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입구에서 시간은 발을 멈췄다
둔덕기성은 낮에도 어두웠다.
성벽이 만들어낸 그늘 때문이 아니라, 성 자체가 품고 있는 오래된 숨 때문인지도 몰랐다.
옥철은 성문 앞에서 한 번 멈췄다.
발목이 아니라, 생각이 걸렸다.
“살인 사건”이라는 말은 늘 비슷한 표정을 하고 다가오지만,
오늘의 사건은 달랐다.
신고자는 “사람이 죽었다”라고 하지 않았다.
“왕이 죽었다”라고 했다.
물론, 왕은 이 성 안에 없다.
적어도 공식 기록에는 없다.
그런데도 신고자는 그 말을 반복했다.
왕이 죽었다고.
“형사님.”
성문 안쪽에서 군복 비슷한 것을 입은 남자가 손짓했다.
고증된 복식이라기보다는, 고증하려다 포기한 것에 가까운 차림이었다.
그 점이 오히려 더 불길했다.
“여기요. 이쪽입니다.”
옥철은 천천히 성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를 지나는 순간, 기온이 한 번 꺾였다.
바람이 아니라, 시간이 접히는 느낌이었다.
손등에 돋은 소름을 그는 모른 척했다.
현장은 성 안쪽, 오래된 우물터 근처였다.
돌이 깔려 있고 바람이 잘 드는 곳인데도 냄새가 없었다.
보통은 죽음이 냄새로 먼저 사람을 붙잡는다.
그런데 오늘은 냄새가 아니라, 침묵이 먼저 사람을 끌어당겼다.
시신은 누워 있었다.
피가 없었다.
상처도 없었다.
그런데 분명히 죽어 있었다.
“이상하죠.”
안내한 남자가 말했다.
“칼로도, 몽둥이로도… 아닌 것 같습니다.”
옥철은 시신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사람의 얼굴인데,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표정이 지나치게 가지런했다.
마치 죽기 전에 자신이 죽을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누구지?”
옥철의 질문에 남자는 잠깐 망설였다.
“기록관입니다. 이름은… 문서에 적혀 있습니다.
실명은 남기지 말라고 되어 있어서요.”
옥철은 고개를 들어 성벽을 올려다봤다.
“실명은 남기지 말라.”
그 짧은 문장 하나에 이 사건의 크기가 묻어 있었다.
사람을 죽인 사건이 아니라, 기록을 죽이려는 사건일 수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는 장갑을 끼고 시신의 옷깃을 조심스럽게 들췄다.
목에는 멍 하나 없었다.
대신 옷 안쪽, 쇄골 아래에 낯선 문양이 있었다.
아주 가느다란 선들이 원을 이루고 있었다.
문양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정교했고,
문신이라고 하기엔 너무 기계적이었다.
빛이 닿자, 선들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거… 방금 움직였어요.”
현장을 지키던 젊은 순경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옥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문양은 분명히 움직이고 있었다.
살아 있는 것처럼.
혹은—누군가의 명령을 기다리는 것처럼.
그때였다.
성 안쪽에서 병사 하나가 달려왔다.
달린 다기보다는, 쫓기는 걸음이었다.
“형사님! 폐왕— 아니, 그분이…!”
“누가?”
옥철이 물었다.
병사는 숨을 몰아쉬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왕이… 웃고 있습니다.
오늘은 웃으면 안 되는 날인데…
폐왕께서 웃고 계십니다.”
옥철은 다시 시신을 내려다봤다.
상처 없이 죽은 기록관.
빛에 반응하는 문양.
그리고 성 어딘가에서 웃고 있다는 폐왕.
그는 속으로 문장을 하나 꺼냈다.
‘사람을 죽인 사건이 아니라, 질서를 죽인 사건이다.’
옥철은 손목시계를 봤다.
초침이 멈춰 있었다.
멈춘 것이 아니라,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였다.
“폐왕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옥철이 말했다.
그가 첫걸음을 떼는 순간, 둔덕기성의 바람이 방향을 바꿨다.
마치 오래된 성이 그를 환영하지 않는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