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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 Jan 06. 2022

경영학은 위기다

가만 보면 경영학과에 오는 부류는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회계사를 준비하는 친구들이다. 요즘 들어 부쩍 두드러졌다. 수리에 능하고 계산기를 곧잘 두드리는 부류다. 두 번째는 소수이기는 하지만 자기 사업, 즉 창업을 꿈꾸는 이들이다. 손에 꼽을 정도로 적지만 경영학과의 본래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도전적인 부류다. 마지막은 내가 속해 있는 부류로 대개 ‘그냥’ 왔다. 말 그대로 그냥 온 경우다. 신입생 오티를 여러 번 참석해 본 결과, 나는 경영학과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제대로 알고 오는 신입생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업에 관련된 것을 배우지 않을까 하는 막연함만 있을 뿐이다. 경영학이 소위 ‘취업 잘 되는’ 학문으로 평가받는 것과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할 따름이다.


하나의 학문에 대해 그 깊이와 의미를 논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일일 테다. 물론 나는 그럴 능력도 없거니와 배움의 폭도 좁다. 그러나 아무리 경영대에 그냥 왔던 학생이었더라도 마지막 학기를 다니며 슬슬 학교와의 이별, 사회와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는 졸업 예정자라면 수년 동안 공부했던 전공에 대해 한마디쯤 할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좋든 싫든 오랫동안 지지고 볶았던 연인을 떠나보내기 전 심정이랄까.


나에게 '경영학'의 이미지는 맷돌이다.

경영학은 맷돌 같다. 뭐든지 갈아 버린다. 한 세기 전 누군가의 비유처럼, 쓸모가 있다 싶으면 어떤 학문이든지 닥치는 대로 갈아서 자기 것으로 만든다. 과거엔 사회학이나 심리학 계열을 대상으로 그랬다면, 현재는 기계공학, 산업공학 등 공학계열이 강세다. 얼핏 관련성이 없어 보여도 돈이 될 것 같으면 어느새 한 자리 차지하고 있다. 애플의 성공 이후 통찰력이 강조되던 시기에는 인문학 특강이 인문대가 아닌 경영대 주최로 종종 열리기도 했다. 나는 과거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인문학 위기론’이 그나마 잠잠해진 데에는 경영학의 공이 혁혁하다고 믿는다.


경영학의 극단적으로 실용적인 접근 방법은 순수학문이 아닌 실용학문이라는 태생 때문이다. 더욱이 경영학은 다른 ‘학문’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도그마를 가지고 있다. 이윤 추구에 대한 무한한 긍정, 그것이 바로 경영학의 본질이다. 사실 경영학과 내의 모든 과목들의 목표는 심플하다. 기업의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이윤추구의 방법에 대한 연구. 현대의 모든 계속 기업의 목표는 이윤추구다. 몇 년 사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있긴 하지만, 속사정을 잘 뜯어보면 국가 영역의 축소와 민간 영역으로의 중심이동의 부산물일 뿐이다. 연결고리가 명쾌하게 잘 보이지 않지만, 나는 그것이 기업의 이윤추구 활동의 또 다른 얼굴에 지나지 않다고 확신한다.


때로는 바이블을 가지고 있는 것이 편할 때가 있다. 복잡한 세상에 대해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직 신만이 이성을 독점했던 유럽의 중세를 철학의 암흑기라고 부르는 것은 절대적인 믿음이 만들어내는 편향성, 그리고 주체성의 상실에 있다. 경영학은 중세의 신학과 논리 구조가 똑 닮아 있다. ‘이윤추구’라는 절대명제에서 연역적으로, 또 합목적적으로 전개되는 논리들을 보면 그렇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 마주본 경영학이라는 학문은 몹시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얼마 전 발표된 공인회계사 합격자 명단에 학교 커뮤니티가 발칵 뒤집혔다. 곧잘 성적을 내던 회계사 순위였는데, 금년도 순위가 평년보다 몇 단계 내려갔기 때문이었다. 다른 전공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와 공부하지 않는 경영대생들을 꾸짖었다. 물론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경영대생의 장래나 취업 가능성 따위는 아니다. 회계사 순위가 곧 대학 간 서열의 가늠좌가 되어버렸기 때문이고, 법대가 사라지고 나서 경영대가 문과계열의 간판학과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부턴가 학생들은 경영대가 학교의 얼굴을 대표하고 있다고 믿는 듯싶다. 언제부터 경영대가 어깨에 무거운 짐을 이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시험에 탈락한 이들에 대한 위로와 격려는 없고 자조와 한탄이 가득한 모습을 보며 경영학이 내부적으로 지닌 편향적 성격이 외부적으로도 더욱 깊어질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장학금을 미끼로 경영학과 학생들에게 회계사가 될 것을 강요하고 있다. 어느 대학에서는 회계사 1차 시험 합격자 생을 대상으로 편입을 허용하는 전형을 만들어 ‘용병’ 논란이 있기도 했다. 이는 모두 그것이 대학 순위의 척도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신입생 때 경영대생은 어느 분야든 나갈 수 있다며 미래에 대한 희망과 낭만을 말하던 선배들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회계사 합격률을 강조하는 흐름은 학과 커리큘럼에도 역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업 활동을 지탱하는 근간은 회계학이나 재무학에만 방점이 찍혀 있지 않다. 경영학이라는 학문이 가진 본질적 한계에 더해, 학문 외적에서마저 단일한 선택지를 강요받고 있는 지금은 분명 경영학의 위기다.


고시라고 부르기에는 소위 ‘끗발’이 맞지 않지만, 회계사 자격증의 평균 획득 기간은 3.6년이다. 분명 회계사는 전문직이고 좋은 직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인생에 있어서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일뿐이다. 업무적으로도 적성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20대에 4년 가까운 세월을 쏟아 붓는 데에는 단지 경영학과에 다니기 때문이 아니라, 또 학교의 위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적성과 미래에 대한 가능성에 무게를 두어야한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공부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성찰은 찾아보기 힘들다. 처음 그들이 경영학과에 들어왔던 이유처럼 지난날의 관성과 학과의 분위기가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는 취업 잘되는 학과에서 이러니저러니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공부한 경영학이 대학 줄 세우기의 첨병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것만 같아 입맛이 쓰다. 응당 학문이라면 가져야 할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스스로 가로막고 있는 이 학문의 미래는 과연 어떠할까. 그것은 정말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불릴만한 가치가 있을까. 답은 이미 나와 있는지도 모른다. 201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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