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일기
연말연시가 되자 시상식이 연일 화제다. 어제는 서울가요대상 시상식에서 진행을 맡은 전현무가 동료 연예인에게 던진 짓궂은 농담이 도마에 올랐다. 물론 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있지만, 한편으론 우후죽순 생긴 상들 때문이 아닐까하는 의심(확신)이 든다. 무엇이든 갑자기 확 늘어났다면 그 밑바탕엔 자본의 논리가 깃들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자본의 논리가 주입되면 금세 게걸스러워지기 마련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남다른 치적을 쌓은 이에게 권위와 품격을 하사하는 시상식은 우리 사회에 더 이상 찾기 어렵다. 지난해 대종상만 봐도 그렇다. 15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렸던 ‘청렴사회를 위한 천만인 청렴 서약식 및 반부패 근절 중앙 선포대회’는 그 전형을 보여줬다. 국회를 가본 일 없었던 내게 그곳은 일종의 '판타지'였다. 대한민국의 품격과 서릿발 같은 위엄이 서려있는 곳이라 믿었다. 그러나 역시 현실에 판타지는 없었다.
처음 여는 행사였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한 사회를 상징하는 국회에서 열리는 행사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발음이 뭉개져 도무지 들리지 않는 아나운서의 말은 그렇다쳐도 수상소감을 먼저 말하고 한참 뒤에 상을 받는 시상식이 또 있을까. 아니, 거의 10분가량 진행된 내빈소개에 이미 지쳐버렸다. 상에 당당히 박힌 ‘자랑스런’이라는 오타는 귀여운 수준이다.
대상을 받은 이종구 전 수협중앙회 회장은 “수협이 자신이 처음 맡았을 때보다 몇 단계나 청렴해졌다”며 자기자랑 일색이었다. “모두가 정치판에 왜 들어가냐고 하지만 그곳을 청렴하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들어가야 한다”고도 했다. 물론 아무도 묻지않았고 모두가 썩 궁금해하지도 않아 보였다.
총 24명의 ‘대상’ 역시 상의 권위를 떨어뜨리기 충분했다. 물론 그분들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청렴의 대명사’일 테다. 그러나 대부분 가치 있는 것들은 희소성의 원리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24번째 마지막으로 대상을 받은 한국마약학박사 성규한씨까지 가기도 전에 시상식이 어느새 휑해졌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1200여명의 관람객들은 딱 ‘자기 사람’이 상을 받자마자 서둘러 자리를 떴다. 이후 ‘청년다짐’을 위해 단상에 올라온 불교종단연합회 인권위원장 진관 큰스님은 “대상을 받은 사람들이 행사가 끝나기도 전에 다 가버렸다. 청렴하다더니 상을 도로 뺏어야겠다”며 뼈있는 농담을 던졌다.
우리 사회에서 상의 의미는 퇴색된 지 오래다. 365일 품격을 강조하는 것은 간지러운일이지만, 때때로 권위와 품격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다. 적어도 1년에 한 번 있는 시상식이라면 응당 그래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특별함은 단 한 사람에게만 주어져야 빛이 난다. 칭찬은 인색한 사람한테 들어야 의미가 크다. 우리 사회는 그 간단한 원리를 왜 아직 모르고 있을까.
2016.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