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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문학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 <독일인의 사랑>(1856)

by durante

9년 전에 내가 쓴 독후감을 우연히 접하고 다시 나의 생각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우선 재미있다. 흥미 있게 잘 썼다는 것이 아니라 9년 전에 이런 느낌과 생각으로 기록을 했다는 것이 우습다는 말이다.

둘째, 서글프다. 소설의 내용을 요약한 부문을 보니 지금의 난 그 소설의 내용을 이렇게 자세히 기억해 내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정겹다. 소설의 내용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당시 그 소설을 읽고 떠올린 나의 옛 추억은 소설의 기억보다 또렷하고 반갑다. 정말이지 이상하다.


지금은 사정상 이 소설책을 곁에 두고 있지 못해 다시 읽지 못하지만 조만간 다시 읽게 되면 난 같은 독후감을 쓰게 될까? 설렌다. 나는 어떤 추억을 떠올리게 될까...


2025. 11. 18 上海에서.



어느 동영상에서 나의 유시민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을 추천받는다. 당연히 <죄와 벌>이나 <전쟁과 평화> 같은 대작을 언급할 것을 기대한 나는 그의 대답에 다시 읽던 책을 바꾸어 펼친다. <독일인의 사랑>


그가 추천한 변은 이렇다.

"훌륭한 소설이라고 해서 그렇게 두꺼울 필요가 없어요. 이렇게 얇은 책이 저에게 주는 감동은 충분하니까요."


그렇다. 감동은 늘 순간에 다가오지 않는가?

번역본으로도 100쪽에 몇 장 모자라는 책. 책 바꿔 들기 참 쉽다.

'겨울나그네'-슈베르트의 가곡으로도 유명한-로 유명한 독일 시인 빌헬름 뮐러의 아들로 '스피노자의 윤리학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철학자이자 언어학자-시인, 소설가가 아닌-인 막스 뮐러는 일생에 단 한 편의 소설을 쓴다. 이 책 <독일인의 사랑>이다.

모든 위대한 결과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이겨낸 것과 같이 그의 사랑은 그의 부인 조지나 아델레이드와의 순탄치 않은 결혼 과정 때문이었다고 한다.-그러나 1853년부터 약 6년간의 구애기간으로 보면 평생을 친구의 여자를 사랑하다가 독신으로 지낸 브람스를 떠올리지는 않더라도, 그렇게까지 처절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사랑의 조건은 무엇이며, 사랑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를 이 책을 통해 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니 유시민 형이 좋아하는 이유를 찾기로 하자.

'어느 낯선 이의 서랍에서 찾은 글'이란 부재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서문과 9개의 회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에 서문이라...


1. 첫 번째 회상

"어린 시절에는 비밀과 신비가 깃들여 있다." 첫 회상의 첫 문장부터 맛깔나다.

뮐러의 회상을 더 훔쳐보기 전에 나의 비밀과 신비는 무엇이었을지 회상을 하러 담배를 물고 집 밖으로 나간다.

10세 때쯤, 옆집 친구가 부르면 읽던 책 내던지고 뛰어나갔던 시절, 비밀은 너 때문이 아니라 네 귀여운 동생 때문이었어...

중학교 시절, 나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시던 교생 선생님. 나는 그분을 언제 다시 만났을까...

고등학교 야자(야간자율학습) 시간, 항상 나에게 질문하다가 피곤으로 졸곤 했던 내 단짝-그는 장성해서 지금 육사의 대령으로 장성을 앞두고 있다-의 여사촌의 단짝 친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기억의 책은 집에 있는 낡은 성경과 같다. 처음 몇 장은 완전히 색이 바래고 해져 너덜거리며 그다지 깨끗하지도 않다. 몇 장을 넘겨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부분에서야 점차 깨끗해져서 읽을만해진다."

10세쯤의 내 기억은 '색이 바래고 해져 너덜거리며 그다지 깨끗하지 않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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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두 번째 회상

"꽃잎은 찢겨 시들고, 마음의 날개는 깃을 뽑히고, 마르지 않던 사랑의 샘에는 갈증만 겨우 면할 수 있는 몇 방울만 남아 죽을 것 같은 우리의 혀를 축인다. 이 몇 방울의 물을 가지고도 우리는 사랑이라 부르고 있다."

나도 뮐러처럼 어린 시절에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표현해서 버릇없다는 꾸지람을 들은 적이 있던가... 이제 반노인이 되어 당당히 사랑이라 부르는 것이 있다면 몇 방울의 물이 되어 버린 것인가...


3. 세 번째 회상

드디어 그의 마리아가 나타난다. 백작이지만 늘 아파 누워 있는, 얼굴은 창백하지만 아름다운, '남'이지만 내 것이고 싶은... 그런 천사로부터 마지막 반지를 넘겨받지만 돌려주며 말한다.

"이 반지는 날 주지 말고 그냥 그대로 가지고 있어. 네 것은 모두 내 것이니까."


4. 네 번째 회상

"누구의 인생이든 어느 한 시기에는 어딘지 모르는 먼지 날리는 한적한 포플러 길을 걷고 또 걷는 때가 있기 마련이며, 그 시기를 회상하면 남는 것이라곤 그저 계속 걸어왔고 나이가 들었다는 서글픈 생각뿐인 그런 시기가 있다."

아... 문단을 채 다 읽기도 전에 어느 틈에 나의 인생이 갑자기 책 위로 뿌려진다.

...

말러는 어느새 성장하여 대학생이 되었고 여름방학에 마리아를 만나러 고향을 와서 매우 들떠 있다.

"... 지금의 삶이 즐거운 것인지 낡은 회상이 즐거운 것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기억해 보자. 지난 몇 년 전에 일어난 즐거운 어느 사건, 만난 사람, 그와의 대화 등을 떠올려 보자. 입가가 자연히 올라가고 웃음이 절로 나온다. 기분이 묘해지며 세로토닌 호르몬이 분출하며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지금 행복한 삶이라 행복한 기억이 나는 것인가? 지금 삶이 고단하여 행복한 시기를 떠올리는 걸까?

뮐러는 철학 외에도 신학, 문학, 음악에도 매우 친숙한 듯하다. 여전히 신에 대한 신앙적 물음이 깊게 깔려있고, 나처럼 베토벤, 헨델, 멘델스존의 음악을 매우 좋아하는 듯하다. 특히 마리아 입을 빌려 멘델스존의 피아노 이중주를 연주하게끔 하기도 한다.


5. 다섯 번째 회상

마리아와의 만남이 계속되고 두 연인은 '독일신학'을 주제로 하여 가벼운 토론을 한다.

마리아는 "진리가 계시로 나타나는 것이지 계시가 진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고 하고,

뮐러는 삶의 하찮음을 가르치고 있긴 하지만, 그 삶을 소멸시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마리아의 오해를 살짝 지적한다.

재미있는 것은 스피노자가 <윤리학>에서 보여준 완벽한 논증은 자기 학설을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꼼꼼한 논증에 매달린 것 같다는 뮐러의 의견은 마치 파스칼이 '시간이 없어서 긴 편지를 썼다'는 말의 같은 뜻 다른 표현일 것이다.


마리아는 '어린아이가 치마에 하나 가득 모은 꽃잎을 아낌없이 잔디 위에 흩뿌리듯이' 이야기하고, 뮐러는 어렸을 때 사랑의 표현을 억압받았던 것처럼 속마음을 숨기다가 매튜 아놀드의 시 '파묻힌 생명'을 읽으라 권하며 고백을 대신한다.


6. 여섯 번째 회상

병약한 마리아에게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것일까? 마리아의 노주치의로부터 그녀의 건강이 더욱 좋지 않아 뮐러의 방문을 중단할 것을 권유받는다.

뮐러는 사랑을 고백하기보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고백하려다 "마음속에 떠오른 온갖 생각과 희망은 창공으로 날아오르려다 철망에 부딪히고만 새처럼 땅에 떨어졌다"는 표현으로 포기하고 말 것인지 고민한다.


7. 일곱 번째 회상

여행 중 최선의 것과 최고의 아름다움을 다음으로 미루지 말자고 생각하며 결국 티롤에 있는 마리아를 찾아간다.

마리아는 뮐러가 "종종 나뭇잎으로 떠서 마셨던 시원한 샘물"같은 워즈워스의 '고지의 소녀'를 건네며 읽어주기를 청한다.

마리아는 시적 과장을 버리고 미사여구나 허황된 시적 감동을 멀리하기에 더욱 좋다고 말한다. 괴테의 '헬레나', 바이런의 '하이디' 보다...

"금반지에 박힌 진주보다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이 훨씬 아름답지 않니?"라는 마리아에게, '기진맥진 오른 몽블랑보다 가볍게 산책하듯이 오른 등산이 더 아름답고 생생한 경치를 보여 줄 때가 있지'라고 말한다.

마리아가 미켈란젤로의 '소네트' 읽어주자 그는 마리아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마리아는 당황한다.


8. 마지막 회상

마리아에게 사랑 고백을 했지만 자기를 사랑한다고 했던 마리아의 당황에 이해되지 않지만 사랑에 대한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다짐한다.

'모든 것을 설명하려 들며 마음속의 신비를 모두 거부하는 윤리적 합리주의는 삶에서 혹은 사람에게서 얻는 기쁨을 망친다'

항간의 소문, 신분의 차이 등으로 인한 아버지의 반대로 마리아는 헤어지자고 말하며, "왜 나를 사랑하지?"라고 묻는다.

"왜냐고? 마리아! 어린아이에게 왜 태어났냐고 물어봐. 들에 핀 꽃에게 왜 피었냐고 물어봐. 태양에게 왜 햇빛을 비추냐고 물어봐. 내가 너를 사랑하는 건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야."


두 연인은 마지막 포옹과 키스를 하고 그녀는 세상을 떠난다.


2016. 10. 4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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