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힐 앞에서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기록을 잃지 않기 위해, 약점과 먼저 마주하는 훈련

by 조아

대구마라톤 이후, 몸보다 먼저 무너진 것은 마음이었다. 컨디션 난조는 숫자로 설명할 수 있지만, 탈탈 털린 멘탈은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


3월 8일 거제블루레이스, 이어지는 4월 초 영남일보 하프 마라톤. 공교롭게도 두 대회 모두 업힐이 악명 높은 코스다. 기록은 둘째치고 완주할 수 있을지조차 의심이 스며든다.


완주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완주가 ‘상처뿐인 영광’으로 남지 않을지, 혹은 무리하다가 부상을 입어 상반기 레이스를 통째로 잃어버리지 않을지에 대한 두려움이다.


걱정은 해결책이 아니다.

그러니 나는 다시 훈련으로 돌아간다.



집 근처에는 업힐 훈련을 할 수 있는 코스가 있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매달 채워야 할 마일리지에 집착하느라 정작 필요한 훈련을 미뤘다. 평지는 편했고, 숫자는 채워졌다. 대신 약점은 그대로 남았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했어야 했다.

그 한 번이 이렇게 큰 차이를 만들 줄은 몰랐다.


그래서 결심했다.

일주일에 최소 한 번, 업힐 훈련을 하기로.


그 시작은 진해 안민고개다.



“서울에 남산이 있다면 진해에는 안민고개가 있다”는 말이 있을 만큼 러너들 사이에서 상징적인 장소다. 하지만 주차가 여의치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근 진해 드림파크로 향했다.


드림파크는 안민고개보다 더 가파르다. 대신 거리가 짧다. 훈련 코스로는 선호되지 않지만, 사람도 차도 거의 없는 한적한 공간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오늘은 기록이 아니라 마주함이 목적이었으니까.


후배와 가볍게 몸을 풀고 업힐 초입에 섰다.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심장은 이미 요동치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땅만 보며 달렸다.


페이스도, 심박수도 통제할 수 없었다. 그저 이 경사가 끝나기만을 바랐다. 속이 울렁거렸고, 토할 것 같은 감각이 목까지 차올랐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겨우 1회전을 마치고 주차장에 주저앉았다.


심박수 경보가 계속 울렸다.


높게 치솟은 숫자는 쉽게 내려오지 않았다. 한참 동안 심호흡을 반복한 뒤에야 140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첫 구간은 고도 75m에서 174m까지. 숫자로 보면 단순하지만, 몸이 느낀 경사는 훨씬 가팔랐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내리막을 걸어 내려왔다.


두 번째 업힐을 준비했다.



이미 한 번 경험했기 때문일까. 경사에 대한 두려움은 조금 줄어 있었다. 대신 현실을 아는 몸이 조심스러웠다. 이번 구간은 75m에서 201m까지 상승하는 코스였다.


이번에는 초반의 격렬한 반응은 없었지만, 심박수는 160까지 올라갔다. 가민 워치의 경보 알람이 또다시 울렸다. 예전 같으면 알람을 무시하고 밀어붙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는 숫자를 이기려는 사람이 아니라, 숫자를 이해하려는 사람이다.


끝까지 올라섰다.


두 번째 업힐을 마쳤을 때, 거친 숨 사이로 묘한 감정이 스쳤다. 나는 오늘, 업힐을 정복하지 못했다. 대신 업힐 앞에서 도망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나를 무너뜨린 것은 경사가 아니라 회피였다. 마일리지를 채우는 데 급급해 약점을 외면한 시간들. 그 선택이 대구에서의 처절함으로 돌아왔다.


업힐은 기록을 갉아먹는다.

그러나 동시에 러너를 단단하게 만든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페이스가 아니다. 경사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 심폐 지구력, 그리고 고개를 숙이지 않는 마음이다.


거제 블루레이스와 영남일보 대회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나는 이미 한 걸음 전진했다. 두려움을 분석했고, 약점을 직시했고, 훈련으로 대응하기 시작했으니까.


완주가 상처로 남지 않으려면 지금의 이 반복이 필요하다. 오늘의 업힐은 고통스러웠지만, 적어도 나는 다시 성장의 방향으로 몸을 돌려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