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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트롱 Jul 20. 2017

영화리뷰 <택시운전사> - Unsung Heroes

신작영화리뷰, 무비패스

1.

영화 <택시운전사>는 5.18의 당사자가 아닌 서울에서 내려온 이방인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이방인’ 만섭(송강호)은 택시를 몰아 서울 시내 조그만 방의 월세를 갚고, 어린 딸과 함께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80년대의 아주 평범한 소시민이다. 그를 주인공으로 둔 덕에 영화는 단순히 1980년 5월 18일 이후 광주 내 희생자들의 시선 뿐 아니라, 광주 밖의 평범한 사람들의 광주를 향한 시선이 어떤 것이었는지까지 그려낼 수 있게 됐다. 만섭(광주 밖의 사람들)에게 밖에서 보는 광주는 대학생 데모의 연장선이다. 아프리카, 동남아의 빈곤 국가들과 비교하면 우리 대한민국은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데, 대학생들은 공부하라고 보내놨더니 하루 종일 데모만 한다. 광주 역시 마찬가지다. 현실에 만족하고 열심히 알아서 잘 살면 되는데 공연히 폭도들이 시위를 일으키니 정부가 진압을 하는 것이다. 그는 광주의 황폐한 전경을 보고도 약간의 이상함만 느낄 뿐 ‘이거 세상이 잘못되었구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광주 길거리에서 태운 할머니가 “내 손주가 군인한테 맞아 머리통이 깨졌다”고 한탄해도, “에이, 저도 대한민국 육군 병장 제대 했는데 그럴 리가 있습니까?”라며 웃고 넘긴다. 7~80년대의 대학을 나오지 않은, 대다수 평범한 시민들의 인식이다. 2.

배경을 떼어놓고 보면 영화 전개는 다소 전형적인 면이 있다. 우리가 택시 운전사의 포스터를 보고 ‘이런 내용으로 전개되겠구나’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내용으로 전개된다.

머리 속에 전개가 삭삭 그려지지 않는가? 바로 그 이야기다

큰 줄기는 ‘시대에 만족해 항거할 줄 모르고, 왜 항거해야 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는 평범한 소시민의 영웅적 변신’이라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흐름이다. 서울의 택시운전사 ‘만섭’을 연기하는 송강호 역시 아주 전형적인 송강호식 연기를 펼친다. 만섭은 금전적으로 힘든 삶을 살고 때로는 모욕도 당하지만, 결코 웃음과 재치를 잃지 않는다. 영화 <변호인>의 ‘우석(송강호, 노무현 역)’이 그랬듯 영화 초기의 만섭 역시 세속적이다. 큰 대의나 정의를 따지기보다, 당장 옆의 내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게 무엇보다 최우선의 가치다. 당장 광주에 들어간 이유도 그 어떤 정의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3개월치 월세 10만원을 한 방에 갚기 위해서였지 않은가? 그랬던 그는 본인이 한심하게 보던 ‘데모하는 대학생’이 경찰과 군인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는 것을 보고 점차 심경의 변화가 생긴다. 만섭은 혼자 남겨둔 딸을 걱정하며 광주를 벗어나는 데 성공하지만, 결국 가족에게 곧바로 돌아가기보다 정의와 양심을 위해 다시 광주로 돌아가는 것을 택한다. 무척 전형적인 전개다.

3. 그런데 바로 이 전형적인 전개의 마지막 지점에서부터 만섭은 <변호인>의 ‘우석’과는 다른 조금 특별한 길을 선택한다. 멀찌감치 달아났던 그는 전장으로 복귀를 결심하지만, 투쟁심 갖춘 전사(Warrior)가 되어 돌아오지는 않는다. 보통 이런 류의 ‘무지한 주인공의 각성’ 이야기는 주인공의 영웅화, 혹은 전사화로서 마무리되지만, <택시운전사>의 주인공은 각성 이후에도 아주 보통의 택시 운전사로서 삶을 이어나갈 뿐이다. 심지어 만섭은 30년이 지나 독일인 기자 힌츠페터가 그를 찾을 때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당시 광주의 현실을 세계에 알린 ‘영웅’임에도 영웅으로서의 삶을 선택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는 1980년 5월 이후에도 숨은 영웅, Unsung Hero로서, 서울 시내의 평범한 택시기사로서 조용히 살아갈 뿐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숨은 영웅들은 또 있다. 이 영화의 제목이 <택시운전사>임을 되새겨 보자. 영화 속 택시운전사는 만섭만이 아니다. 힌츠펜터를 공항으로 보내기까지 그를 위해 희생한 수많은 택시운전사들이 있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택시운전사는 만섭이며, 그가 주인공인 영화라 생각했었지만 사실 감독이 생각한 주인공은 만섭 단독 주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주인공은 택시운전사’들’, Unsung Heroes, 그 모두였다.


4.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세상에 알려달라!”던 광주 시민들의 외침은 수 십대의 택시들을 타고 올라올라 결국 세상에 알려졌다. 헌데 지금 대한민국을 보자. 이들의 대규를 담은 취재 영상은 과연 현재 대한민국에까지 제대로 전달되어 졌는가? 전 세계에는 전해졌더라도 정작 아직까지 우리나라 곳곳에 미처 전해지지 못한 듯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37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심지어는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부류까지 생겼다(이는 전두환조차 2017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어?’라고 놀랄 정도의 주장이다). 그런 정도까지 넘어가지는 않더라도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단어에 왠지모를 반감을 가진 이들도 많다. ‘광주사태’로 역사를 배운 세대가 보통 그렇다. 그런 면에서 보면 엄밀한 의미에서 취재 테이프는 아직 공항에 도달하지 못한 것 같다. 테이프는 택시를 타고 여전히 운송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좀더 먼 미래를 향해서. 광주 시민의 희생과 호소, 그리고 언젠가 찾아올 화합과 평화를 싣고.



당시의 위르겐 힌츠펜터







*본 리뷰는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를 통해 관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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