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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 Nov 29. 2021

(7)'전문가 멘트'의 메커니즘

머신이라 불리는 사람들

기사에서 이른바 '전문가'들은 이렇게 등장합니다.


...감염병 분야 국내 최고 권위자인 김OO A대 의대 교수는 "감염병이 더 확산하기 전에 정부가 고삐를 바짝 쥐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OO B소비자단체 대표는 "주말에도 거리가 썰렁한 것은 감염병에 대한 공포가 확산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OO 법무법인 C 변호사는 "이번 정부의 거리두기 강화는 위헌 소지가 있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기자가 공들여 쓰는, 일정 분량이 넘어가는 기사에는 꼭 대학교수, 시민단체 활동가, 변호사, 연구원, 조사원, 분석가, 평론가, 대표, 회장, 본부장, 실장, 자문위원, 전문위원, 수석위원 등 수많은 전문가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대체로 기사 끝자락에 '짠'하고 나타나 사안을 꼬집고, 비판하고, 지적하고, 분석하고, 평가하고, 촉구하고, 환영하고, 강조하고, 관측하고, 예측하고, 기대하곤 합니다.


'권위 있는' 전문가의 발언이 적재적소 들어가면 기사 퀄리티가 전반적으로 높 느낌을 줍니다. 전문가들은 기사의 '야마(4화 참고)'를 보다 선명하게 만들고, 기자가 내놓은 주장에 설득력을 더해줍니다. 그래서 기자들에게 전문가 존재는 반드시 넣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빠지면 섭섭 감초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 '전문가 멘트'가 기사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은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것과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과의 통화는 조금 과장하면 이런 식으로 이뤄집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바쁘실 텐데 죄송합니다. 저는 OO신문사 김OO 기자라고 하는데요, 제가 지금 이런 걸 취재하고 있거든요? 교수님 생각이 어떠신지 한번 들어보려 연락드렸습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기자님. 제가 듣기로 그 사안은 이렇게 저렇게 문제인 것 같네요."


"아 넵, 말씀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뚝."



통화는 짧으면 5분 이내, 아무리 길어도 20분을 넘기지 않습니다.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 중고거래하듯 서로 할 말만 딱 하고 돌아서는 느낌이랄까요. 마감이란 사냥개에 쫓기는 기자들은 전문가 멘트를 받는 일에 큰 공을 들이지 않습니다. 취재원과 기자가 서로 아는 사이라서가 아닙니다. 초면인 상대방에게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 멘트를 받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기자가 되고 난 뒤 전문가들에게 연락을 쭉 돌려보면 통화가 너무 쉽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론 허무함을 느낍니다. 크로마키 앞에서 허우적 대는 액션 배우의 실제 모습을 본 기분이랄까요. 물론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전문가 멘트의 공정 과정은 그렇게 대단하지도, 그렇게 권위적이지도, 그렇게 전문적이지도 않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물론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단 전문가 취재는 '가성비'가 대단히 높습니다. 어떤 사건이 갑자기 벌어졌을 때, 기자들은 그 분야 전문가부터 찾습니다. 전체적인 취재 가닥을 잡는 데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광활한 지면을 채우는데 전문가 멘트만큼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죠. 잘 훈련기자들에겐 정해진 분량에 맞도록 멘트를 늘리는 것, 줄이는 것 모두 식은 죽 먹기입니다. 전문가 한 명 당 원고지 1~3매 정도 채울 수 있다고 쳤을 때, 2~3명만 통화가 되면 '왠지 그럴듯해 보이는' 기사 하나가 뚝딱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당일 지시가 떨어 취재에 곧잘 소환됩니다. 한정된 시간 내에 사건에 관련한 팩트는 들인 노력에 비해 성과가 불투명한 반면, 전문가 멘트는 분량을 실히 담보합니다.


물론  그런 것은 아니지만, 취재 실무에서 전문가 멘트는 이미 정해져 있는 기사의 '야마'를 보완하는 정도로 쓰이곤 합니다. 만약 수화기 너머 전문가가 위에서 내려온 야마와 정반대의 말만 주구장창 늘어놓는다면, 기자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야마를 틀기보단 야마를 뒷받침해줄 다른 전문가를 찾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언론에 경제정책 전문가로 종종 소개되는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기사 속 전문가 멘트의 비밀> 칼럼에서 기자들의 이 같은 취재를 '답정너'라고 비판했습니다.


"내가 끝까지 내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 둘 중의 하나다. 잘리든지 아니면 기계적 균형을 위한 반대 측 전문가 코멘트로 실리게 된다. 그런데 기자들의 묘한 능력은 기계적 균형을 위해 반대 측 주장을 싣더라도 야마가 희석되는 일은 없다. 마치 달콤한 과일 주스에 약간의 소금을 뿌리면 짠맛이 나기보다는 더 달게 느껴지는 마법을 구사한다...(중략)... 기자들이 전문가에게 전화하는 목적의 대부분은 자신이 설정한 야마에 부합하는 멘트를 따기 위함이다. 전문 식견을 배우고자 연락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소수다.


물론 그런 것은 아니지만, 기사에 등장하는 전문가들은 통상 자기 전문 분야 못지 않게 '멘트'에도 일가견이 있습니다. 좋게 말하면 '선수'이고 나쁘게 말하면 '멘트머신'인 그들은 수화기 너머 기자들에게 지면에 딱 떨어지는, 야마에 부합하는 멘트를 잘 정돈해 건넵니다. 기자들이 '애용'하는 어떤 전문가는 하루에도 4~5번씩 회사와 기사를 돌아가며 등장하기도 합니다.


 실은 전문가들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이를 거부하거나, 지적하지 않을까요? 마도 10분 남짓 통화로 유력 언론에 '전문가'로 등장하는 일이 그들에게 딱히 손해 볼 것 없는, 가성비 높은 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전문가들 중 일부는 언론 인터뷰를 업계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수단 정도로 여곤 합니다. 취재를 하다 보면 "언론엔 A가 많이 나오지만 진짜 전문가는 B다"란 말을 종종 듣습니다. 어떤 대학에서는 멘트가 실린 교수 덕분에 자기네 대학 이름이 언론에 노출됐다며 연말 고과에 반영한다고 합니다. 경쟁이 치열한 변호사 업계에선 기사에 한 번이라도 더 노출되려 안간힘을 씁니다.


꼭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견해와 관점, 주장을 세상에 알리 일은 누구에게나 매력적인 일니다.



즉, 지금의 전문가 멘트 생산 구조는 기자와 전문가 양쪽 모두의 이해가 딱 맞아떨어져 있는 셈입니다. 어떤 기자들에게 전문가는 기사조립용 부품, 혹은 윤기를 더하는 바니시일 뿐입니다. 기자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에서 전문가들의 연락처는 재화처럼 교환됩니다. "경제 분야 멘트머신 구합니다~" "정치 쪽 말 잘해주는 교수 아시는 분?" 품앗이하듯 손에서 손으로 건네 지곤 하죠.




모든 전문가들이, 모든 기자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분야 전문가가 아니고선 도저히 알 수 없는 인사이트 넘치는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자신은 이쪽 전문가가 아니"라며 다른 전문가를 소개해주는, 훌륭한 전문가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세상에 올바른 지식을 전달해야겠다'는 의지가 수화기 너머로 활활 느껴집니다. 기자들 중에도 관련 논문과 선행 기사들을 샅샅이 훑어 진흙 속 진주 같은 '진짜 전문가'를 찾으려는 기자가 적지 않죠.


문제는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기자들은 전문가 멘트로 도배된 기사를, 속 빈 강정처럼 있으나마나 한 말만 늘어놓는 전문가들을 높이 평가하지 않습니다. "기사 대충 썼다"고, "멘트머신"이라고 비아냥댑니다. 그러다가도 자기 발등에 불 떨어지면 태도가 금방 돌변합니다. 허둥지둥 '멘트머신'부터 찾고 보죠.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요.


*<기자가 기사를 읽는 법>은 뉴스를 자주 보는 대학생, 혹은 언론계에 막 발을 디딘 수습기자들이 기사를 좀 더 풍부하게 읽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쓰는 글입니다. 솔직히 저도 잘 모릅니다. 그래도 일단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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