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직이 갖는 권력

국가 돈을 집행하는 입장으로서 감히 고언 하건대...

by 루치아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


세상에 '갑'이 있고 '을'이 있다면 내 위치는 '병' 정도일 텐데,

이 '丙' 조차 권력을 느낀다면, 진짜 벼~엉신 같은 걸까 싶다.

'병' 주제에 '갑질'같은 '병질'을 한다는 건 아니다.


그저 내 돈도 아닌 국가 돈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감사를 받는 게 쑥스러워 고백해 보는 것이다.




1. 강사님들에 대한 권력.


내가 프로그램을 짜고, 그 프로그램에 맞게 강사님들을 모시다 보니

강사님들이 내게 너무나 감사해한다.

난 그저 내 일을 했을 뿐인데 이토록 감사해하는 게 머쓱하기만 한데,

어떤 강사님들은 자길 불러줘서 너무나 고맙다며 커피 쿠폰을 쏘시고, 공방에서 만든 물건들을 선물해 주신다.

이토록 강사님들이 '청년도전지원사업' 강의를 맡은 것에 열광하는 이유는 강의료가 무려 시간당 (세전) 10만 원이고 대부분 하루에 4시간 수업으로 구성되어 있어 꽤 목돈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료비도 따로 떼어드린다!


사실 교육 관련 강의 강사료가 너무 짜서 그렇다.


공주시 초중등 학교 방과 후 강사님들 얘길 들어보면 재료비도 따로 안 챙겨주며 시간당 3만 5천 원, 혹은 4만 5천 원 정도 준다.

시급 치고 높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강사님들의 수업준비시간과 학교까지 오가는 비용, 시간 등을 고려해 보면 너무나 저렴하다.


현직 학교선생님들께 얘기 들어보니


이 조그마한 소도시 내에서도 아파트 단지 촌 근처에 있는 큰 학교는 수학여행 한 번을 가려해도 지원금 전혀 없이 오롯이 학생이 부담해야 하는데


한 15분 정도만 차 타고 나가는 외곽의 학교들은 교부금이 남아돌아서 학생 전원 여행경비를 지원해 주고도, 학용품을 퍼주고, 서울로 공연을 보러 가고, 그래도 남아 학급 운영비 목적으로 수시로 피자를 사주고, 방과 후로 배우는 골프 장갑까지 (학교 내에 골프 연습장이 있다!!) 구매해 주고도 돈이 남아 그 돈을 어떻게 써야 하나 골머리를 앓으신단다.


하지만 강사비는 10년 전부터 시간당 3.5만 혹은 4.5만으로 오르지 않고 있다. 게다가 그 강의료에선 세금도 뗀다.

시골학교일수록 강사님을 모시기 힘든 이유가 강사님들 입장에서도 유류비 떼면 남는 게 없어서이다.


또 세금 집행을 모르시는 분들은 선생님들을 욕하실 수도 있겠지만

선생님들도 하급 공무원일 뿐이다.

위에서 교육 관련 교부금을 품목별로 받아서 집행하는 입장으로서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아주 작은 학교 아닌 다음에야 한 학년에 반 2~3개 정도 되는 규모의 학교조차 방과 후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선생님 또한 기간제, 계약직으로 뽑아 외주를 주기에

우리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방과 후 강사 모집과 관리 시스템에 대해 모르시는 분들이 더 많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도전지원사업' 강사비 시간당 10만 원은 거의 '생태계 교란종'과 같다.(우리 팀장님의 표현을 빌어왔습니다.)


게다가 강사님들은 기타 평생교육원이나 학교의 강의를 맡기 위해 매년 이력서를 내시는데,

충남 광역권 공공기관의 강의 이력은 본인의 커리어에 꽤나 도움이 되는 한 줄을 채우게 되는 모양이다.


올해도 강사님들은 내게 '간택'당하면서 너무나도 감사해한다.


그러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은

"강사님 수업이 너무나 훌륭해서인걸요. 제가 모셔서 영광입니다."

이다.

그리고 커피 쿠폰 안 보내주셔도 돼요!! ㅎㅎ






2. 참여자들에 대한 권력


'청년도전지원사업'은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여~러 사업 중 보기 힘든 '현금지원'사업이다.

특히 평생교육 쪽은 많은 사업들이 무료 수업을 진행하는 게 대부분이고

지원을 해준다 해도 '바우처'의 형태로서 참여자가 직접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국가 예산이 각 공방, 센터 등으로 돌게 만든다.(이 구조의 모순에 대해 정말 할 말이 많다. 다음 기회에 이 '바우처' 지원을 국가가 모두 끊어야만 하는 이유를 말해봐야겠다.)


하지만 청년도전지원사업은 참여자 통장에 50만 원을 세금도 안 떼고 입금해 준다.


참여자가 50만 원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은 '출석'이고,

그 출석을 관리하는 것이 바로 나와 같은 '코디'들이기에

참여자들은 코디들을 존중해 준다.


... 하지만 '권력'을 갖는다고 쓰려다 보니 사실 '호구 잡혀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 지도...


참여자들은 6개월 이상 장기 미취업자들로서 50만 원이 정말 귀하고 소중하기에 참여했는데


사람이 정말 화장실 들어올 때와 나갈 때 마음이 이토록 다른 건가?


참여 초반에 그 의욕적으로 보여주던 참여의지는 단 2주 정도만에 모두 사라지고


내게 "수당 언제 입금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카톡이 쏟아진다.


다시 한번 말하겠다. 정말 말 그대로 쏟.아.진.다.


공무원들이 민원 때문에 힘들다는 말은 정말 엄살이 아니다. 특히 이런 '지원'정책 관련 부서는 자기 돈 맡겨놓은 사람들처럼 돈 내놓으라고 얼마나 압박하는지!!!


그럼 나도 '출석' 관련해서 강경하게 말한다.

국가 돈 받기 쉽지 않다고.

출석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거기에서 약간의 권위를 세워보지만....


... 하지만 본부에선 또 본부 나름대로 매년 11월에 있는 행정감사와 기관평가에서 '최우수'를 받기 위해 중도이탈자를 막아야 하므로 출석은 못하지만 돈은 달라고 하는 참여자들을 어떻게든 달래 보라고 한다.


2번 참여자들에 대한 권력은 말을 바꿔야겠다.

그냥 '참여자들의 권리 주장' 정도로.



지금 열심히 일하시고 세금 열심히 내시는 분들이

"내 세금이 저렇게 쓰이고 있다니..." 하고 한탄하실지 모르겠다.


하지만 저~ 높은 고용노동부 정책 만드시는 분들과 그와 비슷한 높으신 충남도청 청년정책관 분들이 정말 머리 싸매고 만들어 국가에 꼭 필요한 정책이라 생각하시고 만든 사업이다.


대한민국의 미래에 청년 한 명 한 명이 너무나 소중하기에 은둔하는 청년들이 사회에 나올 수 있는 일종의 샌드박스 혹은 스캐폴드가 필요한 상태이니 '청년도전지원사업'이 그 역할이 되어줄 것이고

또 강사분들께 강의료가 돌아가며 경제도 돌고

청년들도 수당을 받으면서 자신의 노력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을 볼 것이다.


그리고 난 현장에서 강사님들과 참여자들을 직접 대면하며 또 수많은 감사를 받는 소소한(?) 권력(??)도 누리니

나 또한 그저 이 사업이 존재하는 것 자체에 감사하다.


하지만 오늘도 참여자 모집을 하고, 프로그램 관련해 강사님들께 연락하면서 숨을 들이쉰다.


너무나 소중한 청년들이지만

세금 또한 너무나 소중하기에, 내가 과연 이렇게 집행해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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