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업(Backup)이 주는 여유로움
도자기와 유리를 좋아하는 안과의사 친구가 어느날 킨츠키를 배우기 시작했다. 세월의 흔적으로 또는 실수로 떨어뜨려 생긴 깨진 도자기나 유리의 틈새를 송진이나 옻으로 채우고 그 위에 금분이나 은분을 입혀 장식하는 일본의 도자 공예 기법이 '킨츠키'라는 것을 친구를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킨츠키에 빠져 지내던 친구가 좋은 인연을 통해 얼마전 한남동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고, 그곳을 다녀왔다. 킨츠키를 통해 생명을 되찾거나 새로운 목적을 갖게 된 도자기와 유리 작품들은 내 눈에는 (내가 상상한) 깨지기 전의 모습보다 더 아름다워보워 보이기조차 했다. 갈라진 틈새는 상처가 아닌, 고유의 매력를 찾아주는 통로가 되었다.
전시장에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녀가 말한 킨츠키가 선사한 여유로움에 대한 설명이 인상 깊었다. 그녀가 말하기를, 킨츠키를 배우고 가장 좋은 건 도자기나 유리를 사용할 때 실수로 깨뜨려도 백업(backup)이 있다는 든든한 여유로움이 생겼다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실수 한 번 하면,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가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두려워했다. 이런저런 경험을 하며 세월을 살아온 지금, 상처가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을 깨닫는다. 내공이 생기면 과거의 상처를 새로운 관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백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스마트시티도 킨츠키과 유사하다. 기존의 도시 인프라는 무거워(heavy) 한번 설치하면 수정이 어려웠다. 이러한 특성은 자원을 계속해서 과잉 소비하게 하여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반면 스마트시티는 보다 가벼운 인프라를 조성하고 수정도 가능하다. 애초 스마트시티의 탄생 배경이 도시 자원의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유연하면서(flexible) 비용효율적이며(cost effective) 고성능(high performance)인 인프라를 만들려는 데 있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산재되어 거주하는 지역에 신속한 물류를 위해 도로를 설치한다면, 그것은 무거운 인프라를 선택하는 것이다. 스마트시티는 같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드론, AI, 데이터 등을 선택한다. 도시의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에 ICT를 접목하면, 도시의 인프라가 유연하고 비용효율적이고 고성능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유연함은 수정이 가능하다는 의미이고, 비용효율적이며 고성능이라는 의미는 기존 인프라 대비 저비용이 투입되면서 더 나은 성능을 구현한다는 의미이다.
스마트시티는 첨단기술로 뒤덮힌 도시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무거운 인프라 건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시대를 거치며 도시의 여러 자원이 부족해지고 ('한 세대'와 같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도시의 지속가능성이 점차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타개할 솔루션을 찾아가는 '과정으로서의 도시'가 스마트도시다. 간디는 이런 말을 했다. "지구는 모든 사람의 필요를 충족할 만큼 충분히 주지만, 모든 사람의 탐욕을 충족할 만큼 추분히 주진 않는다." 나는 스마트시티가 제1차 산업혁명 이후 인간이 단기적인 관점에서 부린 탐욕의 쓰디쓴 결과물들을 이제와서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치유해나가겠다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깨진 도자기나 유리도 수정이 가능하다. 삶의 내공이 생기면 인생의 상처도 수정이 가능하다. 스마트시티도 수정이 가능하다. 그리고 유연함은 여유로움을 선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