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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 Jan 07. 2022

그놈 목소리

종종 집으로 전화가 올 때가 있다. 대부분 수화기 너머로 불순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 기운은 어찌나 강렬한지 수화기를 귀에 갖다 대려는 0.1초의 찰나에도 알 수 있다. 어떻게 집 전화번호를 알았을까. 개인정보가 어디서 또 털린 걸까. 아무래도 저번에 가입한 그 사이트 때문인 것 같은데. 순간 짜증과 함께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에 스친다. 그래도 인사는 하는 편이다. “아, 괜찮습니다. 뚝.”


한번은 군시절 내무반으로 전화가 걸려온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였다. 아니, 웬일인가 하고 보니 집으로 ‘OO가 갑자기 큰 사고가 나서 그런데 전화 끊지 말고 돈을 계좌로 부치라’는 전화가 걸려왔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내 목소리 비슷한 것도 들렸다고 하셨다. 웃음이 났다. 그들은 아쉽게도 상대를 잘못 골랐다. 시크함으로 똘똘 뭉친 할아버지는 그러거나 말거나 바로 전화를 끊고 부대로 전화를 하셨다. 해프닝이었지만, 생각해보니 그게 벌써 6년 전 일이다.

  

그 사이 보이스 피싱은 거듭 진화를 했다. 6년 전, 불특정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사고가 났다"느니 긴박한 목소리로 겁주던 것은 이제 옛말이 됐다. 수법은 더 정교해지고 치밀해졌다. 몇 년 전에는 검찰 수사관, 형사 등 수사 직종이 유행이었지만, 요즘에는 금융감독원이 대세란다. 젠틀하고 침착한 말투와 전문용어의 범람이 수화기 너머의 누군가를 낚시줄에 옭아맨다. 요즘 시대에도 그런 것에 '낚이는'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뉴스를 보면 생각보다 피해사례가 많다.


며칠 전 김무성 대표를 사칭한 5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성대모사를 통한 신종 보이스피싱이었다. 말하자면 또 한 번의 진화인 셈이다. 범인은 김 대표를 사칭해 대학교수, 병원장, 지방 시도의회 정치인 등을 상대로 돈을 뜯어냈다. 네티즌들은 이를 두고 진정한 ‘창조경제’라 칭송했다. 범인에게 필요한 것은 딱 두 가지였다. 타깃의 전화번호와 한 잔의 물. 그거면 됐다. 중후한 경상도 말투의 “어허, 나야. 나 몰라?”라는 주문에 금고 문들은 스르륵 열렸다. 실로 마술과도 같은 일이었다.



마술사의 쇼는 김무성 대표 지인의 신고로 막을 내렸다. 일종의 해프닝이다. 김 대표 측 반응 역시 대수롭지 않다. 그런데 이를 그저 신종 보이스 피싱쯤 넘기기에는 뭔가 가슴 한 구석이 꺼림칙하다. 이번 사건은 기존의 보이스 피싱과는 궤가 다르다. 기존의 피해자 대부분이 교육 수준이 낮은 일반인 혹은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었다면, 이번에는 병원장, 시의원, 지방 정치인 등 소위 ‘화이트 칼라’들이 주된 타깃이었기 때문이다.


똑똑한 그들은 왜 금고문을 열었던 것일까? 정말 비슷한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언론은 호들갑을 떨었지만, 보도된 녹취를 들어보면 긴가민가하다. 사투리를 빼면 꼭 집어 김 대표를 닮았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사실 비슷한 게 하나 있긴 있었다. 권위적이고 고압적이며 확신에 찬, 그 특유의 말투. 그것 하나만은 부정하기 힘들 정도로 닮아 있었다. 성대모사의 달인 정성호는 말한다. “모든 말투를 다 따라할 수는 없어요. 핵심은 이미지예요. 그래서 표정이나 제스쳐가 중요한 거죠.” 범인은 그 포인트를 정확하게 짚었다.


종편에 등장한 한 기자는 녹취록을 듣더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말한다. 물론 우스갯소리였다. 그러나 ‘그럴 수도 있다’는 개연성이 바로 이 사건의 핵심이다. 고위 정치인의 "현금을 대령하라"는 다소 황당한 명령이 유효했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의 정치문화가 성숙하지 못하다는 증거 아닐까? 과거로부터 이어진 권위주의적 정치문화의 관성이 여전히 사람들의 머리에 자리 잡고 있다. 적어도 피해자들이 상상했던 김무성 대표는 ‘그럴 법한’ 사람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피해자들에게 어리석다 손가락질만 할 일이 아닌 것이다.


김무성 대표는 분명 억울할 것이다. 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으로 여러 가지 불편한 정치적 이슈를 안고 있는 상황이다. 자신과 무관한 일로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탐탁할 리 없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상상하는 김무성 대표의 이미지다. 현금을 내놓으라는 터무니없는 요구에 사람들은 의심치 않았다. 김무성 대표는 반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현재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는 정부여당의 방식은 과거 권위주의 독재정권의 그것과 꼭 닮아 있다. 일체의 반론을 허용치 않고, 권위주의적이며 단호한 어조로 대중을 계몽의 대상으로 여기는 바로 그 태도다. 밀어붙이는 저의가 어찌됐던 간에 적어도 대중들의 머릿속에 정부와 여당은 '그럴 법한 사람'들로 각인되고 있다. 그렇다면 김무성 대표는 '그놈 목소리'에 억울해하면 안될 일이다. 생각할수록 황당한 그놈 목소리가 여기저기 울려퍼졌던 데에는 본인의 책임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20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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