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번 퇴고하면 달라질 수도 있을까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라는 헤밍웨이의 말을 스스로 증명한 1차 퇴고한 글을 다시 마주 하고 있다. 이번에는 더 잘해야지 하는 마음에 반복해서 읽고 있지만, 읽을 때마다 계속 멈출 수밖에 없고, 한숨만 나온다. 내 글의 첫 독자인 나 자신도 읽기 싫어지는 글을 무슨 용기로 썼을까 하는 한탄에서부터 부끄러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는 퇴고의 시간이다. 내가 이렇게 낯짝이 두꺼운 사람인지 몰랐었다. 우주 최고의 열화우라늄 강화 낯짝이다.
솔직히 말하면 퇴고보다는 반성을 더 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다. 이 정도 수준으로 책 쓰기를 하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오래 앉아 있기 힘든 몸상태이기에 마감기일을 맞출 수 있지가 가장 큰 걱정인데 일단 시작했다. 하지만 첫 장부터 막히는 상황에서 ’ 처음부터 다시 쓰는 게 더 좋을까 ‘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처음부터 다시 쓰려면 절대 마감 기일을 지키질 못 하기 때문에 퇴고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퇴고를 계속하면서 나의 글쓰기는 처음의 모습과는 달라졌지만, 아직 미완성의 존재일 뿐이다. 퇴고를 200번 하면 완성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200번의 퇴고를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글쓰기를 하는 것이 하지 않으려는 나 자신과의 싸움을 했다면 퇴고를 하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나의 무지와 부끄러움에 대한 싸움을 하는 것이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속삭이는 ‘나 책 100권 넘게 읽은 사람이다’라는 교만의 목소리에 우쭐하는 내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100권 읽었어도 나의 글쓰기는 한 없이 초라하기에 10,000권의 책을 읽어야겠다는 목표를 잡게 된다. 10,000권 정도 책 읽기와 글쓰기를 하면 지금보다는 좋아질 것이란 생각이 불현듯 들게 만드는 퇴고의 시간이다.
퇴고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글쓰기를 보면서 처음 글쓰기를 했던 마음가짐을 기록하는 것이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초심을 잃지 않는 글쓰기,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은 글쓰기를 하는 것이 나의 진정한 목표이기에 자랑하거나 생색을 내기 위한 글쓰기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할 것이다. 나는 간결하고 담백한 글쓰기를 하고 싶기에 솔직한 내 심정한 진실된 나의 경험을 녹아낼 것이다. 지금은 한 없이 부족하지만 매일의 의미 없어 보이는 반복을 끊임없이 지속하다 보면 의미 있는 행위가 될 것을 믿는다. 그러면 무지와 부끄러움으로 두꺼워진 낯짝이 백옥과 같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