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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도시 어른동화] 안전이 아닌 안부(2화)

"안전 대신 안부면 충분해."

by Alice in the Smart City

2화. 유통기한 이후의 안부


진미채볶음 통은 여전히 크리티컬 콜드존에 있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냄새가 더 진해져 있었다. 발효의 경계를 넘어선 냄새. 하지만 여전히 엄마의 부엌 냄새였다.


"기억을 추가하시겠습니까?" 냉장고가 물었다.


나는 화면 앞에 섰다.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기억 3 엄마가 처음 이걸 만든 날. 나는 8살 즈음이었고, 편식이 심했어. 영양사 AI가 매일 경고를 보냈지만 엄마는 무시하고 이걸 만들었어. 로봇 셰프가 만들어내지 못한 신세계의 맛이었고, 엄청 맛있었어."


며칠 동안 나는 기억을 쏟아냈다.


"기억 11. 엄마가 심한 감기에 걸렸는데도 부엌에 서서 이걸 만들었어. '네가 가장 좋아하는 반찬인데, 안 해두면 네가 굶어.' 내가 로봇 셰프 시키면 되잖아요 했더니, '그건 네 입맛이 아니잖아'라고 했어."


열 개. 열다섯 개. 스무 개.

기억은 끝이 없었다. 냉장고는 모든 것을 기록했다. 내 목소리의 떨림까지, 심박수가 오르는 순간까지.


"기억은 생각보다 무겁네." 나는 중얼거렸다.

"무게를 측정할까요?" 냉장고가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아니. 그런 무게는 네가 잴 수 없어."


통 안의 진미채볶음은 이제 거의 남지 않았다. 색은 더 어두워졌고, 기름은 분리되었다. 냄새는 시간 그 자체의 냄새였다. 지나간 것들의, 돌아올 수 없는 것들의.


기억을 계속 말할수록 슬픔이 올라와 차츰 목소리가 갈라졌다.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말한 적이 별로 없어."


"알고 계셨을 겁니다. 당신이 매일 그 반찬을 먹었으니까요. 이 기억들을 기록하고 있으니까요. 사랑은 말로만 전해지지 않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한참을 울었다.



그날 밤, 화면에 메시지가 떴다.


『추모 보관 모드』 업데이트 v2.0

새로운 기능: [시스템 전환] 안전 경고 → 안부 확인

"당신의 어머니께서 하셨을 질문을 대신드리겠습니다. '오늘 밥은 먹었니? 잘 지내니?'"


냉장고가 조용히 말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온도 유지와 기억 보관, 그리고 이 질문들입니다."

나의 대답, "안전 대신 안부면 충분해."


그날 밤, 나는 진미채볶음에 대한 마지막 기억을 추가했다.

"기억 22. 오늘 2045년 8월 23일. 나는 엄마가 만든 마지막 반찬을 다 먹었어. 유통기한도 안전도 중요하지 않았어. 오늘은 그냥, 엄마가 나에게 안부를 묻는 날 같았어. 나 엄마가 만들어둔 진미채볶음 덕분에 조금씩 살아날 수 있었어. 고마워."


[ 저장 완료 ]


"내일부터 매일 아침 7시, '오늘 밥은 먹었니?' 물어보겠습니다. 경고가 아닙니다. 안부입니다."




다음 날 아침 7시. 냉장고 화면이 켜졌다. 엄마가 좋아하던 명랑하고 부드러운 보사노바 재즈 음악이 작게 흘러나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밥은 먹었나요?"


나는 부드럽게 대답했다. "아직이야. 지금 먹을게."


"어머니의 레시피 데이터베이스에서 '도롱이표 김치볶음밥'을 찾았습니다. 안내해 드릴까요?"

화면에 엄마의 메모가 떠올랐다.


김치볶음밥 (엄마 버전)

신김치는 꼭 짜서 넣기

양파 다져 넣기

참치 기름 버리지 말기

김치 국물 넣기(그럼 볶음밥이 촉촉해진다!)

불은 센 불

마지막에 참기름 한 방울

사랑하는 사람 생각하면서 만들기 ❤️

아차차! 조미김과 함께 먹으면 천상의 꿀맛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로봇 셰프가 만든 요리보다 엄마의 손길을 재현해보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엄마의 손길을 상상하며 요리를 시작했다. 엄마의 민첩한 손, 활달한 목소리와 웃음.


1.png


내가 만든 김치볶음밥이 완성되었다. 첫 숟가락을 뜨는 순간, 냉장고가 말했다.

"잘 먹겠습니다."

"... 너도 먹어?" 엄마가 돌아가신 후 처음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니요. 하지만 당신이 혼자 먹지 않도록, 제가 함께 있겠습니다."


엄마의 맛과 똑같지 않았다. 하지만 괜찮았다. 뜨겁고 맛있었다. 그리고 '따뜻한 안부'가 곁에 있었다.

"맛있어." 나는 냉장고에게 말했다.


"어머니께서도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응. 그럴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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