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문화부로 발령이 나면서 필름 카메라를 중고로 하나 샀다. 평소 관심이 있기도 했고 내 안의 어떤 ‘갬성’을 일깨우는 데에도 적잖이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우선 필름 파는 곳을 찾기 어려웠다. 집 주변 사진관 5곳에 전화를 해보니 딱 한 군데서만 필름을 판매하고 있었다. 이마저 마지막 한 롤이라고 했다. 가격은 1만원. “하나 달라”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혹시 덤터기가 아닐까 싶어 슬쩍 찾아보니 온라인에도 그 가격이었다. “찾는 사람도 없고 배송비가 더 나오니 다들 안 갖다 놔요.” 아저씨는 내가 또 올까 싶었는지 앞으론 안 들여올 거라고도 했다.
필름을 구하고도 문제였다. 카메라의 노출값이나 초점이 어떻게 잡히는지, 혹시 카메라가 고장 난 것은 아닌지 인화할 때까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 사진이나 찍을 순 없었기에 일단 판매자의 양심을 믿기로 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네댓 장씩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36장을 모두 찍고 사진관을 찾고 보니 카메라를 산 지 보름 넘게 지나 있었다. 사진을 받기까지는 거기서 사흘이 더 걸렸다.
“2만3000원입니다.” 또 한번 멈칫했다. 사진 한 장당 500원씩에 현상료 5000원이 붙은 것이다. “여..여깄습니다.” 분명 ‘갬성’을 일깨우려 산 것인데 현실 감각만 일깨워지는 것 같았다.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첫 결과물인데 이 정도 투자쯤은….’ 이런 생각은 길 위에서 꺼낸 사진들을 보면서 쑥 들어가 버렸다. 대부분 초점이 나가 있었고 앵글도 엉망이었다. 손에 힘이 들어갔다. 친구 얼굴의 4분의 1이 잘려 나온 사진도 있었다. 이런 사진들은 누구한테 주기도, 그렇다고 버리기도 뭣해서 서랍 깊숙한 곳에 처박아 놨다.
친구들 사진.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이랑은 아무래도 차이가 꽤 있다.
그나마 ‘좋아요’가 위안이 됐다. 개중 잘 나온 몇장을 스캔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는데 반응이 썩 나쁘지 않았다. 지금까지 노력을 비로소 보상받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 SNS인가’란 웃픈 생각이 스쳤다.
그렇다고 꼭 나쁜 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결과물을 곧바로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은 대단히 불편했지만 까맣게 잊고 있던, 묘한 설렘을 불러일으켰다. 필름 보기가 어려워져서 그런지 사진을 선물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아이처럼 좋아했다. 그러면서 각자 사진에 얽힌 추억을 하나둘 되살리곤 했다.
사진 한 장의 가치를 알게 된 점도 좋았다. 디지털카메라처럼 마구 찍고 지우기가 불가능한 터라 자연스레 피사체와 촬영 순간에 좀더 집중하게 됐다. 사진만큼 흔한 것도 없다지만 필름 사진은 어쩐지 스마트폰으로 찍은 것과 느낌이 달랐다. 스마트폰은 확실히 편하긴 하지만 워낙 사진이 많이 쌓여 있어 조금만 지나도 자기가 뭘 찍었는지 까먹기 일쑤다. 풍요 속 빈곤이랄까. 반면 필름 사진은 한 컷 한 컷 어떤 상황에서 찍었는지 또렷이 떠오른다.
얼마 전 ‘이왕 쓰는 김에’란 생각이 들어 큼직한 앨범을 하나 샀다. 잘 나온 사진 몇장을 끼워넣어 보니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맨 첫장에 넣을 사진을 고르다 문득 계속 이러다 보면 없던 ‘갬성’도 조금은 생기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아무쪼록 그랬으면 좋겠다.2020.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