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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치아 Apr 22. 2021

있는 그대로의 날 받아들여야 나 자신이 좋아진다던데

그래도 난 내가 싫다. 너무나.

나를 좋아하고 싶다.

그런데 싫어한다.

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주문처럼 되뇌어도

불현듯 깨달음처럼 솔직한 마음이 튀어나온다.

난 도저히 날 좋아하는 구석이 없다.


남들이 보기에 안정되고 돈 많이 번다는 직업을 가졌다면 좀 나았을까?

살을 진즉에 빼서 다리가 좀 더 예뻤다면 날 좋아하게 되었을까?

공부를 좀 열심히 해서 머리에 든 게 많았다면?

로또에라도 당첨되든 해서 돈이 많으면 이렇게 날 싫어하진 않았을까?




 .... 생각해보면

본인의 20여 년 전 수능점수로 지방대 의치대를 쓸 수 있었다.

그래서 의사나 치과의사가 되었다면 나 자신에 대해 자신감을 가졌을까?

...음...선민의식에 쩔어서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났다는 착각에 빠져있고,

 (현직 의사분들이 저런 상태란 게 아니다. 내가 워낙 부족한 인간인지라  철안들고 지랄했을 거  예상되기에 한 말이다.)

또 나보다 잘난 사람들과 비교해가며 지금과 같이 자격지심에 몸부림치고 그들을 격하하려 애썼을 것이다.

 게다가 의사들이 공부를 얼마나 힘들게 했고, 또 졸업하고도 꾸준히 공부해야하며  일 자체가 얼마나 힘든나이들며 더 알게 되니 엄두가 나질 않는다.



다이어트에 성공했었다면?

물론 중딩때부터 허벅지가 너무 굵어졌다는 생각에 날 싫어해왔으니 살을 뺐다면 자신만만해지기도 했겠지만, 그냥 날씬한 게 아니라 운동으로 체력도 기르며 온 몸이 탄탄해지길 원했으니, 예쁜 다리가 전부는 아니다.

20대 때 서울 살며 잠깐 날씬해진 적 있긴 했는데 그때도 딱히 날 좋아하진 않았다.



 공부를 제대로 했다면 지금쯤 영어도 유창하게 하고, 공무원이 되어있을 테니 나 자신을 좋아했으려나?

흠... 자부심이야 있었겠지만  자신을 좋아하는 것과 또 좀 거리가 있고...




로또 당첨으로 부자 되기?

삶이 편해졌긴 하겠지만 그것이 내가 나 자신을 좋아하게 만드는 열쇠는 아닌 것이 확실하다.



종합해보자면,

난 공부도 열라 열심히 해서 3개 국어 유창하게 하며 고위공무원이 되었는데도 인성도 바르게, 나 자신을 부족하다고 여기는 겸손한 태도에,  또 당당함을 잃지 않으며 그 와중에 운동도 열심히 해서 체력도 엄청 좋으며 몸매도 완벽하고, 게다가 부자가 되고 싶은데 그 방법이 내가 번 돈으로 투자에도 성공하거나, 부캐로 큰돈을 벌어야 하고, 그 돈으로 백화점 vip 될 만큼 고오급진 옷, 화장품, 향수 사재끼며 살고, 피부과도 뻔질나게 가서 관리받고 주사 맞고 해야 겨우 날 좋아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이다.




법정 스님이 말씀하셨다.

자격지심 있는 사람들은 다 자의식 과잉 환자들이라고.

지가 뭐 대단한 인간이라고 너무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으니 자기 자신을 좋아할 수 없는 거라고.


맞다 난 내가 뭐 대단한 인간인 줄 착각하며 살기에 날 좋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노력이라도 하든가.

노력은 또 힘들어서 못하면서.

노력을 안 하니 날 더 좋아할 수 없다.


날 좋아하는 방법에 대해 알고 싶어 책을 읽고 유튜브를 보며 조금이나마 깨달은 것은

오늘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해서 노오오오력을 하고 작은 성취를 스스로 칭찬하고

또 가장 중요한 건,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는 것.


비록 내 하비 다리를 싫어하지만 이 다리로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나는 내가 싫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음에 감사합니다.

돈을 벌지 못하는 내가 너무나 밉지만... 그래도 살아있음에 감사합니다.


.... 하지만 지금 앉아있으면서 보이는 푹 퍼진 내 다릿살이 너무 꼴 보기 싫고,

내 잘난 친구들이 주식으로 얼마 벌었네, 5월에 돈 나갈 일 많지만 보너스가 나오네 이런 얘길 들으니 또 위축되고,

내가 이렇게 시시한 인생으로 끝날까 봐 무섭고,

그런데도 이렇게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가 너무 싫은 걸 어떻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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