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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 Apr 03. 2023

(2)흔적 없이 사라지는 기사들

'기자상'의 아이러니

살다보면 분명 내가 앞서고 있었는데 문득 깨달아보니 상대보다 뒤쳐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가 있다. 누구에게나 썩 유쾌한  아닐 것이다. 나는 그때의 기분을 꽤 잘 알고 있는데, 바로 지난해 신문사에 다니는 A가 쓴 기사 때문이다.


같은 해 입사자를 모조리 '동기'로 묶는 언론계 문화 탓에 엉겁결에 동기가 된 A는 햇병아리 수습 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곧 알고 지내는 인물이다. 늘 기사 쓰기에 열심인 그가 지난해 부서를 옮기고 한 몇 달 잠잠하더니 '턱'하고 기사를 하나 내놓았다. <대법원 서랍 속 국가폭력 224건>이라는 기획 시리즈였다. 감탄이 나왔다. 대법원이 스스로 과거사를 바로잡으려는 차원에서 만들었던 문건이 이 보도를 통해 16년 만에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권력에 영합한 판결들이 최근 재심으로 속속 뒤집어지고 있는 상황. 문건 속 아무개들은 이 기사를 보며 '길'이 열리는 것처럼 느꼈을지 모른다.


이같은 기획의 배경은 물론 전체적인 구성과 흐름, 내러티브를 살린 기사 작법과 인터랙티브 페이지까지, 뭐 하나 빠짐이 없는 기사였다. 공은 또 얼마나 들어갔는지. 취재 기간만 4개월이 넘었다. 탐사팀 때 경험에 비춰보면 이 정도 볼륨감과 퀄리티가 동시에 나오는 기획은 드물었다. 행간에 고생한 흔적들이 묻어났다.


....!


기분이 묘했다. 이때 나는 '딥러닝이란 놈을 내 손으로 직접 구현해보자'는 일념 아래 AI개발자 과정을 밟던 중이었는데, 이 기사를 보고 '다 때려치고 당장 언론계로 돌아가 무엇이라도 취재하고 싶다'고 생각했다.(물론 딥러닝 엔지니어링이 그만큼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은, 말하자면 허탈함과 호승심이 뒤섞인 감정이었다. '이 사람이 이제 내 앞을 저만치 앞질러 가고 있구나..' 하는, 조금은 씁쓸한 깨달음이기도 했다. 같은 트랙 위는 아니게 됐지만 어찌됐든 8년 가까이 알고 지내며 서로 비슷한 지점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아무튼 A가 내놓은 기사들은, 적어도 내가 보기엔 나무랄데 없는 수작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결말까지 아름답진 못했다. '이달의기자상' 수상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대미'를 장식하지 못한 것이다. 기자 사회에서 기자상은 곧 기자가 들인 노력의 '품질보증서'이자 '전리품'. 탐사보도의 끝은 각종 상들, 특히 이달의기자상이 장식하기 마련이다. 물론 상을 받는 게 취재종착역은 아니다. 그러나 심혈을 기울인 몇 달 간의 고생이 한순간에 '싹' 하고 씻겨나가는 데에는 수상 소식만 한 게 없다는 게 언론계 상식이다.


더구나 기자상은 언론사들의 사내정치 지형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자상 수상에 실패하면 준비 중이던 다른 실험과 시도들이 추진력을 잃기 때문이다. 일부 기자들은 '탐사'란 단어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드러낸다. 그들에게 수상 실패는 좋은 먹잇감이다. "난 또 뭐 대단한 거라도 쓰는 줄 알았네", "내 그럴 줄 알았다", "일손도 없는데 데일리 기사나 쓰지, 참"이라며 물어뜯기는 것이다. 수상작 발표 뒤 A 본인도 그랬겠지만 나 역시 허탈해지는 기분이었다. 둘이서 술로 속을 달랬던 기억이 난다.


사라지는 건 늘 한순간


이런 기사가 어디 이것 뿐이랴.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나마 기자상이라도 받으면 어딘가에 흔적이라도 남지만, 그러지 못한 대부분의 기사들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다. 아마 A가 쓴 대법원 기사도 지금 얘기하면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사실 기자상을 받아도 사정은 그리 달라지지 않는다. 기쁨은 잠시뿐, 금세, 씻은 듯이, 새카맣게 잊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아마 기자상에 대한 기자들의 양가적 태도 때문일 것이다)


이 잔혹한 사실을 깨달은 것은 탐사팀 소속이었을 때였는데, 10년 전, 20년 전 선배들이 쓴 기사들을 찾아보며 '와, 저 사람들이 원래부터 월급루팡은 아니었구나!' 하며 속으로 감탄하곤 했다. 내가 기자상을 받기 위해 몸부림치지 않았다면, 초조함에 못이겨 땅 속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찾아내지 않았더라면, 여태껏 몰랐을 기사이었다.


내가 쓴 한줄평


그런 기사들의 흔적을 남기고 싶달까? 말하자면 일종의 '색인'인 셈이다.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기자들이 심혈을 기울인 기사들이 현장과 저만치 떨어져 있는, 이름 모를 심사위원들의 '깜깜이 평가'에 갇히지 않게 되는 것이다. '기레기'라는 멸칭이 범람하는 시대, 기자들의 소명의식과 노력이 더 값어치 있는 방식으로 평가받길 바란다. 물론 무엇이 더 값어치 있는 방식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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