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십쇼, 기자님. 지는 내일 분명 분신할 낍니다. 하나 몬하나 두고 보십쇼. 저, 이대론 억울해서 못 살겠심니더."
이 말을 들은 건 스물 일곱살의 겨울, 그러니까 언론사에 막 입사해 소위 '마와리'라고 불리는 수습기자 교육을 받을 때였다. 대구에서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한다는 그는 어느 호텔로부터 공사 대금 1억3000만원을 받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차에 우연히 나를 만났다. 보고거리에 잔뜩 굶주려 있던 수습기자에겐 귀가 번뜩이는 이야기였으나, 사수 선배는 흥미가 별로 없어 보였다. 그렇게 관심을 끄려던 차에 그가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죽겠다고. 심장이 '쿵'내려앉았다.
"제발 마음을 바꾸시라", "따님들을 떠올려보시라"... 1시간 넘게 진땀을 뺐던 것 같다. 설마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혹시나 해서 이튿날 경찰에 신고해 함께 찾은 현장에 그가 나타났다. 온몸에 휘발유를 뒤집어 쓴 채였다.
한 번은 눈 앞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저는요, 기자님이 기사를 쓰셔도 자살할 거구요, 안 써주셔도 자살할 거예요." '미투'가 큰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 때 회사로 피해 경험을 제보한 어느 여성의 말이었다. 성폭행 피해를 입은 것은 확실해 보였지만 그렇다고 한쪽 이야기만 듣고 기사를 쓸 수 없는 일. 법원과 검찰을 오가며 사실관계를 확인하다 보니 기사가 조금 늦어진 상황이었다. 그녀는 "기사가 나오면 한이 풀려서, 기사가 안 나오면 억울해서 죽겠다"고 했다. 등줄기로 땀이 흘러내렸다. "절대 그러시지 말라"고 읍소하며 내가 아는 온갖 희망찬 이야기와 어디선가 주워들은 우울증 극복 사례들을 횡설수설 늘어놓았던 기억이 난다.
아마 나만 겪은 일은 아닐 것이다. 죽음, 그리고 자살은 어느 기자에게나 숙명처럼 찾아온다. 그럴 때 흔들리지 않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무던히 기사를 쓰는 기자를 흔히 '참기자'라 부른다. 기자를 '글로 밥벌이 하는 사람'쯤 여기던 내가 이 업의 무게감을 깨닫게 된 것도, 떠올려보면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하고 나서였다. 물론 썩 내키는 기억은 아니다. 가끔 수습기자들을 대상으로 자살보도와 취재윤리 수업을 하고, 때로는 자살예방 토론회 같은 곳들에 참석해 주변으로부터 우스갯소리로 "자살전문기자"라 불리지만, 그런 내게도 자살은 마주하기 거북한 것이다. '자살'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과거 자살시도자와 자살 유가족들을 취재했을 때 느꼈던 우울함과 두려움, 슬픔 등 감정이 물밀듯 밀려온다.
"형님, 제가 정말정말 면목이 없는데요.. 아기 분윳값이 없어서요.."
고아원에서 자라 보호시설을 전전하던, 수천만원의 빚을 안고 홀로 9개월 된 딸을 키우던 24살 청년은 나를 "형님"이라고 불렀다. SNS를 통해 "동반자살자를 찾는다"던 그였다. 자살예방 시리즈 기사를 기획하고 무작정 사례를 찾아 헤매던 나와 연락이 닿은 그는 굴곡진 삶을 남김없이 털어놓았고, 나는 시리즈 첫 회에 이를 보도했다. 그런 이가 돈을 요구한 것이다. 짐짓 덤덤한 척했지만 머릿속이 헝클어졌다. 솔직히 고백하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얘가 진짜 죽으면 어쩌지? 그러면 내가 모든 책임을 뒤집어 쓰는 건 아닐까?' 오랜 고민 끝에 "안 갚아도 되니까 다시는 이렇게 연락하지 말라"고 하고 돈을 부쳤다. "열심히 살겠다", "절대 연락하지 않겠다"고 거듭 다짐하던 그가,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또 연락을 해왔다. 1주일쯤 지나서였다. 다행히 전문가들 도움을 받아 어찌어찌 해결은 됐지만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떨린다.
그저 말만 들어도 이럴진대 취재원이 실제로 목숨을 끊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몇 해 전 비슷한 연배의 타사 기자가 어느 회사 대표의 직원 폭행 사건을 보도한 적이 있다. 기사 내용도 의미가 있고 취재의 꼼꼼함이 한눈에 들어오는 탁월한 특종이었다. 하지만 비극적이게도, 보도가 겨냥했던 이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 당일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직 그런 경험을 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그 기자가 그 소식을 어떤 심정으로 들었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물어볼까 생각도 들었으나 끝내 입밖으로 꺼내진 못했다. 어떤 형태로든 상처가 되었을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언제 한번은 "가깝게 지내던 취재원이 유서에 '그동안 감사했다'고 써놓은 걸 보았다"는 어느 선배의 눈물을 본 적도 있다. 가슴팍이 저릿저릿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모든 자살사건이 기사화되진 않는다. 흔히 언론계 은어로 '얘기가 되는', 즉 뉴스 가치가 높은 사건만 기사가 된다고 한다. 하지만 내 경험상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어떤 죽음도 얘기가 안 되는, 사연 하나 없는 죽음은 없었다. 아니, 스스로 자기 존재의 종말을 고하는 것보다 더 비극적인 일이 또 있을까. 그래서 알베르 카뮈가 "세상에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로지 자살밖에 없다"고 썼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살을 취재하다 보면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고, 이는 다시 '1만3799'(2019년 자살자 수)란 숫자에 대한 깊은 절망감으로 이어진다. 물론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그토록 세상을 들썩인 코로나19가 앗아간 생명이 여태껏 500명을 조금 넘긴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거대한 숫자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그리고 그런 사회에서 기자로 산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인 걸까.
"자살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에도 매번 거침없이 쏟아지는 자살보도들을 볼 때 나는 직장인으로서의 비애와 무력감을 느낀다. 누군가의 비극을 찾아내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이를 팔아 밥벌이 하는 것이, 이를 아무렇지 않게 완수하는 것이 내가 몸담고 있는 직업세계의 룰이란 걸 새삼 깨닫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손가락질하려다가도 '나라고 다를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이내 고개를 돌리고 만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올해 문화부에 지원해 온 것이나 내러티브 논픽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어쩌면 이런 현실을 외면하려는 무의식의 발로였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언제까지나 피해 다니기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살에는 그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가 응축되어 있게 마련이고, 이를 공적으로 환기시키는 것이 기자의 책무란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가급적 피했으면 한다면, 그런 일이 나 그리고 내 주변에 벌어지지 않았으면 한다면, 내가 아직 제대로 된 '참기자'가 되지 못했기 때문일까. 수습 때나 지금이나 나는 자살이 싫다. 여전히 두렵고 무섭다. 이 문제에 관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만 무던함 아닌 두려움이 기자 사회에 조금 더 확산하면 무언가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추측할 따름이다. 그렇게 되기를, 다만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