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출산에 No라고 말할 때 눈치 없이 혼자 Yes라고 말했다
아기가 생겼다. OMG.
"82년생 김지영"이 서점가에서 장기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날리고 세계적으로 "미투"운동이 몰아치고 있던 그 해. 이런 불공평한 사회에서는 여성에게 결혼이란 항복이고 육아란 무덤이자 후퇴인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글들이 쏟아질 때. 깨인 여성이라면 절대 나의 커리어를 남편과 아이 때문에 희생해서는 안된다는 공감이 널리 널리 퍼져나가는 바로 그 시점에. 누구보다 그 생각에 공감했던 나에게 아기가 생겼다.
아기가 처음 생긴 것을 알았을 때 얼마큼 기뻤냐고 묻는다면, 기쁜 마음은 자손에게 전달할 DNA가 있는 생명체의 본성상 없지 않았으나 그야말로 "없지 않다"였고, 두려움이야말로 저 우주 갤럭시만큼이었다고 하겠다. 단순한 산수만 해보아도 답이 안 나왔다.
너무나 간단한 산수였다. 2명이 벌어서 2명이 쓰는 가계부는 잔재미가 있는 가계부이다. 분기마다 "뮤지컬 관람"을 할 수 있고, 1년에 한 번 (어쩌면 두 번) "4박 5일 오키나와 여행"을 할 수 있으며, 가끔은 "구찌 핸드백"도 지출 내역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그런 가계부이다. 그러나 1명이 벌어서 3명이 쓰는 가계부는 "기저귀"나 "분유", "바운서"나 "유기농 쌀"등이 빼곡히 적히고 나를 위한 지출은 가뭄에 콩 나듯 있을까 말까 할 가계부가 될 것이다.
저녁에 신랑과 한 잔 하며 나누는 소설과 영화, 정치, 인생, 인간의 본성 등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이가 오늘 뒤집었어!" "목을 가누었어" "이유식을 잘 먹었어." 같은 세상 사소하기 짝이 없는 대화로 바뀔 것 아닌가. (그래. 겪어보니 하나도 사소하지 않은 엄마 마음은 이해하겠다. 그러나 여전히 내 새끼는 내 눈에나 보배인 것이다.)
"죽을 때까지 철들지 않고 살다가 죽는 게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해온 사소하고 미천한 인간인 내가 갑자기 "희생"과 "사랑"을 쏟아부어야 하는 자리, 한국인들이 듣기만 해도 눈물을 쏟는다는 그 엄청난 두 글자의 이름 "엄마"의 자리로 가는 특급열차를 타버렸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베개 위에 올라가도 위험하다고 말렸다는 과보호라면 자신 있는 아빠와 서른이 넘어서까지 게장이 먹고 싶다는 한마디에 당장 게장을 담가 광역버스를 타고 서울 집으로 올라오신 엄마 사이의 금지옥엽 막내딸로서, 가족에게 기대는 것이 특기요, 힘든 내색은 반드시 꼭 하고 마는 미천한 천성의 소유자이다. 그런 내가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만드셨다는 존재, 엄마"의 자리로 가진 능력과는 상관없이 특진(?)을 하고 말았으니,
이것은 내가 몇 날 며칠 우울하고 밤에 악몽을 꾸기에 충분한 이유였다.
(계속)
철없이 간지(?) 나게 살아온 인생에 가장 큰 위기를 맞이한 육. 알. 못. 엄마의 솔직한 육아 분투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는 기쁨이라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