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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 Apr 25. 2023

스타트업의 본질

인터뷰 아닌 인터뷰(?)를 하다

대학원을 다니는 친구 A가 수업 과제라며 서면 인터뷰를 부탁했다. 스타트업 전/현직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뷰인데 내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 가벼운 마음으로 응했는데 막상 받고 보니 질문 숫자가 적지 않았다. 답변을 적으며 스타트업이란 무엇일까, 스타트업의 본질이란 뭘까, 나는 그동안 어떤 일을 했던 걸까, 하는 생각들을 했다. 뜻밖의 생각 정리 시간이었다.




1.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어떤 커리어를 밟아 오셨나요?


2015년 신문사에 입사해 경찰팀, 탐사팀, 문화부, 법조팀 등을 거쳤고, 대검찰청 출입기자 시절이던 2021년 정혜승 대표의 제안을 받아 alookso 창립 멤버로 팀에 합류했습니다. 이후 회사를 나와 정부지원을 받으며 머신러닝과 딥러닝 엔지니어 교육을 이수했습니다. 지난해 창톡이라는 스타트업을 공동창업해 얼마 전까지 프로덕트팀 팀장(PO)겸 개발자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개인 사업을 준비 중입니다.


2. 얼룩소와 창톡은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나요? 어떤 면에서 끌려 이 업계로 들어서게 되었나요?


alookso와 창톡은 각각 미디어와 자영업 시장을 IT기술로 혁신하고자 하는 스타트업입니다. 둘 모두 사회적인 성격이 짙습니다. alookso는 고품질의 아티클들을, 창톡은 자영업 고수와의 컨설팅 기회를 제공합니다. 두 스타트업 모두 초기 단계에서 저를 필요로 한다며 손을 내밀었고, 기술 혁신으로 각종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점,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볼 수 있다는 점 등이 합류 결정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3. 대기업이나 기존 레거시 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옮기는 많은 사람들의 동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큰 조직 특유의 경직된 사내 문화, 그에 대비되는 스타트업의 자유로운 업무 환경 등 스타트업에 대한 '로망'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느 정도 커리어를 쌓고 스타트업 쪽으로 이직하는 경우라면, 연봉도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주거나 오히려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커리어적으로도 크게 아쉬울 게 없을 것입니다. 스타트업들이 대개 조직보다는 개인의 성장을 강조한다는 점, ‘평생직장’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 사실상 퇴출된 점 등도 한몫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추가] 3-1. 실제로도 정말 자유로운 업무 환경이었는지? 외부에서 바라보았을 때와 내부에서 직접 느꼈을 때 차이가 있었나요?


실제로 자유로웠습니다. 제가 있었던 스타트업들의 경우 구성원들이 좋은 환경, 여러 분야에서 전문성 있는 커리어를 쌓았던 터라 기본적인 애티튜드와 업무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이와 달리 말그대로 맨땅에서 시작하는 스타트업이었다면 분위기가 꽤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 개발자의 길로 들어선 계기가 있나요?


우선 스타트업씬에 들어와 알게 된 개발자 세계에 대한 개인적인 흥미와 호기심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딥러닝에 대한 다소 막연한 환상과 딥러닝이 앞으로 만들어 갈 거대한 시대 조류에 무작정 휩쓸려 가고 싶지 않다는 의지 등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저널리즘적으로도 기자 시절부터 늘 NYT나 Economist, Propublica 등 해외 유력 언론들이 내놓는 데이터분석 기사, 인터랙티브 기사 등을 직접 구현해보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남들에겐 없는 무기를 하나 더 얻게 될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5. 기존 언론사와 스타트업의 내부 커뮤니케이션 차이가 있나요? 있다면 무엇인가요?


조직이란 것이 결국 비슷비슷합니다. 스타트업이라고 다 나이스하고 젠틀한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스타트업 쪽이 조직 내부의 의사결정과 갈등 해결 과정에서 조금 더 배려심이 있고 서로를 조심스러워한다는 점입니다. 기존 언론사들이 전통과 관습에 따라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면, 스타트업에서는 건전한 커뮤니케이션 문화를 명문화하고, 구성원들의 화합을 끊임없이 도모합니다. 구체적으로는 나이와 지위를 막론하고 서로 존댓말을 쓰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 스타트업 내부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스타트업을 일반화시키기는 어렵습니다. 개인적인 경험과 여기저기에서 들은 바에 비춰보면 서로를 조심스러워하고 민주적인 절차를 강조하는 특유의 문화 때문에 린하게 이뤄져야 할 의사결정이 종종 지체되는 점, 팀원들에 대한 팀장급들의 상명하복식 명령이 어려운 점 등이 있습니다. 조직의 성장을 위해선 때로 격려뿐 아니라 질책이 불가피하지만 그런 것들을 터부시하는 분위기 탓에 팀장급들이 답답해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개발직군과 비개발직군간 칸막이가 생각 이상으로 높다는 점도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추가] 6-1 개발직군과 비개발직군간의 칸막이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팀으로 돌아가는 조직 특성상 발생하는 소통 단절 문제, 개발 관련 커뮤니케이션의 한계, 업무 프로세스에 관한 시각차 등이 있습니다. 개발팀과 기획팀은 서로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지만, 각자의 업무 특성상 서로 간 긴장감이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가운데에서 양측을 조율하는 PO나 PM 같은 직군이 각광받고 있는 것이고, 꼭 개발자가 아니더라도 개발에 관한 리터러시가 강조되는 이유입니다.


7. 수평적 팀 문화와 구성원들의 자율적 책임이 스타트업의 성장과 공존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가능합니다. 하지만 어렵습니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수평적인 팀 문화를 만들어 가려는 것은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조직의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국내외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이를 증명하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이런 자유롭고 수평적인 문화는 개발자 등 고급 인재 영입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제대로 된 조직 문화를 만드는 게 어려운 것이지, 스타트업식 ‘J커브 성장’, ‘로켓 성장’을 위해선 필수적인 요건이라고 생각합니다.


8. 스타트업의 성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성공’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투자 유치만 놓고 본다면 단연 팀원 구성입니다. VC나 AC 등을 상대로 IR을 한 번만 해봐도 알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씬에는 탁월한 아이디어가 그야말로 넘쳐납니다. 문제는 ‘구현’입니다. 투자자들은 팀이 자기네 아이디어를 현실 세계에서 구현해낼 수 있을지 의심합니다. 업무적으로 유능하고 인사이트 있는, 그러면서도 투자자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커리어를 밟아 온 팀원 구성이 필수적입니다. 그 중심에 CTO와 개발자들이 있습니다.


[추가] 8-1. ‘아이디어’와 ‘구현’ 사이의 간극. 이를 위한 ‘생산성’. 생산성을 위한 ‘조직문화’. 결국 아이디어 구현이라는 팀 비전이 확실한 조직이 성공한다고 생각이 드네요. 이를 위해 CEO나 C급 인재들은 어떤 역량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C레벨은 다양한 역량이 필요합니다. 상상력과 기획력, 추진력, 돌파력이 기본적으로 있어야 하고, 위기 해결 능력, 분쟁 조정 능력,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이 필요합니다. 하나만 꼽기는 어렵습니다.


9. 일련의 과정 속에서 스스로 성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신문사를 다닐 때와 비교한다면 많은 것들이 달라졌습니다. 프로덕트 기획과 개발, 디자인, HR 등 실무적인 능력뿐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와 시각, 태도 등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고 스스로 느끼고 있습니다. 2년이라는 기간은 어찌 보면 짧습니다. 신문사에 그대로 다녔다면 2년이란 시간만으로 무언가 달라지길 기대하긴 어려웠을 것입니다.


[추가] 9-1. 실무적 능력뿐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는 말이 인상적이네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합니다.


단순하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세상만사 모든 일이 인간의 내부에서 작동하는 인지와 내러티브 위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에 비즈니스와 저널리즘이라는 두 축 위에서 스스로의 내러티브를 어떻게 전략적으로 쌓아올릴 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10. 투자자와 스타트업은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거 같은데요. 둘 사이는 무엇이라고 정의 할 수 있을까요?


전적으로 비즈니스적인 관계입니다. 주식 투자가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 파는 것이 목표라면, 스타트업 투자는 발바닥에 사서 정수리에 팔려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의 본질은 ‘로켓 성장’입니다. 스타트업 투자 시장은 ‘큰 거 한 방’을 노리는 투자회사들의 금융적인 이해관계와 투자사 간의 보이지 않는 경쟁 위에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스타트업들이 일반인의 눈으로 보기에 다소 비상식적인, 터무니없이 높은 가치로 평가되는 것입니다. 일종의 ‘인디언 기우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추가] 10-1 ‘인디언 기우제’라는 단어가 인상적이네요. 조금 더 설명 가능할까요?


비가 내릴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인디언처럼, 투자사들이 스타트업들의 기업가치를 자신들이 바라는 수준으로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스타트업신에는 적자를 감수하는 비즈니스 모델임에도 ‘수천억원, 수조원의 미래 가치가 있다’며 투자를 지속적으로 받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물론 미래에 그만한 가치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 이면에는 이미 넣은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한 투자사들의 알량한 엑싯 전략이 존재합니다. 일종의 자기실현적인 예언인 셈입니다.


11. 투자와 지분. 자율적 책임과 그에 따른 공정한 보상. 위험을 감수하는 태도와 엄청난 로켓 성장. 성공 또는 실패. 자본주의의 축약이 스타트업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스타트업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위에서 말했듯 ‘로켓 성장’입니다. 다른 말로는 ‘생산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스타트업의 처음과 끝에 개발자들이 있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IT 기술을 활용해 기존에 없던 압도적인 생산성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스타트업에게 주어진 임무이자 업의 본질입니다. 가령 지난해 한화 28조원에 adobe에 인수된 figma의 전 세계 직원 수는 불과 800명뿐이었습니다. 세계적인 노트앱으로 성장해 10조원 넘는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notion 역시 직원 수가 전 세계 500명쯤 됩니다. 일반 기업의 문법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가 바로 생산성에 있습니다.


12. 마지막으로 향후 삶의 방향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어떤 방향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가실건가요?


기자, 에디터, 데이터엔지니어, 공동창업자, 웹 개발자, 기획자 등 여러 위치에서 배우고 느꼈던 것들을 종합해 개인적으로 세운 목표들을 하나하나 이뤄나갈 생각입니다. 개인과 공동체 모두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스스로를 성장시키고자 합니다.


[추가] 12-1 처음 말씀하신 준비하시는 사업에 대해서도 말씀 가능하면 설명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직 큰 틀에서 구상 중에 있습니다.



스타트업 냉장고에는 늘 맥주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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