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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철학

사미르 초프라, <불안을 철학하다>(2024)

by durante

나의 한줄평 : 불안을 이해하려면 결국 실존주의 철학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강력한 충고


[1분 요약]

사미르 초프라(Samir Chopra)는 인도계 미국인 뉴욕시립대학교(CUNY) 철학 교수로서 실존주의 측면에서 철학을 연구하고 있으며, 불안은 치유할 대상이 아니라 불안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이해하고 삶을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야 함을 주장한다.

저자는 불안에 대한 철학적 지침으로

1) 불교 철학( 인간 자의식 이해로),

2) 실존주의 철학 및 실존주의 신학(참된 자유와 존재의 특징으로),

3) 정신분석학(정신의 외적·내적 억압과 갈등의 결과로),

4) 유물론적 비판 철학(사회의 비인간화와 '소외'화에 저항하는 인간 반응으로) 등 4가지를 제시한다.




[들어가며]

불안은 무엇인가? 왜 불안한 감정이 나타나는가? 불안을 줄이거나 없애는 방법은? 그 방법을 통해 나는 불안에 자유로워질 수 있나? 이 책이 이런 내 질문에 답을 줄 것인가?

성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읽다가 알랭 드 보통의 <불안>(2004)을 만나 '더 이상 아프지 않을 수 있는 방법'까지는 어느 정도 경험([독서] 철학)했으나 "불안을 철학하면 불안을 치유할 수 있다"라는 사미르 초프라(Samir Chopra)의 말과 나의 기본적인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 책을 이어서 읽는다.

먼저 이 책에 대한 소개로 7분 정도 되는 동영상을 먼저 시청한다.(https://youtu.be/cTuA7P-fTTA?si=aa9kUlgVCxvP0ZM_)

정말 불안에 대한 "뭉클한 철학"이 될 수 있는지 읽어보기로 한다.




[저자 소개:] 교보문고

Samir Chopra

뉴욕시립대학교(CUNY) 철학 교수. 미국철학실천가협회(APPA) 공인 철학 상담사. 인도계 미국인으로 뉴욕시립대학교에서 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모교 컴퓨터과학과에서 경력을 시작했으나, 학계 텃새에 치여 ‘몰입(flow)’할 수 없음을 깨닫고 본래 ‘집(home)’인 철학과로 전임했다. 이후 니체 철학, 실존주의, 실용주의, 심리 철학, 동양 철학을 강의했고, 인공지능(AI)의 철학적·법률적 기반과 과학기술의 윤리적·정치적 토대 등을 연구하면서 「네이션(The Nation)」, 「로스앤젤레스리뷰오브북스(LARB)」, 「이온(Aeon)」, 「프시케(Psyche)」 등 여러 매체에 철학 칼럼을 기고했다. 특이한 주제의 책도 여럿 썼다. 우선 철학자로서 뜬금없어 보이지만 아마도 그가 열두 살 때 마흔셋 젊은 나이에 타계한, 인도 공군 전투기 조종사로 두 차례 전쟁에 참전했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썼을 것이 확실해 보이는 두 권의 역사물 『1965년 인도-파키스탄 공중전(The India- Pakistan Air War Of 1965)』과 『방글라데시 상공의 독수리: 1971년 해방 전쟁에서의 인도 공군(Eagles Over Bangladesh: The Indian Air Force in the 1971 Liberation War)』을 펴냈다. 그리고 당시 몸담았던 컴퓨터과학계의 텃새와 별개로 그의 관심이 어디를 향했는지 대번에 알 것 같은 책 『해방을 디코딩하다(Decoding Liberation)』를 썼는데, 이 책은 리눅스(Linux)를 비롯한 ‘무료(free)’ 소프트웨어의 이면에 숨겨진 ‘자유(freedom)’를 향한 혁신 의지를 실존주의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해 AI 대리인의 윤리적·법률적 정체성을 어디까지 허용할지 모색하는 『자율적 인공 대리인을 위한 법률 이론(A Legal Theory for Autonomous Artificial Agents)』도 썼으며, 크리켓(Cricket) 열혈팬으로서 국제 크리켓 리그가 나아갈 길을 실용주의 맥락으로 고찰한 『멋진 신피치((Brave New Pitch)』를 통해 스포츠 철학을 제시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볼리우드(Bollywood)’라 불리는 인도 영화 산업의 중심에서 부단히 사회적·정치적 변화의 메시지를 담아 온 영화감독이자 제작자의 전기 『시얌 베네갈: 철학자이자 영화 제작자(Shyam Benegal: Philosopher and Filmmaker)』를 펴냈다.


저자를 요약하면, 사미르 초프라(Samir Chopra)는 인도계 미국인 뉴욕시립대학교(CUNY) 철학 교수로서 실존주의 측면에서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언제나 불안한 시대]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다"
- 쇠렌 키르케고르, <불안의 개념> -


불안을 철학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이해한다는 것이고, 우리가 불안을 다룰 줄 알면 우리 자신과 우리 삶도 제대로 다룰 수 있다.

근심과 걱정과 달리 불안은 '실체가 없는 두려움'이다. 부자에게도 비행기 사고, 불치병 등 '불확실한 미래의 고통'을 피할 수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한 우리는 불안하다"(16p)


저자의 불안에 대한 철학적 지침은 4가지다.

1) 불교 철학 - 인간 자의식 이해

2) 실존주의 철학 및 실존주의 신학 - 참된 자유와 존재의 특징

3) 정신분석학 - 정신의 외적·내적 억압과 갈등의 결과

4) 유물론적 비판 철학 - 사회의 비인간화와 '소외'화에 저항하는 인간 반응


저자의 의도는 불안의 '인간적' 고통에 집중해 불안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이해하고 삶을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아는 데 있다. 여기서부터 슬슬 철학이 '불안을 치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내 허황된(?) 기대가 흔들리고 있다.


"불안을 철학한다는 것은 '실존적'이고 '정치적'이며 '도덕적'인 불안을 다루는 일다"(22p)


"감정은 인식의 지배를 받기에 (...) 불안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다르게 인식하면 불안을 느끼는 우리 감정은 바뀔 수 있다."(23p)


불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불안을 피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직시하면서 훈습(熏習/Working Through)하라고 저자는 말한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훈습은 범어(梵語) ‘바사나(vāsanā)’를 한역한 불교 용어로, 향이 그 냄새를 옷에 배게 한다는 뜻으로, 우리가 행하는 선악이 없어지지 아니하고 반드시 어떤 인상(印象)이나 힘을 마음속에 남김을 이르는 말이다.

심리학에서는 '무의식적 갈등이 어떻게 현실생활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그에 대한 깨달음을 어떻게 적응적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며 변화하는 점진적인 과정으로 정의한다(<현대 심리치료와 상담이론>, 권석만)

나는 훈습과 습관은 모두 반복을 통해 행동이 몸에 배는 과정을 의미하지만, ‘훈습’은 새로운 행동을 익히는 초기 단계 또는 그 과정, ‘습관’은 반복을 통해 자동화된 행동으로 이해해 본다.


'우리는 항상 불안하다. 그러나 불안해하는 것에 대해 불안할 필요는 없다."(27p)


"철학이 입혀주는 '갑옷'은 무척 견고하며, 철학이 쥐여주는 '무기'는 매우 강력하다"(30p)



[항상 불안한 존재]


“O the mind, mind has mountains;
cliffs of fall / Frightful, sheer,
no-man-fathomed…”
(오 마음이여,
마음에는 가을(추락) 절벽 같은 산이 있네,
무섭고, 순수하고,
누구도 가늠할 수 없는)
-제러드 맨리 홉킨스, <“Terrible Sonnets”(끔찍한 소네트들)> -


위의 시는 홉킨스가 더블린에 머물며 심한 우울·영적 황야를 겪던 1885년 무렵의 작품들, 이른바 “Terrible Sonnets(끔찍한 소네트들)” 중 하나로 분류된다고 한다.

참고로 역서의 Fall은 '가을'이 아니라 '추락'의 의미라는 해석이 있다.


저자는 이 장에서 자신의 불안 고백(저자가 12살 때 아버지의 사망, 26살 때 어머니의 사망을 경험)을 함으로써 독자와의 공감적 유대를 형성하고 있다.


"재앙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그날의 평범한 일상으로부터 시작한다"(37p)
- 조앤 디디온, <상실> -


인용된 조앤 디디온(Joan Didion)은 미국의 뉴 저널리즘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2003년 남편 존 사망 후 1년간의 회고록인 <상실(The Year of Magical Thinking)>로 전미 도서상(2005년)을 수상한 바 있다.


"모든 것은 공동의존적으로 발현되므로(...) 우리는 혼자라서 불안하고 혼자가 아니라서 불안하다."(38p)


저자가 불안을 해소한 방법은 '내 인생의 목적은 없다고 나 자신을 이해시키고, 승리해야 할 까닭이 없으면 패배할 이유도 없음을 스스로 확신할 때"였다.


이 부분은 불안을 감소시키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사회생활을 "잘" 해야 하는 일반인의 경우 경쟁에서 승리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마련인데 이런 충돌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경쟁의 장을 벗어날 수는 없으므로 혹 그 경쟁에서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그 한 번의 행위의 결과가 좋지 않은 것이지 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는 스피노자가 "자유란 필연의 인식이다(Freedom is understanding necessity)"(스피노자, <에티카>)라 말한 것처럼 '외부 원인으로부터 자유로운 자만이 진정한 자유를 가진다'는 말과 유사하다.

또는,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의 '경쟁의 건강한 형태는 사회적 관심(Gemeinschaftsgefühl, social interest)'라 보는 견해를 참고하는 것이다. 경쟁을 승패만이 아닌 관계적 협력으로 보고 경쟁이 “다른 사람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발전하기 위해” 참여할 때, 경쟁이 불안의 원천이 아니라 자기 성장의 장이 될 수도 있다. 내가 평소 직원들에게 '영업은 Zero-sum이 아닌 Plus-sum'이라 주장했던 근거가 있었다.


저자에게 실존주의 철학은 이렇게 보이는 듯하다.

"철학과 문학의 혼합체인 실존주의는 지성과 감성의 혼합체인 인간이 추상적인 사변의 대상만이 아닌 피와 살로 이루어진 구체적 생명체임을 확인시킨다."(54p)


그는 실존주의 철학자로 사르트르, 니체, 키르케고르, 하이데거 외에 문학가인 카프카, 카뮈, 미겔 데 우나무노, 도스토옙스키를 당당히 포함시킨다.

참고로, 스페인의 철학자이자 시인, 소설가인 미겔 데 우나무노의 소설 <안개>는 작중 인물이 작가와 언쟁을 벌이다가 자신의 결말에 대해서 항의하는 것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하다 하니 향후 읽기로 한다.


"우리 실존의 진정성을 찾지 못한 채 우리 자신이 발견하거나 실현할 수 없는 것들을 갈구하는 순간 불안이 찾아온다."(57p)


"우리는 불안과 함께 살아야 한다."(58p)




[무아의 불안]


"괴로움이 나를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괴로움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 붓다 -


틱낫한(Thich Nhat Hanh)은 그의 저서 <The Heart of the Buddha’s Teaching >(1998)에서 “Suffering is not holding you, you are holding suffering.”이라 말한다.


불교에서 '두카(dukkha)'는 괴로움이나 고통으로 번역되지만 '불만족', "극심한 실존적 괴로움'에 가까우며 이 불만족의 근본 원인은 '극심한 불안'에 있다. 붓다는 "감정적 격변의 원인이 되는 믿음을 바꿈으로써" 매우 특별한 종류의 평온함에 이르면 분노, 두려움, 슬픔 같은 감정이 아예 없거나 사라진 상태, 즉 '무아(無我)의 경지'가 될 것이라 한다.

불교철학 관점에서는 우리는 자신의 참된 본성을 깨달아 비로소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실존주의는 우리의 참된 본성을 깨닫고자 불안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과 다르다)

불교철학의 불안 개념은 사정제(四聖諦, 네 가지 깊은 진실)인 고집멸도(苦集滅道)에 있다.

고(苦) : 괴로움, 두카(dukkha)

집(集) : 원인, 사무다야(samudaya), 인간 존재의 한계

멸(滅) : 제거, 니로다(nirodha)

도(道) : 방법, 마르가(marga)

'도'로 불안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 팔정도(八正道)

정견(正見): 바르게 보기

정사유(正思惟) · 정사(正思): 바르게 생각하기

정어(正語): 바르게 말하기

정업(正業): 바르게 행동하기

정명(正命): 바르게 생활하기

정정진(正精進) · 정근(正勤): 바르게 정진하기

정념(正念): 바르게 깨어 있기

정정(正定): 바르게 삼매(집중)하기

팔정도를 통해 우리 자신이 실재 누구이고 무엇인지 보지 못하게 만드는 걸림돌을 마음에서 제거해 궁극적인 '멸'의 상태이자 해탈의 경지인 열반(涅槃, nirvana)에 이른다.

그러나, 우리는 세 가지 이유로 두카를 초래한다.

1) 불확실성

2) 욕망이 계속 충족되지 않음. 쇼펜하우어의 '끝없는 욕망의 부정'과 같다.

3) 우리가 상상하는 방식으로 실재하지 않는 자아를 상상하고 집착함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 1818/1844)>를 읽다가 포기한 지 몇 번째인데... 또다시 의무감으로 나의 독서 리스트에 올려야 한다.


갑자기 방하착 착득거(放下着 着得去) 이야기가 생각난다.

"중국 당나라 때 엄양 스님이 조주 스님에게 물었다. "한 물건도 가지고 오지 않았을 때, 그 (깨달음의) 경계가 어떠합니까?" 이에 조주 스님이 "내려놓거라(방하착放下着)."라고 하였다.

그러자 엄양이 "한 물건도 가지지 않았는데 무엇을 방하착 합니까?"라고 다시 묻자 "그러면 지고 가거라(착득거, 着得去)."라고 대답하였다."

마음속에 아무것도 없다는 인식 그 자체도 내려놓으라는 뜻으로 해석된 것을 본 기억이 난다.


밀린다(Milinda) 왕과 나가세나(Nagasena) 승려와의 대화를 통해 실체를 설명한다. 즉 형상(육체), 감각, 지각, 의지, 의식 등 이 다섯 가지의 유동적 다발이 실체이다.


"불안은 우리 내면에서 생겨나는 것이지 외부 세계가 주입하는 것이 아니다."(83p)


"우리는 불안과 고통의 진실과 예측 불가능성을 탐구하되 애써 밀어내지 않는다."(85p)- 페마 초드론 -




[불안할 자유]


"두려움을 알면서도 두려움을 물리치는 자,
심연을 보지만 긍지를 갖고 보는 자가 담대하다.
심연을 보되 독수리의 눈으로 보는 자,
독수리의 발톱으로 심연을 움켜쥐는 자,
이런 자가 용감한 자다."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실존주의는 불교철학이 우리는 자신의 참된 본성을 깨달아 비로소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과 달리 우리의 참된 본성을 깨닫고자 불안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라 한 것을 기억하자.

"실존주의 철학은 미리 결정되거나 확립된 그 어떤 본질도 없는 자유로운 존재인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데 '불안'을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선언하고 우리에게 자기 창조의 책임을 부여한다."(96p)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말은 실존주의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익숙한 유명한 문장이다. 이 글은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의 핵심 문장이다. 인간은 처음부터 어떤 본질이나 목적이 정해져 있지 않고, 스스로의 선택과 행위를 통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만들어 간다는 뜻이다.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는 읽었는데, "지옥은 바로 타인이다."로 유명하다는 희곡 <닫힌 방>도 읽어봐야겠다.

아마도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이것을 내가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볼까?" 하며 망설이는 경우가 있다. 바로 이렇게 타인의 시선 속에서 대상화되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쇠렌 키르케고르, 폴 틸리히 같은 기독교 기반의 '유신론적' 실존주의자들은 실존적 불안에 대한 대응으로 '신앙'을 선택했다.(101p)


니체 철학의 핵심은 '힘에의 의지(힘을 향한 의지)'이다. 이는 자신에게 집중하고 자신의 가치를 높여 그 높아진 가치로 자신의 삶을 열어가려는 의지이다.

니체에게 있어 '신의 죽음'은 악센트가 '신'이 아니고 그 죽음으로 인하여 운명 앞에 선 우리 '인간'에게 부여된 것이다. 실존적 위기를 극복하는 '위버멘쉬'가 등장하는 순간이다.

나는 니체를 지난 10년여 전에 경복궁역 근처의 '철학아카데미'에서 만났다. 이동용 선생님의 <니체와 함께 춤을>이란 니체 철학 해석 강의에서였다.(아마 이 책은 니체의 <비극의 탄생> 해설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만일 내가 한국에서 계속 근무했었다면 그 선생님을 통해 '차라투스트라'도 만나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사람도 만났을 것이다. 이렇게 타자에게 핑계를 던지고 나는 약간의 위로를 받는다.

쇠렌 키르케고르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축복인 의지와 선택의 자유가 무거운 부담, 즉 '불안'을 동반한다고 주장한다.
<불안의 개념>


우리가 벼랑 끝에 서있을 때 떨어질 위험 때문이 아니라 떨어지는 행동을 하면(그런 자유가 주어졌기에) 죽는다는 것을 알기에 (그래서 현기증을 느끼면서) 불안하다. 바로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인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누적된 불안은 절망이 되고 결국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된다. 그러므로 불안을 유발한 우리의 선택, 결정, 행동 이면에 숨겨진 감정을 찾아내 서서히 해결해 나가는 훈습 과정이 필요한 이유이고, 그래서 정신분석학적 주장과 조화를 이룬다.


"불안은 기존 양식을 파괴하라고 요구하는 가슴 아프고 무섭기도 한 가능성이다"(128p)
- Rollo May, <The Meaning of Anxiety> -


"불안은 어떤 외부 존재가 내부로 침투한 게 아니라, 철저히 우리 내부에서 발생해 외부로까지 영향을 미친다."(133p)
- Rollo May, <The Meaning of Anxiety> -


"유한한 존재로서 비존재(죽음)를 떠올리며 자신의 유한성을 인식할 때 우리는 불안하다.(139p)
- 폴 틸리히, <존재할 용기> -


틸리히는 비존재가 존재를 위협하는 방향에 따라, '운명과 죽음'에 대한 불안, '공허함과 의미의 상실(무의미)'에 대한 불안, '죄책감과 정죄'에 대한 불안 등 3가지 유형으로 정리한다.(143p)

틸리히 방식으로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은 비존재(죽음)를 온전히 인식하고 수용해서 존재할 용기를 확보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또 다른 읽기 어려운 책 <존재와 시간>의 저자 하이데거가 나타난다. 하이데거에게 현존재(Dasein)는 '실존하도록', '던져진', '불안한' 개별적 존재자다.(154p)

현존재가 일상인으로 전락해 살다가 불안에 힘입어 본래적 존재방식으로 '기투(projection)'하는 것이 실존이다.(156p)

하이데거에게는 (...) 진정으로 '나 자신'이라 부를 만한 실존적 존재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165p)


이 부분은 향후 재독하여 추가 정리가 더 필요함을 느끼면서 '실존주의' 철학을 좀 더 체계적으로 고민해 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2년 정도만 집중 투자해 볼까?




[트라우마와 불안]


"치료의 궁극적 임무는 환자가 바꿀 수 없는 것을 재확인하도록 돕는 데 있다.(171p)
- 어빈 얄롬(Irvin David Yalom) -


어빈 얄롬은 실존주의적 접근의 입장을 보여주는 미국의 가장 저명한 정신과 의사 및 심리상담사로 스탠퍼드 대학의 명예 교수이다. 일전에 읽었던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의 저자를 다시 만나 반갑다. 그의 <실존주의 심리치료, Existential Psychotherapy>는 전 세계 심리치료사들의 필독서라 한다.

실존주의 철학자에게 해결되지 못한 불안이 참된 존재가 되지 못한 자아를 남긴다면, 정신분석학자들에게 해결되지 못한 불안은 과거에 사로잡힌 갈등과 상처 투성이의 자아, 즉 신경증적 자아를 남긴다.(175p)

정신분석 치료로 불안을 해결하려면 우선 심리상태를 '어른'으로 만들어야 한다.(175p)

프로이트에 의한 불안은 수차례 이론화가 되어 이드(id, 원초아)와 (도덕적) 초자아(superego) 사이에는 흔들리지 않으려는 자아의 몸부림이 남긴 자리이다.(177p)


도덕적인 초자아가 자아를 공격하거나
현실적인 자아가 충동적인 이드의 욕망에 저항할 때 방어 기제가 발동하고
그것이 우울증과 공포증 같은 정신적 기능 장애를 낳는다.(180p)
- 프로이트 -


저자는 성과 관련하여, 현대에 더욱 다양하고 많은 성적 자극에 노출되어 있고 현대인은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어서 성적 열패감이 심한 불안으로 온다고 설명한다.

출생의 트라우마는 이후의 상실과 더불어 늘 정신에서 예견되기에 우리는 늘 불안할 운명에 처해 있다.(189p)



[불안 사회]


"우리의 필요와 욕망은 광고와 언론이 만든 것이다."(195p)
-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


마르쿠제에 의하면, 인간 자유의 영역과 내용, 그리고 그 선택의 범위는 특정 사회적 역사적 상황으로 결정된다.(211p)



[불안과 더불어 산다는 것]


“Hope cannot exist without fear, nor fear without hope.”
(두려움은 희망 없이 있을 수 없고
희망은 두려움 없이 있을 수 없다)(221p)
- 바뤼흐 스피노자 -


스피노자 <에티카> 3부 ‘정서에 관하여(De Affectibus)’를 보자.

“두려움(Timor)은 일어날 것인가 두려워하는 나쁜 것에 대한 불확신을 수반하는 슬픔이다.”

“희망(Spes)은 일어날 것인가 기대하는 좋은 것에 대한 불확신을 수반하는 기쁨이다.”

결국 두려움이나 희망이란 정서는 ‘불확실성’(결과가 확정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한다는 통찰로 보인다. 결국 두려움과 희망은 동전의 양면과 같기에 희망을 갖고 싶으면서 두려움은 갖고 싶지 않다는 말은 스피노자에게는 성립되지 않는다. 스피노자는 두려움과 희망에 의존하지 않으려면, ‘이성에 의해 움직이는 상태’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 두려움과 희망의 공존 자체가 ‘불안’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책 중 [항상 불안한 존재] 부분에서 언급했지만 불안의 원인으로 스파노자는 ‘불확실성’을, 저자는 ‘목적 자체가 없다’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스피노자의 진단이 맞다고 느껴지면서도 해결방법으로는 쉽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불안 자체가 명료화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서 오는 것인데 이를 명료화하라는 주장은 일종의 동어 반복 오류(begging the question)가 아닌가?


(니체에 의하면) 스스로 너무 까탈스럽게 도덕적 자기 성찰을 요구하면 오히려 불안감에 시달리는 ‘죄의식’이 유발된다(228p)


죽을 때까지 당황하고 두려워하는 ‘뷔리당의 당나귀(Buridan's ass)’처럼 우리는 결정되지 않은 두려움 속에 선택의 양극 사이를 불안하게 서성인다.(230p)

위키백과에 의하면, “뷔리당의 당나귀는 자유 의지의 입장에서 철학에서의 역설을 묘사한 것이다. 배가 고프면서 동시에 목이 마른 당나귀가 건초 한 더미와 물 한 동이 사이에 놓여 있는 가설적인 상황을 상정한다. 이 역설은 당나귀는 언제나 어떤 곳이든 가까이 갈 것임을 가정하므로, 당나귀는 건초와 물 사이에서 어떠한 합리적인 결정도 할 수 없어 배고픔과 갈증으로 죽게 된다. 이 역설은 14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장 뷔리당을 이름을 딴 것으로, 이것은 뷔리당의 윤리적 결정론을 풍자한다. 비록 이 역설이 뷔리당의 이름을 따긴 했으나 철학자들은 이 개념을 뷔리당 이전부터 논의하였으며,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배고프면서 목마른 남자의 예를 사용하였고, 가잘리는 좋은 날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남자의 예를 들었다.”

즉, 자유의지 없이 계산하는 이성적 판단만 작용할 때 어떤 선택도 내릴 수 없다는 상황으로 인간의 선택이 항상 이성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Brunch의 이 글도 참고할 만하다.( 뷔르당의 당나귀 역설)

때로는 이 말이 의사결정장애 등 우유부단함을 비유하는 표현으로도 사용된다고 한다.

사실은 장 뷔리당이 했다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고, 아리스토텔레스가 했던 말이 와전 되어서 생겨난 말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배고픈 정도와 목마른 정도가 정확히 같은 상황에서 음식과 마실 것이 바로 앞에 있다면 그는 분명 둘 모두를 내버려 두고 굶어 죽을 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천체론(On the Heavens) -


초프라도 언급했지만 아르헨티나 대표 작가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소설집 『픽션들』(민음사, 송병선 역)에는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이란 소설을 담고 있는데,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두 갈래 길이 계속 나오는 삶에서 지도 없이는, 누구 이끌어주지 않고는 못 가겠다고 느낄 때 우리는 자유의 마비를 경험한다.(230p)


그렇다. 신은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었지만 그 선택은 결국 우리를 괴롭히고 불안으로 이끌기도 하니…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불교 철학( 인간 자의식 이해로), 실존주의 철학 및 실존주의 신학(참된 자유와 존재의 특징으로), 정신분석학(정신의 외적·내적 억압과 갈등의 결과로), 유물론적 비판 철학(사회의 비인간화와 '소외'화에 저항하는 인간 반응으로) 중 나는 먼저 실존주의 철학으로 더 들어가 보기로 했다.



[더 읽을 도서]


* 개인적으로 가급적 순서대로 읽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 실존주의 철학 -

0.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1. 쇠렌 키르케고르, <불안의 개념> <죽음에 이르는 병>, <공포와 전율>

2.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선악의 저편>

3.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4. 야스퍼스, <철학 입문> <이성과 실존>

5. 사르트르, <존재와 무> <구토> <닫힌 방>

6. 시몬 드 보부아르, <제2의 성> <윤리적 모호성>

7. 카뮈, <이방인> <시지프 신화> <반항하는 인간>

8. 메를로 퐁티, <지각의 현상학>

9. 가브리엘 마르셀, <존재의 신비>

10.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11.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 기타 참고 도서 -

1. 폴 틸리히, <문화의 신학> <존재의 용기>

2. 조앤 디디온, <상실>

3. 스피노자, <에티카>

4. 알프레드 아들러, 정명진 역 <사회적 관심>

5. 미겔 데 우나무노, <안개>

6. 틱낫한, <틱낫한 불교, The Heart of the Buddha’s Teaching>

7. 페마 초드론, <죽음은 내 인생 최고의 작품> <모든 것이 산산이 무너질 때>

8. 어빈 얄롬, <<실존주의 심리치료> <니체가 눈물 흘릴 때>

9. 마르쿠제, <일차원적 인간>


2025. 11. 8 ~ 11. 20 上海에서 읽기 시작하여 한국 동탄에서 정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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