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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 Jan 07. 2022

금연단상

담배를 피우지 않은 지 이제 아홉 달쯤 됐다. 한평생 함께할 것이라 생각했던 담배와의 결별은 사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노인분이 이런 거면 십중팔구 폐암이 맞는 건데… 선생님은 아직 30대니까 검사를 더 해보죠.”


올해 초 찾은 어느 대학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은 내 눈을 지긋이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양쪽 폐에 있어선 안 되는 것들이 잔뜩 찍혔다는 얘기였다. 언뜻 듣기에 감기몸살 처방이라도 하는 듯 꽤 가벼운 말투였다. 하지만 노련한 대학병원 의사가 섣부른 진단이 가져올 폐해를 모를 리 없을 터. 순간 ‘불필요한 동요를 막기 위해 이러는구나’란 생각이 스쳤다. 말문이 막히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아직 최종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니 흔들리지 말자’는 생각과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놓아야 견딜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교차했다. ‘왜 이런 비극이 나에게 찾아왔을까’ 하는 억울함과 ‘왜 나는 항상 건강할 것이라 생각했을까’ 하는 후회도 밀려왔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일이었지만 의외로 수긍은 빨랐다. 술·담배와 함께 무절제하게 살아온 지난날을 쭉 돌이켜보니 ‘그럴 만도 하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족과 친구들에겐 끝내 알리지 못했다. 입밖으로 꺼내는 순간 진짜 ‘현실’이 될 것 같아서였다.


마침 문학 담당이던 내 눈에 들어온 것이 기형도와 김소진이었다. 신문기자 출신인 둘 모두 서른 언저리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고 보니 내가 평소 좋아하던 이들 중 꽤 많은 경우 나보다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음을 깨닫게 됐다. 이상도, 윤동주도, 커트 코베인도, 히스 레저도, 투팍도, 비기도, 유재하도, 장 미셸 바스키아도 채 서른을 넘기지 못했다. 경찰서 출입기자일 때 직접 보고 겪고 기사로 쓴 안타깝고 억울한 죽음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들에 비하면 나는 살 만큼 산 것 아닌가, 하는 조금은 웃픈 생각들로 두 달쯤 지냈던 것 같다.


코로나19로 해당 병원이 한동안 폐쇄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결과는 무탈한 것으로 나왔다. 폐에 찍힌 허연 것들은 지난해 앓았던 집먼지 알레르기와 폐렴의 흔적이라고 했다. 아무튼 이런 연유로 담배와 멀어지게 됐는데, 이렇게 오래 담배를 피우지 않은 것은 스무 살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여기서 내가 ‘끊었다’는 표현을 애써 쓰지 않는 것은, 이 금연에 나의 의지가 전혀 녹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끊어야지’나 ‘참아야지’가 아니라 ‘그냥’ 멀어진 것이다. 술에 만취해 인사불성이 되어도 담배 생각이 일절 나지 않는 것을 보면 내면 깊숙한 어떤 것이 바뀌어 버린 듯하다.


불과 몇 달 전 일들이지만 벌써 아득하게 느껴진다. 담배만 아니라면 ‘정말 그런 일이 나한테 있었나’ 싶달까. 그래도 이번에 깨달은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앞으로 나에게 주어질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러니 현재의 삶에 보다 충실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나를 아껴주는 이들에게 더욱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 생각해보니 “담배는 몸에 해롭다” 말처럼 모두 당연한 것들이었다. 20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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