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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 Apr 12. 2023

(4)저널리즘 프로젝트의 첫 단추

기자들의 깃헙 혹은 해피캠퍼스

얼마 전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이 아이디어는 내가 돈을 아주아주, 아주아주 많이 번 다음에야 시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결론내린 것이다.


우선 배경 설명부터. 기자로 일할 때 개인적으로 장히 답답했던 것 중 하나는 언론계에 '데이터베이스(DB)'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는 점이었다. 포털에 검색해 나오는 기보도된 기사들이 사실상의 데이터베이스 역할을 다. 그 외에는 '저장소'란 개념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데, 이 때문에 출입처와 관련한 각종 데이터들을 틈틈이 정리해놓고 날렵하게 꺼내 쓰는 것이 기자의 역량쯤 여겨지곤 다.


이유를 추측하자면 기자들의 취재라는 것이 너무나 '개인화'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암만 데스크라도, 선배라도 건드릴 수 있는 건 기자가 보낸 결과물(기사 텍스트)뿐이다. 누가 '이렇게 합시다' 정해놓은 건 아니지만 아무리 후배라도 그가 수습기자가 아닌 한, 취재 방식이나 내용을 놓고 이러니저러니 간섭하는 일은 터부시된다.


기자들의 취재가 개인사업처럼 변질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칫 '자존심'이라는 역린을 건드릴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분위기가 기자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어색..


문제는 기자들의 출입처가 수시로 바뀐다는 . 보통의 언론사에서는 특별한 이유(징계성 짙은 유배라든지)가 없다면, 편집국 차원에서 출입처를 주기적으로 섞어주기 마련이다. 거기에는 여러 출입처를 거치며 견문을 넓히라는 독려, 출세에 도움이 되는 출입처(정치, 경제, 사회부)를 가고 싶어하는 기자들의 요구, 편집국장의 위력 행사 등 다양한 의미가 숨어있는데, 이는 다시 말해 사내정치 역학에 따라 얼마든지 마구잡이로 출입처가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경제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기자가 별안간 증권기사를 쓰기도, IT나 법률 문외한이 ChatGPT 기사, 판결문 기사를 쓰는 일 따위가 언론계에는 비일비재하다.(나 역시 문화부에 있다가 날벼락처럼 법조 출입이 된 적이 있다.)


매번 다시 레벨 1로..


그럴 때 기자들은 보스몹을 잡다가 사망해 레벨 1로 돌아간 게임 캐릭터처럼 밑바닥부터 다시 취재의 탑을 쌓는다. 물론 인수인계가 형식적으로 존재하지만, 대개의 경우 그리 쓸모있지 않다. 그러니 기사들 수준이 항상 제자리걸음, 어떤 '천장'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만약 그런 기자들에게 (내밀한 취재 내용까지는 아니더라도) 같은 출입처의 기자가 수백, 수천 건의 기사를 쓰며 모아놓은 취재 메모 공유한다면 어떨까? 무언가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을까?


기자들한글2002(실제로 기자들이 많이 사용한다..)에 한땀한땀 모아놓고 새까맣게 잊은 무수한 정보 더미들을 '업사이클링' 해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 이 아이디어의 핵심이다. 그 전제는 당근마켓에 올라온 중고 냉장고처럼 누군가에겐 아무짝에도 쓸모 없지만, 누군가에겐 간절히 필요한 것이 기자 사회에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기자들 노트북은 보물을 가득 싣고 심해에 가라앉은 해적선이고, 거기에 담긴 순도 높은 정보들을 다같이 한번 열어보자는 얘기다. 어느 기자들한테는 적어도 '중급자용 방어구'쯤으로 쓸모가 있지 않을까?


꼭 기자가 아니라도 여기에 관심이 있거나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가령 정치부 기자들이 매일 1회용 티슈처럼 수백장씩 쓰고 버리는 정치인들의 각종 '워딩'만 보더라도 기사로 오려지는 부분은 전체의 10%도 채 되지 않는다. 나머지 90%를 궁금해하는 이가 분명 있을 것이란 게 나의 (막연한) 추측이다. 아마 다른 분야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아가 수요에 따라 데이터들에 가격을 붙일 수만 있다면 박봉에 기자정신만 강요당하는 기자들 가계 사정에도 분명 도움이 되리라.


이런 생각의 흐름 밑바닥에는 개발자들의 '코드재활용' 문화도 영향을 미쳤는데, 요컨대 나는 언론계의 깃헙(github)을 구상한 셈이다.(코드재활용에 대해선 추후 다시 글을 쓸 예정이다)

깃헙 로고


"엥, 그거 완전 해피캠퍼스 아냐? 있으면 뭐.. 하려는 사람이 좀 있을 거 같은데?"


이를 들은 어느 친한 기자는 '해피캠퍼스'라는 다섯 글자로 이 아이디어를 단숨에 요약했다. 반응은 썩 나쁘지 않았다. 그의 말은 취재 메모들이 쓸 데 없이 쌓이기만 하고 어차피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데 써먹을 데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핀트가 조금 다르지만, 해피캠퍼스가 됐든 깃헙이 됐든 아무튼 이런 공유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내 머릿속 목표물 중 하나다.


물론 '단독의숲'은 이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으나 내 개인적으로는 그에 대한 예습, 혹은 훈련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말하자면 내 머리를 맴도는 여러 저널리즘 프로젝트들의 첫 단추격인 셈이다.



단독의숲

https://dandoc.kr

탐사보도 아카이브

https://dandoc.kr/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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