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리스 Jul 23. 2023

(8)바이라인 앞, 지역명의 비밀

지역명에 나타나는 언론사의 '클라스'

2020년에 브런치에 연재했던 <기자가 기사를 읽는 법>을 다시 이어서 연재합니다. 20회를 목표로 세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얼마 전 갑작스러운 폭우로 큰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이런 대형참사, 대형사건이 발생하는, 언론계 은어로 "장場이 섰을 때" 언론사 수뇌부는 몹시 분주해집니다. 현장에 내려보낼 기자들을 서둘러 뽑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 결론이 내려져 있긴 합니다. 현장 취재는 언제나 '사쓰' 혹은 '사쓰마리'라고 불리는 저연차 경찰기자들 몫이니 말입니다.


드라마 속 경찰기자들. 실제로도 이런 모습이다.


여기서 질문 하나. 왜 기자들을 '내려보내는' 것일까요? 정답은 언론의 인력 구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름을 알만한 유력 신문사들은 스스로를 '전국종합일간지'라고 부르지만 실상 이들의 모든 관심은 서울에 집중돼 있습니다. 아무리 큰 매체라도 지역 주재는 1명, 많아야 2명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지역에서는 (지역지가 아니라면) 1명의 기자가 시청 기자실로 출근하며 필요에 따라 지방경찰청이나 지방검찰청, 법원 등을 취재하곤 합니다. 말하자면 소수의 지역 주재 기자들을 돕기 위해 서울의 젊은 기자들이 파견을 가는 구조인 것이죠.


'오송=OOO 기자 abc@dandoc.kr'


혹시 여러분은 이런 바이라인들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일반적으로 지역명은 해당 지역의 주재 기자 이름 앞에 붙습니다. 여기에는 '지역 돌아가는 소식에 빠삭한 지역 주재 기자가 쓴'이라는 늬앙스가 살짝 담겨 있죠. 물론 지역 기자라 해도 때에 따라선 지역명이 붙을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대형사건이 발생했을 때 나오는 기사들에는 '반드시' 지역명이 따라붙게 마련입니다. 기자의 이름 앞에 붙는 지역명은 "우리 기자가 직접 현장에서 취재해 썼다"는, 일종의 표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이라인 앞에 붙는 지역명은 언론사의 실력을 보여주는 지표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현장으로 기자를 보내느냐 마느냐는 저널리즘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비용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파견은 곧 돈입니다. 지방만 해도 출장비가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이 들어가는데, 해외 출장이라도 가야한다면 경영진 입장에서는 달가울 리 없습니다.


다뉴브강 참사. 한국인 관광객 26명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2019년 5월, 헝가리 다뉴브강에서 발생한 유람선 참사 때 유력 언론사들은 거의 모두 기자들을 헝가리로 보냈습니다. 유럽 특파원이 있는 매체들이 발빠르게 부다페스트발 기사를 쏟아내자, 다른 매체들도 뒤따라 한국에서 기자들을 보냈던 것이죠. 여기에는 언론사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눈치싸움도, 사건 장기화를 염두에 둔 전략적 판단도 담겨있습니다.


반면 당시 주요 경제지들은 기자들을 파견하지 않고 외신을 받아썼습니다. 일간지들과 어깨를 겨누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건을 다루는 태도는 차이가 꽤 있었던 셈입니다. 기자를 보내지 않으면 기사의 취재원原이 다른 매체일 수밖에 없습니다. 관련 기사를 쓰는 기자 입장에선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끊임없이 '우라까이'(베껴쓰기)를 해야하는 구조인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일부에서는 "바이라인 앞에 지역명 붙일려고 돈 들여 기자들을 보내는 것"이라고 수군대기도 합니다. 즉, '부다페스트='는 단순 지역명 이상의, 언론사들의 체면과 위상이 모두 담겨있는 문구인 셈입니다.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는 사정이 좀 달랐습니다. 대형 방송사를 제외하고는 조중동과 한겨레경향, 한국일보 정도만 현지에 기자를 보냈습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기자의 안전 문제 등 리스크가 컸던 탓일 것입니다. 이를 감수하고 기자들을 보낸 매체와 그러지 못한 매체 사이에 선명한 '클라스 차이'가 있었음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어쩌면 이 미세한 차이 때문에 언론사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https://www.journalist.or.kr/news/article.html?no=53132


한편, 이렇게 기자가 현지에서 보낸 기사는 1면, 적어도 2면에는 배치되기 마련입니다. 어떨 때는 지역명이 붙은 한 기자의 바이라인으로 한 면 전체가 도배될 때도 있습니다. 당연한 일 같기도 합니다. 출혈을 감수한 만큼 어떻게든 결과물을 뽑아내야 수지타산이 맞을 테니 말입니다.




특파원 제도 역시 언론사들의 지역관觀을 엿볼 수 있는 지점입니다. 특파원들의 파견지는 대중(언론)의 관심도와 대체로 일치합니다. 워싱턴과 도쿄, 베이징 등 소위 '3대 파견지'를 비롯해 일부 매체에서는 뉴욕, 런던, 멕시코, 베를린, 파리, 카이로, 테헤란, 모스크바 등에도 기자를 보냅니다.


하지만 최근 매체를 막론하고 특파원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특파원을 유지하더라도 체류 비용을 대폭 삭감했다는 소식도 종종 들려옵니다. 온라인의 발전으로 꼭 현장에 있지 않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현지 기사나 뉴스를 찾아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자들 시선도 달라졌습니다. 중국 베이징 특파원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어느 매체든 지원자가 크게 줄어 후임자 선정에 곤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베이징=OOO 기자', '파리=OOO 기자' 같이 지역명이 기자의 이름 앞에 붙어있거나 'OOO 워싱턴특파원', 'OOO 카이로특파원' 같은 바이라인의 기사들은 보다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만큼 회사가 근본이 있다는, 비용 문제에서 꽤 자유롭다는 의미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하게도 기사의 질적인 부분 역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뉴욕타임스 한국지사


혹시 세계 최고 언론사로 꼽히는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의 아시아 지국이 어디에 있는지 아시나요? 바로 서울입니다. 이 두 매체는 몇 년 전 서울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이들이 도쿄나 베이징이 아닌 서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연찮게 기회가 생겨 뉴욕타임스 기자분께 여쭤보니 "코로나19 국면에서 한국 정부의 방역 대처가 큰 점수를 얻었기 때문"이라는 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꼭 그것만 이유는 아닐 것입니다. 언론사는 결코 아무 곳에나 자기 기자들을 보내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는 대목 같기도 합니다.



이전 연재글 보기

(1)'확인됐다'에는 기자의 자존심이 묻어있다

(2)..라고 jtbc가 보도했다고?

(3)“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4)“그래서 야마가 뭔데?”

(5)기자는 취재원을 숨긴다

(6)바이라인, 기사의 총책임자

(7)'전문가 멘트'의 메커니즘

매거진의 이전글 (7)'전문가 멘트'의 메커니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