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음정이라는 이름이 들려주는 오래된 이야기

사람이 머물고 기억이 쌓인 자리에 대하여

by 조아

아침의 창원은 늘 반듯하다. 곧게 뻗은 도로와 정돈된 풍경은 이 도시가 계획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그런데 그 반듯한 길 위를 지나다 보면 문득 전혀 다른 시간이 겹쳐지는 순간이 있다. 산업도시라는 현재의 얼굴 아래, 훨씬 오래된 풍경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채 숨 쉬고 있다는 느낌.


그때마다 내 마음을 붙잡는 이름이 있다. 가음정. 너무 익숙해서 오래도록 의미를 묻지 않았던 그 이름을, 어느 날 문득 다시 읽게 되었다.


가음정(佳音亭).


좋을 가, 소리 음, 정자 정.


뜻으로 풀면 좋은 소리가 들리는 곳이다.



처음에는 그 뜻이 조금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좋은 소리라는 말은 단지 아름답게 들린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좋은 소리가 머무는 곳에는 그럴 만한 조건이 있었을 것이다.


바람이 지나가고, 물이 흐르고, 소리가 막히지 않고 퍼질 수 있는 지형. 완만한 구릉과 평지가 이어지고, 지나치게 높지도 낮지도 않은 안정된 자리. 그런 곳에서는 사람의 마음도 조금 더 오래 머물렀을 것만 같다.


어쩌면 가음정은 처음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었는지도 모른다.


지명은 단순한 이름표가 아니다. 그곳을 살아간 사람들이 어떤 감각으로 공간을 기억했는지가 압축되어 남은 결과다. 좋은 소리라는 표현 속에는 풍경에 대한 인상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편안했는지에 대한 감각까지 함께 담겨 있었을 것이다.


듣기 좋은 소리는 곧 살기 좋은 환경이었고, 살기 좋은 곳에는 자연스럽게 사람이 모인다. 사람이 모이면 삶이 쌓인다. 삶이 쌓이면 관계가 생기고, 관계가 깊어지면 차이도 만들어진다.


누군가는 더 많이 가지게 되고, 누군가는 더 넓게 연결되며, 누군가는 그 흐름을 이끄는 위치에 서게 된다. 그렇게 형성된 질서는 시간이 지나며 눈에 보이는 흔적으로 남는다.


가음정동 고분군은 어쩌면 그런 흐름의 끝에서 남겨진 장면인지도 모른다. 무덤은 아무 곳에나 만들어지지 않는다. 특히 기억되어야 할 사람의 무덤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곳은 단순히 죽음을 놓아두는 자리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한 공간이어야 한다. 둥글게 솟은 봉분을 떠올리면, 그것은 죽은 사람 한 명의 흔적이라기보다 이미 형성된 삶의 질서와 위계가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남은 결과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생각하면 가음정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풍경 묘사가 아니다. 좋은 소리가 들리는 장소라는 뜻은 결국 사람들이 머물고 삶을 이어 갔던 자리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렇게 축적된 삶은 시간이 흐르며 기억과 권력의 형태로 남는다.


나는 다시 이곳을 천천히 스쳐 지난다. 지금 내가 지나고 있는 이 길 위에서 오래전 누군가는 바람 소리를 들었을 것이고, 물 흐르는 소리를 따라 살아갔을 것이다. 그들의 하루는 사라졌지만, 그 삶의 흔적은 이름으로 남고, 무덤으로 남았다.


도시는 계속 바뀐다. 그러나 이름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가음정이라는 지명은 내게 단순한 행정구역의 이름이 아니라, 이곳이 품고 있는 오래된 시간의 흔적처럼 느껴진다.


보이지 않는 과거가 지금의 풍경과 겹쳐지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도시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된다. 어쩌면 이곳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좋은 소리가 들리는 곳에, 결국 사람의 이야기가 쌓인다는 것을.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