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터카로 시작하던 여행이 이제는 마라톤을 향해 간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홋카이도 여행은 내게 연중행사였다. 일 년에 단 한 번, 가장 저렴한 비행기표가 풀리는 시기를 기다렸다가 항공권을 끊고 떠나는 여행이었다. 일정은 대체로 3박 4일이었지만, 첫날 아침 비행기로 떠나 마지막 날 아침 비행기로 돌아오는 방식이라 체감상으로는 2박 3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재작년을 기점으로 여행의 리듬이 달라졌다. 그해 나는 홋카이도를 세 번 찾았다. 3월 초, 6월, 11월. 계절을 나누어 다시 찾은 홋카이도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가왔다. 여행 횟수가 늘어나자 일정도 자연스럽게 4박 5일로 길어졌고, 덕분에 훨씬 여유롭게 머물 수 있었다.
낯선 곳을 찾는 여행의 긴장감은 점차 옅어졌고, 그 자리를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이 대신했다. 이제는 타국에 도착해도 예전처럼 몸이 굳거나 마음이 경직되지 않는다. 출국장을 나서면 몸이 먼저 움직인다. 국제선에서 국내선으로 이어지는 긴 통로를 지나 1층 렌터카 부스로 향하고, 예약을 확인한 뒤 셔틀버스를 타러 간다.
그렇게 렌터카를 인수하는 과정은 어느새 너무도 익숙한 여행의 첫 장면이 되었다. 같은 업체에서 10번 넘게 차를 빌렸지만, 정작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예전에는 그런 점이 조금 서운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별 감흥이 없다. 익숙함은 때로 작은 기대조차 무디게 만든다.
내게 홋카이도 여행은 계획을 세우는 순간부터 시작되지만, 진짜 여행은 렌터카를 받는 순간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특히 오른쪽 운전은 한국과 모든 감각이 반대이기 때문에, 비행기 안에서도 끊임없이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게 된다. 좌우를 헷갈리는 아주 짧은 실수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직까지 사고를 낸 적은 없다. 하지만 사고는 늘 한순간에 일어난다. 그래서 나는 내 운전 실력을 믿기보다 규정 속도를 지키고, 신호와 도로 상황을 수시로 확인하며 최대한 방어적으로 운전하려고 한다. 익숙함은 편안함을 주지만, 동시에 방심을 부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첫 홋카이도 여행 이후 거의 모든 여행에서 렌터카를 이용했다. 덕분에 홋카이도의 도로 풍경도 많이 익숙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순간적으로 당황하게 되는 장면이 있다. 빨간불인데 직진 표시가 함께 들어오는 신호다.
처음에는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나 망설이다가, 직진 신호를 보고 급히 가속 페달로 발을 옮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면서도, 완전히 익숙해졌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런 순간들 때문이다.
올해도 변함없이 세 번의 홋카이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다만 이번에는 예전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떠나고 싶다. 단순히 머무는 여행이 아니라, 홋카이도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여행을 해보고 싶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을 끄는 대회는 8월에 열리는 홋카이도 마라톤이다.
언젠가 꼭 참가해 삿포로 시내를 직접 달려보고 싶다. 홋카이도 마라톤은 오래전부터 내 마음속에 자리한 대회였다. 무더운 여름에 열리지만, 완주 메달에는 홋카이도의 만년설 이미지가 담긴다고 들었다.
스포츠 매장에서 우연히 본 대회 안내 전단지 한 장이 그 시작이었다. 그 순간부터 나는 언젠가 이 대회를 달리는 나를 상상하게 되었다. 물론 현실적인 걱정도 있다.여름 성수기에 맞춰 항공권을 구할 수 있을지, 숙소를 제때 예약할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게다가 아직 참가 신청조차 하지 못했으니, 올해 출전이 가능할지 역시 미지수다. 그럼에도 마음만큼은 분명하다. 올해가 아니더라도, 내년이라도 꼭 한 번은 참가하고 싶다.
홋카이도 마라톤을 완주하는 일은 내게 단순한 대회 참가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내가 사랑해 온 홋카이도를 또 다른 방식으로 통과하는 경험이자, 익숙한 여행지와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만나는 순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이, 앞으로의 홋카이도 여행을 조금 더 특별하게 바꾸어 놓을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