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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치아 Jun 08. 2021

모욕받아 마땅한 기준이란.

그냥 넘길 일인데 내가 자격지심 때문에 모욕감을 느끼는 것인지 궁금할 때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지방의 모 교대 부설초로서 

초등학교 입학생이 대부분 주소지 근처의 초등학교로 배정되어 입학 통지서를 받는 것과는 달리

이 소도시 내에서 어느 동에 사는지에 상관없이 원서를 낸 아이들 중남자 40명, 여자 40명을 추첨으로 뽑는다.


2018년 그 초등학교 입학생 추첨 날,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고등학교 동기를 학부모 동기로 만났다.


동기의 아들이 내 딸과 나이가 같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 뿐이랴, 

몇 년 전에는 서로 가까운 아파트에 산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어 

근처 키즈카페에 만나서 아이들과 같이 놀자고 했는데

동기의 아들은 혼자 놀기를 편해하기에 아, 안 맞는구나, 하고 또 한참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어른이 되어 아이를 흉볼 수 없으니 말을 순화한 거지 애가 얼마나 참.... 그렇던지...정나미가 뚝 떨어졌었다.

아이가 진상이면 그 엄마도 진상인 경우가 99.99%다.)


게다가 그때 동기가 날 만나자마자 한 말이

"진짜 어떻게 만나긴 만나네."

라는 말에서부터 약간 띠꺼움(?)이 느껴졌다.

동기의 말투에서 자기는 날 그다지 만나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사정사정해서 만나자 해서 어쩔 수 없이 나왔다는 뉘앙스랄까? 

동기가 먼저 "밥 한번 먹자. 시간 언제 돼?"라고 질문했었지만,  

정말 만나고 싶어서 얘기한 게 아닌데, 내가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인 건가. 

알 수 없다.


여하튼 2018년 가을의 그날, 둘 다 첫아이를 학교에 입학시키면서 상기된 마음으로 만났으나


만난 지 5분도 안되어 난 모욕감을 느꼈고, 3년이 흐른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불쾌하다.




난 도시의 가운데를 관통하는 강이 흐르는 이 소도시에서 학원을 10년 경영해본 바로


신도심이 된 강북지역에 있는 5군데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이해력이 높고, 상황마다 적응력도 좋은 반면

(그 학교들 근처 학부모들이 교육열이 더 높은 탓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한 학년에 10반 내지 7반 정도 되는 규모가 큰 초등학교다.

그래서 내가 어느 초등학교에 입학시킬지 고민하는 학부모가 상담해올 때마다 강력히 추천하는 것이

1. 큰 학교에 보내세요.

2. 생일이 늦어도 그 나이에 보내세요. 공부 못 따라갈까 걱정돼서 1년 늦게 입학시키는 학부모가 종종 있는데,  그 나이 때는 1살도 크게 느껴져 늙은이라 놀림받는다.)


구도심이 된 강남지역 초등학교는 대부분 1반으로 줄어들어 분교 수준이 된 초등학교가 대부분이고, (그 한 반도 학생이 10명 안팎으로 적다) 

강남에서 그래도 제일 큰 초등학교가 한 학년에 4반짜리인 내 아이들이 다니는 부설초인데


적은 학생수가 다니는 학교의 학생일수록 문장 이해력도 낮고, 

무엇보다 상식이 부족해서 놀라곤 했는데(하향평준화가 되어 있달까)

부설초 다니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아는 것도 별로 없으면서 '선발되었다'는 마인드 때문인지 자만심만 충만한 경우를 많이 봐서

이 부설초등학교를 정말 싫어했다.


인간은 자만할 때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부설초 아이들이 유독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만 있을 뿐 

글을 요약하는 스킬을 늦게 익히거나 아예 익히지 못하고 학원을 그만두는 비율이 높았다.


하지만, 그 당시 아이들을 봐주던 시부모님이 원하셔서

(이 소도시에선 부설초가 명문초라는 허황된 이미지가 있기에) 

부설초 추첨에 응모했고, 3:1에 육박하는 경쟁률에 당연히 떨어질 거라 생각했음에도 

아이들은 차례차례 운 좋게...라고 말해야 하는지 고민되나 여하튼 '당첨'되었다.


초등학생으론 드물게 교복을 입으니 아침에 뭘 입힐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어 편했고,

교육대학교와 같은 운동장을 쓸 만큼 대학과 붙어있다시피 해서 초등학교임에도 대학의 편의시설(음악관에서 교향악단을 연습시키거나, 수영장, 테니스장. 간이 골프장 등등)을 이용할 수 있어서 

이왕 당첨된 거 장점만 보자, 

내가 아이들에게 겸손하길 지도하면 된다,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다시 첫아이가 학교 입학이 확정된 날 동기를 만난 그날로 돌아가자면


동기와 오랜만에 만나 반가워하며 이런저런 근황 얘기, 다른 연락되는 동기들 얘길 하다 

문득 카톡 친구 목록에는 있고 전화번호가 없어 서로 번호를 교환 중인데 


교장선생님과 그 옆에 교사로 추정되는 분이 같이 걸어오시더니 

동기의 어깨를 톡톡 치곤 얘기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동기는 '어깨를 톡톡 친 교사로 추정되는 분'과 서로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 같았다. 

교장선생님은 동기와는 거의 초면인 듯 하나 

동기의 여동생이 초등학교 시절 은사님으로 동기의 여동생 안부와 동기의 아버님(사범대 교수님이셔서 교장선생님과 인연이 깊어 보였다.) 안부까지 물으며 한다는 말이 

"근데 J선생 살이 너무 많이 쪘다. 관리해야지."였다. 

 나한테 한 말이 아니지만, 아무리 동기의 가족들과 아는 사이일지라도 동기의 지인도 아닐진대 그런 말을 태연히 하는 교장선생님에 내가 다 불쾌해졌더랬다.


게다가. 내가 그 동기와 대화를 하고 있던 걸 뻔히 알면서.  

난 그 대화에 끼지도 못하고, 끼워주지도 않으면서, 

내가 옆에 멀뚱멀뚱 서 있는 걸 뻔히 보면서 

나와 동기가 대화하는 중간에 동기에게만 말을 걸고 날 투명인간 취급한 것에  모욕감을 느낀 나는 

그저 자격지심이 심한 걸까.  

그저 그들은 나를 모욕해도 되는 위치이고, 난 모욕받아 마땅한 사람이라서였을까. 

그런 모욕받아 마땅한 기준이란...


나를 무시했다고 그 사람들을 미워하지 말고 

내가 무시받을만한 위치라며 그들을 이해하고 

억울하면 출세하란 말이 진리임을 깨닫는 결론을 말해야 한다면

너무 억울해서 화가 난다.


차라리 그들이 나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고,

나 또한 다시 만날 사람들도 아니니 기분 더러워도 잊어버리자, 고 내뱉어야지.

... 내가 소인배인 건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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