 책임감을 가지고 하라고 더 따졌던 것 같아요. 제가 오해를 해서 남편도 억울한 면이 있었겠다 싶어요.


심도인: 네. 그럼 오늘 내용을 정리를 해볼까요?


살다보면

서로의 기대를 맞춰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서로의 기대를 명확하게 몰라서

오해하고 상처를 주는 상황들이 생깁니다.


'기대를 맞춰주고 싶은 마음'이

‘있음’에도 말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겪을 수 있는

설거지를 예시로 들었지만

사실 일상적인 것부터 비극적인 상황들까지

이런 오해들이 쌓여

벌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나의 욕구나 기대에 대해

명확하게 얘기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당연히 알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구요,


관계의 친밀감 정도에 비해

너무 사소하고 쪼잔한 것이라 생각해서

이야기하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해와 갈등은

사소한 부분에서,

특히나 '반복되는' 사소한 부분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정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이 같은 상황은 일어납니다.


직장 사례는 다음 시간에 이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서로의 기대를 명확히 하는 것.

상대가 말해주지 않는다고 해도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갈등이 반복된다면


그 상황을 눈치챈 사람이 먼저

서로의 기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린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아는 사이야."

vs

"우린 서로에게 욕구, 감정, 기대를 솔직하게

말할 수 있고 또 그것을 맞춰갈 수 있는 사이야."


과연 둘 중 어떤 관계가 더 친밀하고 신뢰로운

관계일까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심도인의 관계심리학] 왜 제 마음을 몰라주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