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공간지훈(GGJH)>이라는 이름을 아는가? 만약 알고 있다면, 당신은 높은 확률로 커피, 혹은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사람일 것이다.
최근 커피씬과 디자인씬에서드러나는 디자인 스튜디오 <공간지훈>의 존재감은 돌덩이처럼 묵직하다. 연희동 <프로토콜>, 서촌 <궤도>, 서초동 <브루잉이펙트>, 수유 <티틸>, 여의도 <TFT> 등 <공간지훈>의 세계관은 서울 전역에 거미줄처럼 뻗어 있다. 양과 질에 있어 그(혹은 그들)의 포트폴리오는 언뜻 이기적으로까지 느껴질 정도다.
카페 <COMPILE>은 <공간지훈>이 얼마 전 새롭게 선보인 공간으로, 오로지 이 이유만으로 커피 업계 눈길을 모으고 있다. 말하자면 새로 출시된 디자이너 명품백처럼외면이 쉽지 않은 흥미를 끌고 있는 것이다.
COMPILE
카페로 들어서면 <공간지훈> 특유의 감각이 옆구리로 훅 들어온다. 스테인리스와 목재에 분명한 알리바이가 있는 냉온의 질감, 횡과 종으로직각조립된 테이블과 의자, 모종의 의도를 풍기는 듯한낮고어두운 조도.사실 이런 요소들은 <공간지훈> 포트폴리오 전반에 나타나는 공통점으로, 기획자의 시선이 현재 어디에 머물러 있으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귀띔해주는 중요한 단서다. 다만 여기에는 물리적인 불편함들이 필연적으로 수반되는데, 이것만 아니라면 장르를 막론하고 적용이 가능할 정도로 트렌디한 느낌을준다.
90년대 DOS(도스) 운영체제를 연상케 하는 메뉴판, 네모난 플로피 디스켓으로 만든 번호판은 아마 <COMPILE>이라는 카페이름에 연루되어 있을 것이다. compile은 '변환' 혹은 '전환'을 뜻하는 개발 용어다. 철지난 아날로그 시대 유물쯤 치부되는 DOS 스크린은,아이러니하게도 한때 디지털 시대로의 변환을 상징하는 시각 기호였다. 이 메뉴판에 담긴 의도는 아마 윗세대에겐 반가움을, 그런 기억을 공유하지 못하는 청년 세대에게는 이질감과 신선함을 우회적으로 제공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이는 언뜻 숱한 성공사례를 남긴 '레트로'의 성공 방정식을 고스란히 차용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과도기 혹은 변곡점에 서 있는 듯한 묘한 느낌이 기획자가 의도했던 바였을지도 모르겠다. 공업 지대로 밀려나 자취를 감춘 컨베이어 벨트를 공간 구획과 스펙터클의 장치로 재현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을 테다.
공간 구성과 디자인은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다만 브루잉 커피의 맛이 소소한 아쉬움을 남겼다. 포도와 베리, 웰치스, 버블껌 등의 노트로 점철된 가향 커피의 직선적인 맛은 뚜렷한 지향점을 드러낼 수는 있겠지만, 동시에 호불호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 혀를 찌르르하게 만들 정도의 드라이함 역시 다소 아쉽게 느껴지는 대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