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클레스 비극
얼마 전(2025년 6월) 김기석 목사의 <고백의 언어들>을 읽고 정리하던 중 '십브라와 부아'의 불복종 사례에 대한 그리스 비극으로 '안티고네'를 인용하는 부분을 만난다. 2010년쯤 경영이 힘들었던 시절, '철학아카데미'와 '정암학당'을 찾기 시작했다. 근현대 서양철학에 빠져들어 헤매다가도 고대 그리스 철학과 비극의 이야기로 풀려나기도 했다. 그 정암학당에서 고대 그리스 철학과 고대 그리스 비극 작품을 간혹 접하게 되어 읽게 된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을 다시 펼친다.
'가장 아테네를 사랑하는 사람(Philathenaiotatos)'이라는 불리는 소포클레스(Sophocles, 497 ~ 406 BC)는 아이스퀼로스(Aeschylos, 523 ~ 456 BC) 및 에우리피데스(Euripides, 480 ~ 406 BC)와 함께 그리스 3대 비극작가이며, 비극경영대회에서 18번 우승한 최다승 작가이다. 특히 아이스퀼로스의 비극과 달리 신이 아닌 인간이 주역이 되는 특징이 있다. 당대에 유명한 페리클레스(Pericles, 461 ~ 429 BC), 헤로도토스(Herodotus, 484 ~ 425 BC), 소크라테스(Socrates, 470 ~ ? BC) 등과도 접촉이 있었던 소포클레스. 특히 그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비극이 '시적 효과면에서 비극이 서사시보다 더 우수한 예술형식'이라 주장하며 '비극의 모든 요건을 갖춘 가장 짜임새 있는 드라마'라고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또 오이디푸스 관련 작품 중 하나인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아들 이오폰이 본인을 정신병자로 고발하자, 그 작품의 일부를 암송함으로써 정신병자가 아님을 증명했다는 일화로 유명하며, 오이디푸스 딸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안티고네>는 그를 90세의 고령으로 사망을 하게 한 원인이라는 설로 유명하다.(<안티고네>의 긴 단락을 쉬지 않고 읽다가 과로해서 사망했다는 설이 있음)
소포클레스는 BC 441 <안티고네>, BC 429 <오이디푸스 왕>, BC 406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의 순으로 작품을 썼거나 공연되었지만, 사건이 벌어진 순서는 <오이디푸스 왕>이 처음이고, 그다음이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이며, 마지막이 <안티고네>이므로 사건 순서로 정리한다.
<오이디푸스 왕, Oedipus Tyrannus>
이 비극은 2015년 영국 미디어 가디언(The Guardian)의 연극 평론가 마이클 케이스 빌링턴(Michael Keith Billington, 1939~현재)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극 101편을 선정했을 때 2위에 올랐다고 한다.(1위는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비극 작가 아이스킬로스(Aeschylus, BC 525,524~BC 456,455)의 '페르시아인')
오이디푸스(Oedipus)는 "심하게 부어오는 발"이라는 의미로, 그 대략 사연은 이렇다. 그의 아버지인 테바이 왕 라이오스는 젊은 시절 피사 왕 펠롭스의 궁에서 망명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 이때 펠롭스의 아들인 미소년 크리시포스를 사랑하여 겁탈하였고, 크리시포스는 이를 수치스럽게 여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아들을 잃은 펠롭스는 라이오스에게 절대로 아들을 얻지 못할 것이며 행여 얻게 되더라도 그 아들의 손에 목숨을 잃게 되리라는 저주를 퍼부었다. 후일 라이오스가 왕비 이오카스터로부터 아들을 낳자, 발목을 뚫어 가죽 끈으로 묶은 뒤 부하를 시켜 인적이 없는 산에 내다 버리게 된다.
이 오이디푸스가 코린토스의 목동에 의해 살아남아 스핑크스(sphinx, 상상의 괴물이라는 뜻으로 얼굴은 여자, 몸은 사자에 독수리 날개가 있는 모습)의 문제를 풀고 결국 테바이의 왕이 되어 비극 <오이디푸스 왕>의 시작을 알린다. 테바이(Thebes, 테베, 시바)는 그리스 중부 보이오티아 지방에 위치한 고대 도시로(테바인들은 대지의 배꼽/중심으로 여겼다고 함), 카드모스(Cadmus)가 용의 이빨에서 태어난 전사들을 이끌고 창건했다는 전설이 있는 도시다.
이 비극의 줄거리.
"역병이 덮친 테바이를 구해달라는 사제들의 요청에 오이디푸스는 처남 크레온을 포이보스(아폴론)로 보내 나라를 구할 방법을 알아오게 한다. 크레온이 돌아와 이전 왕 라이오스를 살해한 살인자를 벌주라는 신탁을 가지고 온다. 오이디푸스는 바로 라이오스를 살해한 자를 잡으라는 명령을 내리고, 장님 예언자 테이레시아스(Teiresias)에게 살인자가 누구인지를 묻는데 그 범인은 오이디푸스 본인이라 말한다. 사실을 부정하는 오이디푸스에 테이레시아는 앞 못 보는 장님, 거지가 되어 지팡이로 앞을 더듬으며 이국땅으로 길을 떠날 것이라 말한다. 오이디푸스는 크레온이 테이레시아스와 공모하여 자기에게 살인 누명을 씌우려 한다고 추궁하며 말다툼을 한다. 이 상황을 본 왕비 이오카스테는 라이오스의 아들의 손에 라이오스가 죽을 것이라는 신탁에 아들을 버렸다는 과거 사실을 오이디푸스에게 이야기하고, 오이디푸스는 과거 본인이 행한 일을 말하며 괴로워한다. 한편 코린토스의 사자가 와서 폴뤼보스 왕이 병사했다는 소식을 알리고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는 신탁이 맞지 않았다고 안심하지만, 그 사자가 어린 오이디푸스를 키타이론 골짜기에서 라이오스의 하인으로부터 받아 폴뤼보스에게 바친 목자임과 오이디푸스의 사연을 확인하고 탄식한다. 결국 이오카스테는 자살을 하고, 오이디푸스는 이오카스테의 브로치로 자신의 두 눈을 찌른다. 오이디푸스는 크레온에게 아무도 인사하지 않는 곳, 키타이론으로 보내달라 간청하며, 그의 두 딸을 잘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이 비극이 내게 들려주는 몇 가지 문장들은 이렇다.
오이디푸스는 코로스장으로부터 라이오스 왕이 살해된 사연을 들으면 힘들어할 것이라는 말에
(오이디푸스) 행동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말도 두려워 않는 법(41p)
오이디푸스는 테이레시아스에게 라이오스 왕의 살해에 대한 진실을 말하라 재촉한다.
(테이레시아스) 지혜로운 자에게 지혜가 아무 쓸모없는 곳에서 지혜롭다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41p)
오이디푸스는 처남 크레온이 오히려 자신을 죽이려는 말을 만든다고 화내며 크레온에게 말한다.
(오이디푸스) 왕권은 추종자들이나 돈 없이는 쥘 수 없는 법이네.(50p)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의 문제를 풀어낸 영웅이었지만 '사악한' 운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운명대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하는 '죄'를 피하지 못했다. 그렇다 해도 스스로 눈을 찔러 그 죄에 대한 스스로의 벌을 받고자 했다. 요즈음 한국의 정치 상황에서 보면 오이디푸스 왕이 상대적으로는 더 훌륭한 왕이란 생각이 들게 되는 장면이다.
2010년, 현대사의 참상인 레바논 내전을 배경으로 이 오이디푸스 왕의 구조를 채용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그을린 사랑>이 있었다. 인간 존재의 의미와 구원을 탐구하고자 의도한 것처럼 영화 중 이 대사는 비극 <오이디푸스 왕>의 말보다 더 울린다.
'1+1=1'임을 알게 된 쌍둥이 남매는 죽은 엄마의 편지를 읽는다. 오이디푸스의 실재 두 아들인 폴뤼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가 서로 왕좌를 탐하여 싸우지만.
함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란다.
원작인 비극과 달리 영화 속 아버지이자 형/오빠인 사람과 쌍둥이 남매는 모두 살아남는다. 이들의 삶이 행복하게 풀리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 비극일 것이다.
2020년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 지정희곡인 <오이디푸스 왕>은 꾸준히 연극 무대에도 올려졌지만 최근에는 상연된다는 소식이 없어 youtube를 통해 명품극단에 의한 공연을 감상함으로 아쉬움을 대신한다.(https://www.youtube.com/watch?v=7KQGRty6jk0)
이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는 세네카(BC4년경~AD65년)의 희곡, 그리고 18세기 유럽 극작계를 사로잡은 볼테르(Voltaire, 본명은 Francois-Marie Arouet,1694~1778, 계몽사상의 선구자)의 희곡 '오이디푸스'에 이어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에 의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이어진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이성적·형식적 가치라고 할 수 있는 아폴론적 삶과 감성적·도취적 가치인 디오니소스적 삶의 충동의 대립과 조화를 통한 삶의 의미를 구명하며, "비극은 삶을 정당화한다. 그것은 고통의 미학이며, 운명을 긍정하는 행위다."라고 말한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Oedipus Coloneus>
이 비극은 앞서 언급한 비극 <오이디푸스 왕>이 끝난 후 많은 시간이 흐른 뒤, 두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와의 권력투쟁이 시작된다. 두 딸 안티고네와 이스메네도 등장한다.
이 비극의 줄거리.
"장님이 된 오이디푸스는 딸 안티고네와 테세우스 왕이 있는 콜로노스로 간다. 차녀 이스메네가 찾아와 아우 에테오클레스가 장남 폴뤼네이케스의 왕위를 빼앗고 폴뤼케이네스가 추방되었다고 말한다. <오이디푸스 왕>과 달리 오이디푸스는 본인이 테바이에서 쫓겨났다고 말하며, 자신을 돕지 않고 왕좌만 탐한 두 아들을 원망한다. 코로스장은 '자비로운 여신들'에게 제주를 부어드리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 조언하고, 이스메네가 이를 수행하러 떠난다.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영웅 또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로 유명한) 테세우스(Theseus)가 나타나 오이디푸스를 시민으로 받아들인다. 크레온이 찾아와 조국 카드모스의 재앙을 피하기 위해 오이디푸스를 데려가려 한다. 오이디푸스와 테세우스가 강하게 저항하고, 크레온은 이스메네와 안티고네를 데리고 가지만, 테세우스가 그 둘을 다시 찾아온다. 아들 폴뤼네이케스가 찾아온 것을 오이디푸스가 거절하지만 이스메네는 만나보기를 요청한다. 폴뤼네이케스는 오이디푸스가 편드는 쪽이 승리한다는 신탁을 말하며 자신을 도와달라 말하나, 오이디푸스는 폴뤼네이케스가 궁지 몰리자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에 악당이라 칭하며 거절한 후 죽음을 맞이한다. 안티고네와 이스메네는 테세우스에게 테베이로 돌아가게 도와달라 요청한다."
코로스는 오이디푸스임을 알고 콜로노스를 떠나라 말한다.
(코로스) 당한 대로 갚는 자는 아무도 운명에게 벌 받지 않는 법(164p)
오이디푸스를 데려가기 위해 찾아온 크레온에게
(오이디푸스) 어떤 정당한 생각으로부터도 교활한 잔꾀를 끌어낼 줄 아는 자여.(187p)
안티고네가 오이디푸스에게 폴뤼네이케스를 만날 것을 요청한다.
정당한 것을 청하는 사람이 오래 간청한다는 것은 아름답지 못해요(205p)
테베이에서 추방된 일그러진 영웅은 코로노스로 와서 죽음으로 콜로노스를 지키는 영웅으로 되살아 난다. 앞서 언급했지만 <오이디푸스 왕>과 <콜로노스의 오디디푸스>에서 나타나는 오이디푸스는 사뭇 다르다. 성격과 일부 내용도 다르며 시사하는 바도 다르다. 왜 죽음으로서 그를 다시 영웅으로 되살린 것일까? 이 비극이 상연된 BC 401년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는 관점이 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참주정치를 거치면서 무너진 민주정이 부활하면서 아테네 민주주의의 위대함과 관용에 감동했다는 것이다. 자세한 것은 이 기사를 참조할 것.(아테네인은 패륜아 오이디푸스를 관용으로 용서하죠…관용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믿음이 바탕에 깔려 있어요 | 한국경제)
그런데, 이후 테바이의 왕은 누가 되었으며, 테세우스와 콜로노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정말 오이디푸스의 도움을 받게 될 것인가?
이제 소포클레스 테베 3극의 마지막인 <안티고네>로 이어진다.
<안티고네, Antigone>
<안티고네>는 '거슬러 걷는 자'라는 뜻으로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의 내용에 이어서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 간의 전투로 모두 죽은 후의 내용으로 전개된다.
이 비극의 줄거리.
"크레온은 죽은 에테오클레스에게는 장사를 지내게 허락하였으나, 폴뤼네이케스는 무덤도 갖추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고 이를 어길 경우 모두 돌로 쳐 죽이겠다는 엄명을 내린다. 안티고네는 이 명령을 어기고 폴뤼네이케스를 묻어주려 하고, 이스메네는 크레온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크레온은 파수꾼으로부터 누군가 폴뤼네이케스의 무덤을 만들었다고 전하는 말을 듣고 대노한다. 곧이어 안티고네가 잡혀와 포고령을 어긴 이유를 말한다. 크레온은 안티고네를 처벌하려고 하자, 크레온의 아들이자 안티고네의 약혼자인 하이몬이 찾아온다. 하이몬은 크레온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안티고네의 행위가 명예로운 일이라는 소문도 있으니 생각을 바꾸라는 조언을 한다.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가 찾아와 안티고네를 죽이는 것에 심사숙고할 것을 조언하며, 이를 어길 경우 크레온 혈육 중 한 명이 죽을 것이라 경고한다. 이에 크레온은 결정을 번복하지만 안티고네와 아들 하이몬은 결국 자살하고, 이 소식을 들은 크레온의 아내인 에우뤼뒤케도 자살한다."
파수꾼으로부터 누군가 폴뤼네이케스의 무덤을 만들었다고 전하는 말을 들은 후.
(코로스) 세상에 무서운 것이 많다 하여도 사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108p)
크레온이 안티고네에게 포고령을 어긴 이유를 묻자.
(안티고네) 인간의 포고령이 신들의 변함없는 불문율들을 무시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113p)
코레온이 안티고네에게 폴뤼네이케스의 장사를 치러 에테오클레스를 모욕하는지를 따지자.
(안티고네) 나는, 서로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려고 태어났어요.(116p)
테이레시아스가 크레온에게 경고하며 하는 말.
(테이레시아스) 인간은 실수를 하더라도 자기가 저지른 실수를 고칠 줄 알고 고집을 부리지 않는 자는 더 이상 행복으로부터 버림받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136p)
BC 467년, 아이스킬로스(Aeschylus)는 오이디푸스 비극 3부작의 세 번째으로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를 저술했는데, 이 안티고네에서 언급한 폴뤼네이케스는 그 일곱 장수 중 하나이다. 이 전쟁의 원인은 오이디푸스가 스스로 장님이 되어 테베 왕위를 버리고 떠난 뒤, 그의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는 1년씩 번갈아 왕이 되어 테베를 다스리기로 하였다. 그러나 먼저 왕이 된 에테오클레스는 1년이 지난 뒤에도 왕위를 내놓지 않자, 이에 폴리네이케스는 아르고스 왕 아드라스토스를 찾아가 그의 사위가 되었고, 아드라스토스는 사위의 왕위를 되찾기 위하여 군대를 일으킨 것이다.
결국 라이오스 왕의 가족 모두의 죽음으로 테바이의 혈통은 거의 중단된 듯하다. 테베에서는 안티고네만이 저항했지만, 한국의 현대사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최근의 한 기사에서 1948년 4월 3일 제주에서 발생한 주민희생사건을 주제로 한 국제정치학회에서 한 교수는 “자살을 하도록 내몰렸던 숱한 안티고네적 상황에서도 끝내 살아남아 자신과 공동체를 살리는 제주인들은 실로 얼마나 대단"한 지를 언급하며 한국 및 제주인들의 회복력을 강조한다.(“제주 4.3은 지속 가능한 정의·화해, 노벨평화상 추천 자격 충분” < 4.3 < 사회 < 기사본문 - 제주의소리)
경희대학교 이명희 교수는 "한강 ‘채식주의자’의 영혜, 폭력적 문명 질서에 맞서는 한국의 안티고네"라는 제목으로 글을 밝힌 적도 있다. 한동안 외로웠을 법한 한강이 이젠 대중으로 사랑을 독차지한 지금은 전보다 덜 고독할 것이다.
나는 오이디푸스 신화의 이야기로 콤플렉스만을 기억하다가, 소포클레스의 비극을 다시 읽으며 기구한 운명과 자유의지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하다가도, 결국 한국과 제주 4.3 사건이란 현실에 부딪혀 생각에 잠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오이디푸스가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분노
성장
인간의 실존
운명과 자유의지
우연과 필연의 모순
진실을 향한 용기
정의
...
소포클레스의 비극 중 오이디푸스 관련 3편의 비극을 다시 읽고 정리하면서 러시아 음악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1882~1972)의 오페라 '오이디푸스 왕'을 들으며, 한 편의 영화나 연극이 없을까 하는 궁금증이 다시 도졌다.
영화로는 타이론 거스리(William Tyrone Guthrie,1900~1971)의 '오이디푸스 렉스(1957)'가 있어 영상을 확보했으나 곧 즐길 일만 남았다. 참, 한국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의 주인공 오대수가 오이디푸스에서 따온 이름이라 한다.
다행히 2025년, 제22회 부산국제연극제 개막작으로 초청된 이탈리아 사르디니아 시어터의 ‘오이디푸스의 노래’는 소박하나 가장 기본적인 연극적 요소를 통해 현대에서는 감각하기 어려운 숭고하고 장엄한 인간 존재의 비극성을 한국 관객들에게 전달했다([거침없이 연극리뷰] 부산국제연극제 개막작 ‘오이디푸스의 노래’,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유전자로 빚어낸 인간의 비극적 본질 < 거침없이 연극리뷰 < 오피니언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스마트경제)고 하는 기사를 접했다. 22년 부산에서 동탄으로 이사 온 상황이라 몹시 아쉽지만 다른 연극이 있는지 계속 찾아보는 여행을 하며, 그리스인들이 찾았던 숨겨진 진리(알레테이아, aletheia)를 계속 찾아간다.
2025년 8월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