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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 Jun 03. 2020

(5)기자는 취재원을 숨긴다

취재원 보호, 기자의 딜레마

기사의 종류는 몇가지나 될까요?


스트레이트, 르포타주, 인터뷰, 피쳐(스케치), 박스(해설), 내러티브, 탐사, 인터랙티브, 데이터, 통계, 방송, 라디오, 사진, 미담, 동정, 학술, 리뷰, 부고….


가짓수 많아 보여도  틀에선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듯 합니다. 뉴스의 출처가 분명한 기사, 그렇지 않은 기사. 칼럼이나 사설, 영화·소설 등에 대한 리뷰기사, 기자가 사건을 정리해주는 해설기사는 후자 쪽에 속합니다. 기사라곤 하나 애당초 뉴스의 전달보다 사안에 대한 통찰이나 관점 제시가 주된 목적이기에 아무래도 ‘기사적 허용’의 범위가 넓죠. 쉽게 말해 “내가 보기엔 이렇다”고 쓰는 기사입니다.


이런 일부 기사들을 제외하면 기사에는 꼭 ‘취재원(source)’이 나옵니다. 아니, 나와야 합니다. 기자가 ‘뇌피셜’로  것이 아니라면, 취재원이 없는 기사는 이론적으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도기사는 취재원을 원칙으로 익명이나 가명으로 표현해서는 안되며  일반적인 취재원을 빙자하여 보도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기자가 취재원의 비보도 요청에 동의한 경우 이를 보도해서는 안 된다.(신문윤리실천요강 제5조 ‘취재원의 명시와 보호’)


취재원은 대개 기사의 앞부분, 그러니까 리드 문장이나 그 바로 뒤 문장에 나옵니다. ‘0일 △△△에 따르면∼’ 혹은  ‘0일 △△△를 종합하면∼’이란 표현에서 ‘△△△’이 바로 그 기사의 취재원입니다. 여기서 취재원 꼭 사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취재원의 원은 인원 원(員)이 아닌 근원 원(源)자를 씁니다.


<동아일보> 2020년 6월3일자 1면(왼쪽)과 <조선일보> 2면 기사. 각각 추경호 미래통합당 의원, '1분기 중 예금취급기관 산업별 대출금' 통계를 취재원으로 밝히고 있다.


기자가 정부 기관이 생산한 보고서를 입수해 기사를 쓴다면 ‘0일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으로, 통화녹음을 입수해 기사를 쓴다면 ‘0일 OO일보가 입수한 통화녹음을 들어보면(따르면)~’으로 씁니다. 물론 앞선 회차에서 다뤘듯 다른 매체가 먼저 쓴 기사도 기사의 취재원이 될 수 있습니다. 굳이 이렇게 딱딱하게 쓰지 않고 ‘0일 취재팀과 만난 A씨는 ~라고 말했다.’‘A씨는 0일 ~라고 밝혔다.’처럼 자연스럽게 취재원을 밝히기도 합니다.


참사현장이나 집회·시위처럼 현장 상황 자체가 뉴스인 경우나 기자가 처음 문제를 인지해 마땅한 취재원을 찾을 수 없는 경우에는 기자가 보고들은 경험도 취재원이 될 수 있습니다. ‘기자가 실제로 확인해본 결과∼’처럼 직접적으로 쓰거나, ‘기자가 찾은 현장은 ~였다.’는 식으로 넌지시 알리는 것이죠.


<국민일보> 2020년 6월3일자 5면. 기자가 인터뷰하고 있는 사진 등을 통해 현장 취재 사실을 알리고 있다.


기자의 경험이 취재원인 기사에는 현장에 가 있는 기자 사진이나 현장에 간 사실을 입증할 만한 자료들이 함께 실리는 것이 보통입니다. “진짜 가서 본 것 맞느냐”는 독자들 의심을 씻기위해 객관적인 증거들을 미리 덧붙여 놓는 것이죠. 구체적으로 취재원을 적어놔도 이런저런 말이 나오는 마당에 사진 한 장 없이 ‘내가 가보니 이렇더라’  기자는 언론계에 그리 많지 않습니다.




기자들은 기사를 볼 때 일단 취재원부터 살핍니다. ‘그래서 어디 발(發)냐’는 것이죠. 동일한 내용의 기사도 취재원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사건 기사만 보더라도 가해자발, 피해자발, 변호사발, 경찰발, 검찰발, 법원발, 사정당국발, 국회발, 시민단체발, 인터넷커뮤니티발,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발 등 다양한 곳에서 기사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자들은 취재원을 통해 기사의 뉴스가치와 취재 수준을 가늠합니다. 인터넷커뮤니티발 기사와 검찰 고위관계자발 기사는 아무래도 신뢰도와 무게감이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겠죠?



<경향신문> 2020년 6월3일자 1면

 

간혹 ‘0일 업계에 따르면∼’‘0일 정치권에 따르면∼’‘0일 대학가에 따르면∼’‘0일 학계에 따르면∼’ 같이 취재원을 ‘퉁’치는 기사들도 있습니다. 타사 단독기사를 받아쓰거나, 기사가 다루는 사안이 정말로 업계에 많이 알려져서 취재원을 구체적으로 쓰기 겸연쩍을 때 이런 식으로 쓰곤 합니다.


이런 문장들은 가만 따져보면 기사에 없어도 하등 상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굳이 이런 현을 계적으로 기사에 욱여넣는 것은 기자들이 그만큼 형식과 전통에 단단히 묶여있기 때문입니다. ‘소설을 쓰는 게 아니라면 반드시 취재원이 나와야 한다’는 저널리즘 원칙이 일종의 강박처럼 작용하고 있는 것이죠.




취재원을 밝히는 일은 기자에게 딜레마입니다. 취재원을 소상히 밝힐수록 기사 전반의 신뢰성과 타사의 추종보도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그만큼 취재원이 노출될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취재원 보호는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경험상 그에 대한 기자들의 태도는 꽤 다양합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취재원을 보호하는 ‘참기자’들있는가 하면, 단독보도에 들떠서 주변 기자들에 미주알고주알 떠벌리고 다니는 기자도 있습니다. 취재원 보호라는 것이 전적으로 기자 개인의 의지와 신념, 태도에 달려있는 구조인 셈이죠.


반면, 신분이 노출된 제보자(취재원)가 받는 피해는 이루말하기 어렵습니다. ‘배신자’라는 낙인과 조직내 따돌림은 기본이고, 심하게는 파면이나 해임 등 징계를 받기도 합니다. 이런 고통을 견디다 못해 제보자가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는 일마저 있었습니다. 보도가 가져다주는 공익이 아무리 크고, 중요하다 해도 보도로 인해 취재원의 삶이 망가져선 안 될 일이라고 믿는 기자들은 본인이 ‘앞장서서’ 취재원을 감추곤 합니다.


<한국경제> 2020년 4월24일자 34면

그래서 기사에는 늘 함정이 숨어있습니다. 이를테면 경찰한테 들은 얘기를 검찰발로 쓴다든가, 검찰로부터 들은 얘기를 경찰발로 쓴다든가 하는 식이죠. 경찰, 검찰, 국정원, 기무사,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 감사원 등을 ‘사정당국’으로 뭉개는 경우도 꽤나 흔합니다. 취재원 파악에 혼란을 주기위해 일부러 ‘법조계에 따르면∼’이라고 두루뭉술하게 쓰는 경우도 많습니다.


<세계일보> 2020년 4월25일자 2면(왼쪽), 5월5일자 8면 기사.

 

최근에는 ‘OO일보 취재를 종합하면∼’‘△△신문 취재결과∼’ 처럼 아예 취재원을 밝히지 않는 기사작법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듯 합니다. 이는 사실상 “너, 우리 매체가 얼마나 믿음직한지 알지? 그럼 믿어봐”란 뜻이나 다름없습니다. 물론 그만큼 ‘팩트’에 신이 있다는 이겠으나 기사만 놓고봐선 내용의 사실 여부를 가늠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말이 좋아 ‘취재원 보호’ 냉정하게 따져보면 독자를 속이는 행위나 다름없습니다. 그럼에도 기자들은 ‘어차피 팩트는 같다’거나 ‘취재원 보호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쯤 치부하곤 합니다. 기자가 아니라면 “역시 기레기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언론 보도로 인해 가정과 일상이 파괴되는 취재원들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이런 태도를 마냥 나쁘게만 볼 순 없다고 봅니다.(물론 바람직하단 얘기는 아닙니다)



이런 메카니즘을 잘 아는 취재원, 특히 사정당국 관계자나 정치인들은 먼저 익명 보도를 요구하거나 아예 “다 알려줄테니 다른 쪽 발로 써주시라”고 기자에게 부탁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어떤 기자들은 “출입처 기를 잡겠다”며 취재원을 일부러 특정하기도 합니다. 예상치 못한 보도, 언론계 은어로 ‘눈탱이를 맞는 곤란한 상황을 잇따라 연출함으로써 출입처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겠다는 심산인 것입니다. 대개 이런 경우엔 소스를 받 진짜 취재원은 다른 쪽에 있죠.



그래서 기자들의 머리는 늘 복잡합니다. 기사가 밝힌 취재원이 과연 진실인지, 아니라면 진짜는 누구인지, 그 목적은 무엇인지, 보도 내용 자체는 믿어도 되는지, 따라가야 할 기사인지 하나하나 따져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하게도 시사에 관심이 많은 정도의, 평범한 독자라면 이렇게까지 기사의 취재원에 대해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기사에 나오는 취재원이 어떤 목적을 위해 위장됐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만 알아두면 충분합니다.


*<기자가 기사를 읽는 법>은 뉴스를 자주 보는 대학생, 혹은 언론계에 막 발을 디딘 수습기자들이 기사를 좀더 풍부하게 읽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쓰는 글입니다. 솔직히 저도 잘 모릅니다. 그래도 일단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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