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일리지보다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느린 훈련
달리기를 계속하기 위해, 오히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발목 부상으로 훈련이 어려워진 지난 3주 동안 나는 속도를 낮추고 거리 욕심도 내려놓았다. 대신 아주 느린 페이스로 심박수를 관리하며 Zone 2 훈련을 반복했다. 답답했고 지루했으며, 이게 정말 효과가 있을지 의심스러운 순간도 많았다.
그럼에도 내가 이 훈련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분명했다.
나는 여전히 계속 달릴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 3주 동안 발목 부상으로 마음껏 훈련하기는 어려웠다. 대신 나는 천천히 달리며 지구력을 다시 끌어올리는 시간을 가졌다. Zone 2 달리기 훈련을 하면서 여러 번 흔들렸다. 때로는 지루했고, 이렇게 느리게 달리는 것이 정말 훈련이 되는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일단 시작했으니 끝까지 해보자는 마음으로 버텼다.
그 다짐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이 훈련을 이어 갔다. 하지만 무작정 거리를 늘릴 수는 없었다. 코치님의 제안도 6~8km 내외였기에 전체 달리기 마일리지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목표했던 마일리지를 채우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있었다. 그러나 달린 거리만으로 훈련의 성과를 판단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끝까지 사수하고 싶었던 달리기 마일리지 목표마저 내려놓았다. 이번 훈련에서 내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숫자가 아니라 정체성이었다. 오직 ‘계속 달릴 수 있는 사람’으로 남기 위해,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이미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상태에서, 마치 달리기를 처음 시작하는 러너처럼 기초 훈련부터 다시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내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계속 무리한 훈련을 반복하며 부상을 되풀이하는 것보다, 오래 달릴 수 있는 몸을 만드는 쪽이 훨씬 현명한 선택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주 느리게, 거의 총총걸음에 가깝게 달리며 케이던스를 끌어올렸다. 동시에 심박수를 수시로 확인하면서 Zone 2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신경 썼다. 심박수는 조금만 방심해도 금세 기준선을 넘어섰고, 나도 모르게 빨라지는 페이스를 붙잡아 두는 일이 훈련의 핵심이 되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심박수가 흔들릴 때마다 가민 워치의 알람이 울렸고, 그 소리 때문에 집중이 흐트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오래 달려야 하는 이유가 있었고, ‘계속 달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지키고 싶다는 더 큰 목표도 있었다. 잘되지 않아도 반복하면 분명히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저 코치님의 지도대로 묵묵히 달렸다.
Zone 2 달리기 훈련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며 훈련을 이어 가자 몸도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달리는 훈련이라고 해서 피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회복에도 더 신경 쓰며 훈련 일정을 조율했다. 몸 상태가 괜찮은 날에도 계획된 훈련 외에는 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마음보다 계획을 우선했고, 철저하게 정해진 흐름 안에서만 움직이려 했다.
나는 매일 가민 워치의 바디 배터리를 확인한다. 그 수치는 오늘 내 몸이 어느 정도 달릴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준이 된다. Zone 2 훈련을 시작한 뒤, 늘 낮게 머물던 바디 배터리가 서서히 회복되는 모습이 보였다.
그 변화는 강도 높은 훈련 중 하나인 템포런도 가능할 만큼 몸 상태가 나아지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무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욕심을 누르며 Zone 2 달리기만 반복했다. 그러던 지난주, 10km 템포런 훈련에서 페이스 유지에 대한 자신감을 조금 얻었다.
그 자신감은 곧 다른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이제는 Zone 2 방식으로 장거리 훈련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래서 일요일 저녁, 집 근처 공원에서 Zone 2 LSD 훈련을 진행했다. 거리는 16km였지만 아주 천천히 달렸기에 2시간이 넘게 걸렸다. 거리주라기보다 시간주에 가까운 훈련이었다.
직전까지의 훈련에 비하면 심박수 유지가 훨씬 수월했다. 거리를 늘려도 충분히 Zone 2 훈련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그동안의 성과에 만족하면서도, 동시에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과연 이 훈련을 통해 나는 페이스와 심박수를 유지하는 능력을 얼마나 끌어올렸을까.
그 궁금증을 확인하고 싶어서 어제 하프 템포런 훈련을 했다.
평일에 하프 거리 훈련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목표 페이스는 6분 40초. 작년 JTBC 마라톤 풀코스를 준비하던 때 이후, 이 페이스로 달려본 적이 거의 없었기에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도 지난 3주의 성과를 꼭 확인해 보고 싶었다.
처음 4km는 7분 페이스로 가볍게 웜업을 하며 몸을 풀었다. 그리고 5km부터 천천히 페이스를 끌어올렸다. 몸은 생각보다 그 리듬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주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전혀 낯설지도 않았다. 조금씩 몸이 페이스에 적응하면서 계속 달릴 수 있었다.
이 훈련에서 중요했던 것은 단지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었다.
목표 페이스를 지키면서도 심박수 154bpm을 넘기지 않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과제였다.
15km까지는 비교적 수월하게 페이스와 심박수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페이스를 붙들어 두는 일이 쉽지 않았다. 심박수도 조금씩 흔들렸다. 그럼에도 끝까지 페이스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애썼고, 결국 계획했던 하프 훈련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결과는 평균 페이스 6분 42초, 평균 심박수 150bpm, 총 2시간 20분.
정말 오랜만에 6분대 페이스를 다시 느낄 수 있었고, 그 페이스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놀라웠다. 나는 그 순간, 이것이 바로 Zone 2 달리기 훈련의 진짜 성과라고 느꼈다.
아직은 3주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정도의 변화를 확인했다면, 앞으로 6개월, 1년 동안 꾸준히 이어 갔을 때 어떤 결과를 만나게 될지 자연스럽게 기대하게 된다. 그 기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한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결국 내가 되찾고 싶었던 것은 빠른 페이스가 아니라, 오래 달릴 수 있는 몸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앞으로도 나를 ‘계속 달릴 수 있는 사람’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 믿는다.
“느리게 달린 3주는, 어쩌면 앞으로 더 오래 달릴 수 있는 시간을 내게 돌려준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