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패총과 가음정 고분군 사이에서
창원대로를 지나다보면 이 도시가 얼마나 계획적으로 만들어졌는지 실감하게 된다. 곧게 뻗은 도로와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는 구조물은 이곳이 우연히 형성된 도시가 아니라는 사실을 조용히 말해 준다. 산업을 위해 설계된 도시, 효율을 위해 정리된 공간, 그것이 지금 우리가 아는 창원의 얼굴이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정말 1970년대에 처음 계획된 도시였을까.
우리는 흔히 창원을 근대 산업도시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 땅의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도시의 표면만 바라보면 보이지 않지만, 조금만 시선을 낮추면 훨씬 오래된 질서와 흔적이 드러난다. 그 가운데 나를 가장 오래 붙잡은 것은 성산패총과 가음정 고분군이다.
성산패총은 이름만 보면 조개껍데기가 쌓인 자리처럼 느껴진다. 오래전 사람들이 먹고 버린 흔적, 일상의 부산물 정도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발굴된 유물들을 들여다보면 이곳은 단순한 폐기장이 아니었다. 토기와 생활 도구, 그리고 철을 다루었던 흔적들이 발견되면서 성산패총은 생활의 공간이자 생산의 공간으로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철 슬래그가 남아 있다는 사실은 이곳을 다르게 보게 만든다. 철을 다루었다는 것은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선다. 그것은 기술이 있었음을 뜻하고, 기술을 유지할 사람과 자원이 있었음을 뜻하며, 그렇게 만들어진 물건을 사용할 공동체가 있었음을 뜻한다. 더 나아가 그것을 교환하거나 이동시킬 흐름이 있었을 가능성까지 떠올리게 한다.
그 순간부터 내게 성산패총은 조개더미가 아니라 질문이 되었다.
여기서 무엇이 만들어졌을까.
그리고 그것은 어디로 갔을까.
성산패총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가음정 고분군이 있다. 이곳은 삶의 흔적이 아니라 죽음의 흔적이 남은 장소다. 누군가가 묻혀 있고, 그 무덤은 단순히 시신을 처리한 자리가 아니라 죽은 이를 기억하고 드러내는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무덤의 크기와 형식, 함께 묻힌 유물들은 그 사람이 평범한 한 개인이 아니라 일정한 지위와 위계를 지닌 존재였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나는 그 앞에서 또 다른 질문을 떠올렸다.
이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그리고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묻힐 수 있는 존재로 만들었을까.
성산패총과 가음정 고분군은 서로 다른 종류의 유적이다. 하나는 생활과 생산의 자리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과 권위의 자리다. 시간적으로도 차이가 있다. 성산패총이 더 이른 시기의 흔적이라면, 가음정 고분군은 그보다 뒤에 나타난 사회 구조의 흔적에 가깝다. 얼핏 보면 둘은 아무 관계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공간을 생각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두 유적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같은 지역 안에서 한쪽에는 생산의 흔적이 남아 있고, 다른 한쪽에는 권력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쉽게 지나칠 수가 없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장소와, 누군가의 지위를 드러내는 무덤 사이에는 분명 시간이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은 공백이 아니라 변화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성산에서 만들어진 것들이 사람을 모이게 했을 것이다. 사람의 이동은 물자의 이동을 낳고, 물자의 이동은 교환을 만들고, 교환은 차이를 만들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더 많이 가졌고, 어떤 사람은 더 넓게 연결되었으며, 어떤 사람은 그 흐름을 통제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축적된 힘은 눈에 보이지 않다가 어느 순간 눈에 보이는 형태를 갖는다. 무덤은 바로 그런 순간의 결과일 수 있다.
가음정 고분군은 단지 죽은 자들의 공간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이미 형성되어 있던 힘의 구조를 보여 주는 자리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성산패총과 가음정 고분군은 전혀 다른 유적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는 시작이고, 다른 하나는 그 시작이 오랜 시간을 지나 드러난 결과처럼 느껴진다. 성산에서는 삶이 이루어졌고, 가음정에서는 그 삶의 축적이 위계와 기억의 형식으로 남았다. 생산이 권력으로 이어지는 과정, 일상의 기술이 사회의 구조를 바꾸는 과정이 두 장소 사이에 숨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도시는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종종 창원을 국가가 설계한 계획도시라고 말한다. 물론 그것은 틀리지 않다. 그러나 더 오래된 시간을 함께 놓고 보면, 이 땅은 이미 훨씬 전부터 어떤 방식으로든 조직되고 있었던 것 아닐까. 자원이 모이고, 사람이 움직이고, 생산과 교환이 이루어지고, 그 위에 권력이 세워지는 과정은 근대 이전에도 반복되었을 것이다.
지금의 직선 도로보다 훨씬 오래된 질서가 이 땅에 먼저 존재했을 가능성도 있다.
나는 달리면서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성산을 지나 가음정을 향해 가는 길 위에서, 지금 내가 밟고 있는 땅 위에 오래전 다른 사람들의 삶이 겹쳐져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조개를 캐고, 불을 피우고, 쇠를 다루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 흐름 속에서 힘을 얻었고, 마침내 죽은 뒤에도 기억될 자리를 차지했을 것이다.
도시는 바뀌지만 구조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보이지 않을 뿐, 대부분의 것은 연결되어 있다. 성산패총과 가음정 고분군도 어쩌면 그런 연결의 흔적일 것이다. 하나는 너무 오래되어 일상의 흔적으로 남았고, 다른 하나는 너무 선명해서 권력의 흔적으로 남았다.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는 아직 다 설명되지 않은 시간, 아직 완전히 복원되지 않은 지역사의 흐름이 놓여 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묻게 된다.
성산패총과 가음정 고분군 사이에는 정말 아무 일도 없었을까.
아마도 역사는 바로 그런 질문에서 시작되는지 모른다. 이미 알려진 사실을 반복하는 데서가 아니라,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흔적들 사이에 어떤 연결이 있었는지 상상하고 더듬어 보는 데서 말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때때로 지금 우리가 사는 도시를 새롭게 보게 만든다.
창원은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이미 스스로를 조직해 온 땅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