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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mart Festival Jan 02. 2019

열심히 산 그대, 출산을 미뤄라?

나 너무 억울해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임신을 깨달은 대한민국 여성들에게 발등에 떨어지는 불과 같은 질문이 있다. "나는 계속 일할 수 있을 것인가?"


나름 전문직이라고 계약서를 쓰고 일하는 나는 과연 재계약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출산휴가도 들어가야 할 것이고 그리고 나면 육아휴직도 필요할 수 있는데. 공무원도 아니고 공사 직원도 아니고 교사*도 아닌 나에게 내가 아기를 낳고 아기가 엄마와 떨어져서 있을 수 있을 만큼 키울 때까지 기다려 줄 고객은 없었다. 이대로 나는 집에서 외벌이에 의존하여 천 원 한 장에 아등바등하며 육아가 나의 전부인 인생이 되겠구나... 임신을 알고 며칠 밤을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마음에 돌덩이를 넣은 기분이 계속되었다.


*공무원, 공사 직원, 교사 이 세 가지 직종을 육신 3종(육아를 할 수 있는 신의 직장 3종)이라 부르고 싶다.



나는 왜 학창 시절에 그렇게 악착같이 공부를 했으며, 첫 직장에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내가 진정으로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했으며, 무엇을 위해 사표를 던지고 대학원에 들어가서 이를 악물고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공부를 했는가. 결국 공무원. 공사 직원. 교사가 아니면 이렇게 집에서 아기를 키우면서 살게 될 것을. 내가 일을 못하게 되는 그런 억울한 운명(?)이라면 왜 나는 고객들에게 굽실대면서 80년대 미스코리아처럼 입 주변에 경련 나게 하는 미소를 장착하고 발에 땀이 나고 손이 저리게 일했는가. 이러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뭉게구름과 같이 커져서 내 일상을 잠식해 갔다. 문제가 있으면 빨리 해결하고 마음 편하게 지내는 게 내 장기였는데 이 문제는 해결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한국의 반만년 역사와 문화와 내 능력과 내 선택과 현재의 제도와 그 모든 것이 얽히고 꼬인 문제로 실마리 조차 없었다.



그렇게 임신 3-4개월이 될 때까지 걱정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은 나머지 나는 내 과거 선택들을 곱씹기 시작했다. 사랑만 쫓아 결혼한 것도 잘한 일인가 싶었다. 내가 일을 하건 하지 않건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화초 며느리가 될 수 있는 기회들을 왜 스스로 걷어찼던가. 어차피 이 망할 놈의 여자의 일생이 육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다는 것을 몰랐던가. 사랑이 밥 먹여주냐. 어른들 말씀이 틀린 게 하나 없구나 하고 무용한 후회를 했다.


어느 날은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닐까 싶기도 했고, 어느 날은 소파에 엎드려 아이같이 엉엉 울었으며. 어느 날은 "내가 키울 테니 걱정 말라"는 남편의 근자감에 얼굴을 때려주고 싶었다.


고민하는 나와 달리 5cm도 안되는 녀석은 속편하게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임신의 기쁨은 남의 이야기였다. 난임으로 고생한다는 친구도 있었지만 그래서 한편으로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라고도 생각해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친구는 육신 3종 종사자로 아기가 태어나면 그 평온하고 평탄한 대학 졸업-취업-결혼-출산-육아-복귀-워킹맘의 스케줄이 딱딱 맞아떨어질 터였다. 내 사정은 달랐다. 나는 프리서고 계약직이며 고객 유지가 중요하다. 일을 하지 않으면 실력도 줄터였다. 감도 떨어질 터였다.


게다가 양가 부모님 모두 서울에서 먼 지방에 사신다. 아기를 보아줄 사람이 곁에 없었다. 그렇다면 베이비시터를 써야 하나 어린이집을 일찍 보내야 하나. 가끔 뉴스에 나오는 어린이 학대 사건들을 보면서 남에게 맡길 수 있을까.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거기에 따라 살아오던 나였는데. 그 무엇도 계획할 수도 확신할 수 도 없는 상황이었다. 방법이 없고 실마리도 없었다.



결국 나는 생각을 그냥 닫았다. 고민하고 걱정해보아야 방법이 없구나. 그렇다면 차라리 스트레스받지 않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렇게 아기 덕분에 나는 난생 처음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지내기 시작했다.



(계속)


철없이 간지(?) 나게 살아온 인생에 가장 큰 위기를 맞이한 육. 알. 못. 엄마의 솔직한 육아 분투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는 기쁨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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