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누나가 한 명 있다. 대학 신입생 때 교양수업에서 만났다. 기계과 복학생 형까지 셋이 곧잘 어울렸던 것 같다. 매일 술에 절어있던 기계과 형과는 주로 술을 먹었고, 누나랑은 밥을 종종 먹었다. 밥을 먹을 때면 누나는 항상 덜어 먹었다. 한두 숟갈만 남기고 내 밥공기에 밥을 옮겨 담았다. 술을 먹을 때도 그랬다. 안주는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대개 여자들이 적게 먹긴 하지만, 그 누나는 유독 까다로웠다. 그것은 아마도 누나가 무용과, 그것도 발레를 전공하고 있던 것과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 발레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제대로 본 적은 없었지만, 나에게 발레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이미지의 예술이었다. 그러나 이 누나에게 발레과 학생들의 일상을 듣고 난 뒤 생각이 조금 바뀌게 되었다. 그 세계는 보이는 것처럼 마냥 아름답지도, 우아하지도 않았다. 거기엔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치열함과 경쟁의 질서만 있었다.
특히 '밥'과의 싸움이 처절했다. 누나가 그때 졸업반이었으니, 그것은 근 20년을 이어온 전쟁이었을 것이다. 매끼 밥을 덜어먹는 것도 오랜 습관이라고 했다. 먹는 것과의 싸움은 여러 가지 유형이 있었다. 누나는 담배를 싫어했지만, 무용과에는 의외로 담배를 피우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스트레스 해소뿐 아니라, 담배가 식욕을 억누르는데 도움이 됐기(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폭식'에 관한 이야기였다. 억누르던 식욕이 기어코 폭발할 때 쓰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럴 때면 피자며 치킨이며 평소 먹고 싶었던 것을 모두 시킨다. 허겁지겁, 꾸역꾸역 양볼 가득 입에 쑤셔넣는다. 충분히 씹고 삼켰으면 이제 뱉어낼 차례다. 목구멍에 손을 넣어 먹은 것 모두 토해낸다. 그 분야 대부분이 한 번쯤 해본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약발이 오래가진 않는단다. "'이 짓'을 몇번 하고나면 몸이 금방 알아채 버려. 아무리 목구멍에 손을 넣어도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아. 참 신기하지." 과학적 근거까진 모르겠지만,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언젠가는 누나가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경험을 말해준 적이 있다. 공연을 앞두고 생긴 거식(拒食)증 때문이었다. 누나는 처음 의사선생님을 봤을 때, 그가 자신을 정신병자 취급하는 것 같아 굉장한 적개심이 들었다고 했다. 퉁명스러웠던 그 태도가 풀리기까진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밥에 대한 강박은 그 세계에서 놀랄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것이 그들의 치열한 경쟁과 불안한 미래와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평생을 무용 하나만 보고 산 그들이지만, 졸업 이후의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아마 거식이 그들의 불안을 달래줬을 것이다.
요즘 어쩐지 밥맛이 없다. 지난 주말 먹은 술 때문일까. 그런데 요즘에는 술맛도 별로 없다. 졸업을 앞둔 취준생에게 반가운 술자리는 그리 많지 않다. 한잔 술에 불안을 털어내 보려 해도, 한두 잔으론 어림도 없다. 신입생 시절 신기해하며 들었던 그녀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이 겪은 불안이 전염병처럼 내게도 옮은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졸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만 감염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소서를 써야하는 오늘 같은 밤이면 왠지 속이 불편하다. 목구멍에 손가락 한두개 집어넣는 정도론 꿈쩍도 않는 불안이, 거기에 있다. 201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