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리스 May 06. 2023

'폼 미쳤다'의 미친 폼

fleeting notes

샌드박스 김성하 PD는 2020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밈(meme)을 가장 잘 다루는 영상 편집자로 알려져 있었다. 구독자 300명이었던 <디스커버리 채널 코리아>를 맡아 6개월만에 90만명 규모로 키웠다. 특별히 새로운 영상을 추가한 것도 아니다. 2006년부터 2011년 방영된 TV쇼 ‘인간과 자연의 대결(Man vs. Wild)’ 영상을 10분 남짓 쪼개어 재편집한 게 사실상 전부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닳고 닳은 해외 고전에 열광했다. 그가 선보인 트렌디한 밈에 격렬히 감응한 것이다.


절대 이분을 화나게 하면 안 돼!


당시 그와의 인터뷰에서 알게 된 점은 밈에도 '생로병사'가 있다는 것이었다. 밈의 역설은 대중의 코드를 건드려야 생존이 성립하지만, 정작 대중화 되면 모래성처럼 사라지고 만다는 데에 있다. 밈은 본질적으로 '우리만 알고 낄낄대는' 소수자성을 띤다.


김성하 PD의 설명이다. “CF에 나오는 순간 '밈은 끝났다'고들 해요. 일종의 수명판독기랄까요. 흔하면 재미가 없거든요. 보세요, 지난해 그렇게 인기를 끌던 곽철용이나 '4달러' 김두한도 너무 자주 나오다 보니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죠?”



그런 면에서 요즘 유튜브 세계 어딜 가나 제목이든 댓글이든 지뢰처럼 깔려 있는 "폼 미쳤다"라는 밈은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모양이나 기량을 뜻하는 '폼(form)'과 '미쳤다'를 조합한 이 표현은, 2~3년 전쯤 국내 축구씬에서 나온 것이다. 리버풀 FC의 전설적인 감독 빌 샹클리의 명언 "폼은 일시적이나 클래스는 영원하다."의 오마주다. 누군가를 칭찬할 때도, 비꼬는 상황에도 잘 어울린다.


주조법은 간단하다. 영상 속 인물 뒤에 '폼 미쳤다'만 붙이면 된다. 다만 이제는 한 번 정도 꼬아 주는 것이 '국룰'이다. 예컨대 현재진행형으로 epl 새 역사를 쓰고 있는 엘링 홀란드 하이라이트 영상에 그와 닮은 여성 개그우먼을 소환하는 것이다. '엄지윤 폼 미쳤다 ㄷㄷ..' 물론 아래처럼 심화형도 존재한다.


레시피가 간단하다는 점이 '폼 미쳤다'의 장수 비결일 것이다. 타인을 웃기는데 뚜렷한 소질이 없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흉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간결함 덕에 이제 이 밈은 유튜브 세계에서 남녀노소 누구나 쓰는 대통합의 언가 됐다. CF, 예능 자막에도 빈번히 출몰한다. 밈의 역설을 극복해낸 것일까. '폼 미쳤다'의 미친 폼이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updated : 2023-05-06


관련문서(브런치 링크)

- 제텔카스텐 인덱스

- 사회문화 인덱스

매거진의 이전글 "젊은 작곡가가 바흐를 공부하는 것과 비슷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