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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 Apr 05. 2023

(3)개발자들의 괴물 같은 생산성의 비밀

전세계가 합심해서 만드는 코드 한 줄

개발자. 단어부터 낯설었다.


2년 전, 신문사에서 신생 스타트업으로 회사를 옮기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다양한 직군의 동료들과 함께 일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낯설었다. 기자 이외의 에디터들, 데이터 분석가들, 시각화 디자이너, 기획자.. 그중에서도 개발자들과 같이 일한다는 사실은 나에게 꽤 색다른 감흥을 주었다. 왠지 근사한 일을 하는 것 같았달까.


그래서인지 개발자들과의 대화는 늘 흥미진진했다. 대체로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기 때문인데, 그러고 지인들과 얘기할 때면 꼭 "개발자들은 말이야~" 하는 얘기를 끼워넣곤 했다. 어깨가 한 뼘쯤 올라가 있었다.


초창기 개발팀장 역할을 하던 A는 종종 나와 비슷한 수준의 컴맹들을 한데 모아 개발자들과 협업하는 방법, 개발자들의 사고방식, 개발에 관한 철학, 프로덕트 개발에 관한 책들을 추천해주곤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A는 네임드 개발자이면서 동시에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디자이너 그룹의 창립자였다.


당시 그쪽 세계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전무했던 나로서는 그저 '그렇구나'하고 말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소설가 김훈이 중학생 작문 수업을 해주는 수준의, 헛웃음이 나는 일이었다.


Use a Sledgehammer to Crack a Nut


그가 몸소 나섰던 건 아마 답답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답답한 건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베이스 없이 개발자들 이야기를 듣는 건 고역이었다. 제2외국어 수업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용어들이 오가는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고개를 끄덕이는데 사용되는 목 주변 근육과 '개발자들은 염기서열이 나와 다른 생명체'라는 확증편향만 강화될 뿐이었다.


풍문으로 들리는 그들의 높은 몸값과 그들을 향한 C레벨들의 겸손(?)한 태도는 그런 편견을 한층 부채질하는 요인이었다. 내심 이런 생각도 들었다. '아니, 내가 그래도 10대 일간지에서 대검찰청 출입까지  기자인데 이렇게까지 대접이 다르다고?', '개발자들이 그렇게 대단해?' 물론 입밖으로 꺼낸 적은 없다.


그 이후 회사를 나오고 내가 개발자의 길에 다리를 걸친 건 꼭 그때의 억울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궁금했다. 개발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왜 나와 비슷한 나이, 비슷한 연차임에도 대우가 이렇게 차이가 날까.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가치있게 만든 걸까.


결론적으로 지난 1년은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탐사의 시간이었다. 취재하듯 캐낸 개발자들의 세계는 외부에선 결코 알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비밀이 다수 존재하는 곳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비밀은 개발자들의 작업은 그 목적이 무엇이든, 방식이 무엇이든 늘 '집단지성' 위에서 작동한다는 점이었다. 그렇다. 홀로 2~3인분은 거뜬히 해내는 개발자들의 괴물 같은 생산성은 사실 혼자만의 업적이 아니었던 것이다.


"But yes."
'나'


개발자들의 협업은 스케일부터 다르다. '세계' 단위에서, 익명으로 이뤄진다. 전세계 곳곳 개발자 커뮤니티들에는 개발과 관련한 수많은 질문과 대답, 도움 받는 사람 입장에서 '아니, 정말 감사하긴 한데.. 이런 것까지 주셔도 됩니까?' 싶을 정도로 정교한 코드들이 길거리 깡통처럼 굴러다닌다.


짜는 데 적어도 몇주, 몇달은 걸렸을 코드들을 서로 아낌없이 나누는 이유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추측건데 '나 역시 그런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상호부조의 원리 혹은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하는 연민의 감정, '어이 새내기 친구, 개발자들은 원래 이런 거야' 하는 공대생 특유의 아비투스가 이 거대한 톱니바퀴를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It's not my code."


이런 메커니즘이 기자 사회에서 작동한다면, 기사를 쓸 때마다 작동한다면 어떨까. 집단지성이 작동하는 저널리즘 플랫폼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라는 막연한 생각이 이 모든 프로젝트의 출발점이었다. 개발자들의 공유 문화, 집단지성의 메커니즘이 언론계에 이식된다면, 공장에서 찍어내듯 판에 박힌 기사들이 아닌, 보다 새로운 기사들이 나오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아마 지금 기자들이 기사 쓰는 방식으로 개발자들이 코드를 매번 처음부터 새로 짜야했다면 ChatGPT 같은 건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지난해 Adobe에 무려 '28조원'에 인수된 figma의 직원 수는 전세계 800명밖에 되지 않았다. 이런 게 가능한지, 그 실마리를 보고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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