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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도인의 관계심리학] 나와 친해지는 법

거리를 두고 나 바라보기 / 부제 :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by 심리학관

제가 상담심리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고2때부터였습니다.

정확하게는 상담심리사가 아니라

심리학자였습니다.

수학도 좋아하고 과학도 재밌어 했지만

(좋아하고 재밌는 것 성적이 좋은 것)

가장 재밌었던 것은

사람의 마음이었습니다.

상황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시각의 차이는 과연 어디서 오는 걸까

궁금했습니다.

(그 때 가장 궁금했던 대상은 엄마였습니다)


"엄마 영어 몰라?" / "왜 몰라 이X아! 13이니까 13이라 그러지" / "엄마는 왜 욕을 하고 그래!" / "이게 욕이니?" 아...네버엔딩..


(위 그림 속 알파벳과 숫자가 있는 그림은 심리학 개론서에서 '맥락효과(context effect)'를 설명할 때 많이 나오는 예시입니다.


맥락효과란 동일한 자극이라도 사전 경험이나 주위 맥락에 따라 그 자극의 의미가 다르게 지각되는 것을 말합니다)

​​

고3때 대형서점에 갔다가

심리학 개론서를 한 권 샀던 그 순간의

벅차오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감정은 조금 무뎌졌지만

그 장면은 정말 생생합니다.

(그 책도 아직 갖고 있습니다)

집에서 종종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겠는

그 책을 샤르륵 넘겨보기도 하고

줄을 치면서 꼼꼼히 읽어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일기를 썼습니다.

"나는 꼭 심리학자가 되겠다."

그 이후 심리학과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바라던 꿈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그 과정이 즐겁지만은 않았습니다.

공부도, 실습도 모두 힘들었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보고 싶지 않았던 내 모습과

자꾸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괴감과 수치심을 느끼며,

박봉이기까지 하다는 이 길을 계속 가야 하나,

지금이라도 진로를 바꿀까 고민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제가 고등학교 때 쓴

일기를 보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거기에는 내가 심리학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나의 성격, 삶의 가치와 의미 등.

그리고 '심리학과 진학'이 목표로

적혀있었습니다.

그 순간에 마치 고3인 과거의 나에게

큰 응원을 받는 기분이었습니다.

현재의 어려움은 순간이란 생각이 들었고

과정이 곧 결과고 결과가 다시 과정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현재에 충실하며 미래를 향해 열심히

나아가다 보면 우리는 종종 과거를 잊게 됩니다.


현재가 가장 중요한 것은 맞지만

과거의 나를 잊고 살면 마치 내 삶은

숙제만 가득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럼 '이 과정은 언제 끝날까' 하며

지치고 공허하기만 합니다. ​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다짐하고 노력하였지만

화를 조절하지 못하고

아이에게 소리를 지른 일 한 번에

난 나쁜 엄마라며 자책하고 스스로를 미워합니다.

분명 몇 년 전의 모습과 비하면

아이 밥도 더 잘 만들게 되었고

울음 소리만 듣고도

아이의 상태를 맞출 수 있게 됐으며

또 아이를 잘 재우는 요령도 터득했는데

말이지요. ​


아기를 막 낳아서 어쩔 줄 몰라했던 그 때의 내가

현재의 나를 보면 무슨 얘기를 할 것 같은가요?


혹시 과거의 눈으로 나를 봐도

내가 성장과 변화가 없는 것 같이 느껴지시나요?

성장과 변화가 꼭 있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성장과 변화가 없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단지 발견하지 못한 것입니다. ​


대학원 시절 저는 자격증 취득이나 돈을 두고

성장과 변화라고 생각했습니다.

'붉은색' 정도면 충분히 성장을 이룬 상황인데,

'빨강색'만 고집스럽게 찾고 있었던 것이지요.

마치 파랑새를 찾아 다니듯이요.



순간적인 찰나의 나의 모습이나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미래만 생각한다면

실망과 불안이 가득할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를 포함한 지금까지의 나의 삶,

쌓아온 인생의 관점에서 나를 보면 어떠신가요?

후회, 화, 죄책감이 느껴지시나요?

아니면 나에 대한 용서, 연민이 느껴지시나요?

나와 거리를 두고 나를 찬찬히 바라보고 나면

신기하게도 나 자신과 더 가까워지고

돈독해진 느낌이 듭니다.

나와 거리를 두고 나를 바라보는 방법 중 하나가

[과거의 나의 시각에서 현재보기] 입니다.

더 좋은 방법은 [일기쓰기] 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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