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산다"에서의 "잘"의 뜻은
well이 아니라 rich
내가 사는 소도시에서 차로 30분 거리의 어느 신도시에 가면 빽빽한 아파트가 끊임없이 줄 서 있고, 밖에서 봤을 땐 택배 상자만 해 보이는 창문들 한 칸 한 칸이 몇 억씩이라니 현실감이 느껴지질 않는다.
지구엔 70억 넘는 인간들이, 그중에 대한민국엔 5700만 명 정도로 나타나지는 사람의 숫자는 그냥 '그렇구나' 정도의 딱히 감흥을 주진 못하지만, 막상 도로에서 마주치는 수백 명의 사람들과 8차선 도로에 꽉 찬 차들과 또 그 차들을 운전하고 동승한 사람들이 저 빽빽하고도 비싼 아파트를 모두 채우고 있다니 새삼 놀랍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게다가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나 '잘'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면 도무지 이 현실이 오히려 거짓말같이 느껴진달까 믿기 힘들어질 정도다.
'잘 산다'가 'well-being'으로서의 의미보다는 'be rich'의 뜻으로 통용되는 세상 속에서
난 그들을 그저 부러워하는 걸까?
내 주특기인 열등감을 느끼는 걸까?
저들이 잡은 기회라던가 성공의 흐름을 못 잡은 날 탓하고 수치스러워하는 걸까.
아니면 나도 그들 무리에 끼어들고 싶은 욕망이 불타오르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내가 원하는 어른의 자세로 나는 나, 그들은 그들, 다들 잘 살고 있구나, 하는 흐뭇한 관망하는 자세를 갖는 걸까.
아마 저 모든 감정과 감상이 다 들어있었겠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가 되는 것은 선망의 대상이자, 자신의 노력의 부산물 내지 인생 최고의 목표이기도 하니까 저 몇억짜리 조각들을 차지하고 있는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도 못 가진 나를 부끄러워하는 것도 어쩌면 내 사회화의 일부일 뿐이다. 내가 원해서 이런 감정을 갖는 게 아니라 난 그저 그렇게 배워왔기에 내가 통제 못하는 감정일 수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살다 보면 살아진다지만.
사는 거 다 비슷하다지만.
내가 나를 바꿀 수 있고, 마음 챙김을 하면서 나아진다지만. 이 가깝지만 낯선 도시에 올 때마다 이런 복잡한 감정을 갖는 게 짜증 난다.
왜 내 마음은 항상 이토록 시끄럽고 불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