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성산은 왜 ‘성산’일까

지명 하나가 보여준 고대 해상 교역의 흔적

by 조아

창원대로를 달리다 보면 ‘성산’이라는 이름을 자주 보게 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이곳에는 성이 있을 만한 산이 보이지 않는다.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고, 시선을 아무리 돌려봐도 성곽을 쌓을 만한 산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문득 궁금해졌다.


성산이라는 이름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오늘날 우리는 산이라고 하면 지리산이나 한라산처럼 높고 웅장한 산을 떠올린다. 하지만 옛사람들의 기준은 달랐을 가능성이 크다. 평지보다 조금만 높아도, 작은 언덕이나 구릉도 충분히 산이었다. 그렇다면 구릉 위에 쌓은 성곽은 자연스럽게 성산이 되었을 것이다.


이 가설을 따라가면 한 장소가 떠오른다.



바로 성산 패총이다.


성산 패총은 창원 성산구 성산동에 위치한 유적으로 1970년대 국가 산업단지 조성 공사 과정에서 발견된 이 유적은 삼한 시대부터 가야 시대에 이르는 생활 흔적을 보여주는 중요한 고고학 유적이다. 이곳에서는 조개껍데기가 쌓인 패총뿐 아니라 취락, 토기, 철기, 장신구, 유리구슬 등 다양한 유물이 발견되었다. 특히 구릉 정상부에서는 방어를 위해 쌓은 토성의 흔적이 확인되었다.


이 사실은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성산이라는 이름이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이 구릉과 토성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패총은 단순한 쓰레기장이 아니다. 조개껍데기가 쌓인 장소는 보통 두 가지 조건을 가진다. 하나는 사람들이 실제로 생활하던 공간이라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물과 가까운 위치라는 것이다.


성산패총 인근에는 지금도 토월천이 흐른다. 하지만 이 유적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보면 단순한 하천 취락 이상의 의미가 느껴진다. 성산패총에서는 유리구슬이 발견되었다. 고대 사회에서 유리구슬은 흔한 물건이 아니었다. 대부분 교역을 통해 들어온 물품이었다.


이 단서를 통해 하나의 가능성이 떠오른다.


성산패총은 단순한 어촌이 아니라 교역 네트워크 속 거점이었을지도 모른다. 삼한 시대 변한 지역은 철 생산으로 유명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변한에서 생산된 철이 한반도와 일본으로 교역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낙동강 하구와 가까운 창원 일대는 이 철 교역 네트워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성산패총의 구릉 위 토성은 어쩌면 단순한 방어시설이 아니라 교역 거점을 지키기 위한 시설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성산패총이 있는 곳은 창원 국가산업단지 한가운데다. 공장과 도로, 자동차가 오가는 풍경 속에서

이곳이 고대 사람들의 생활 공간이었다는 사실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땅속에서 발견된 조개껍데기와 토기 조각, 그리고 작은 유리구슬은 분명히 말해준다.


이곳이 단순한 빈 땅이 아니라 사람이 살았고 물자가 오갔으며 어쩌면 먼 바다를 바라보던 장소였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단순히 궁금했다. 왜 이곳의 이름은 성산일까. 하지만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니 구릉 위 토성, 조개더미, 고대의 교역품, 그리고 낙동강 하구를 오가던 배들의 모습까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창원대로를 지날 때마다 잠시 생각한다. 지금은 평지처럼 보이는 이곳 어딘가에 오래전 바다를 내려다보던 작은 구릉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그 위에서 누군가는 지나가는 배를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성산이라는 이름은 그 오래된 풍경의 마지막 흔적인지도 모른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