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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트롱 Aug 21. 2017

<더 테이블>-훔쳐듣는 맛

신작영화리뷰, 브런치 무비패스

*스포 있습니다. 스포 피하시려면 1번, 6번 문단만 읽어주세요.




1.

4개의 옴니버스로 구성된 영화 <더 테이블>은 같은 날, 같은 카페의 같은 테이블을 공유하는 4 팀을 각각 아침, 점심, 해질녘, 저녁의 다른 시간에 담아 하나씩 이야기를 풀어낸다. 풀어내는 것은 말 그대로 ‘이야기’이다. 각각의 파트에는 어떤 ‘사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는 이야기 구성의 기본이라고 알려진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라는 전형적 구조도 따르지 않는다. 각각의 커플들은 그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뿐이고, 관객들은 카메라와 스피커를 통해 그들의 대화를 엿보고 엿들을 뿐이다. 


2.

등장인물들의 공통적인 대화 주제는 사랑, 시간, 그리고 변화에 대한 것들이다. 카페의 창가 테이블에 앉는 첫 번째 커플은 왕년의 연인이다. 서로는 인사차 ‘그대로구나’를 교환하지만, 얘기를 나눌수록 서로는 서로에게 예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한국의 대표 배우가 된 여자는 옛날 순수하던 시절의 그를 생각하고 자리에 나왔지만, 오랜만에 본 그는 ‘내가 옛날 톱스타와 사귀었다’가 인생의 자랑인 눈치 없는 찌질남으로 자랐다. 여자를 허영과 뿌듯함의 징표로 대하는 그는 끝까지 눈치를 팔아먹고 ‘또 보자’를 연발하고, 과거의 사랑을 추억하러 나왔던 그녀는 과거의 연인과 그를 변하게 만든 시간에 실망과 혐오를 품은 채 테이블을 떠난다.  


3.

아침의 커플이 과거 순수했던 시절의 사랑을 추억하러 나왔다면, 점심의 커플은 그 자체로 순수한 사랑을 품고 있는 커플이다. 그리고 아침의 커플이 전혀 다른 마음으로 헤어진 결말을 맺은 반면, 점심의 커플은 테이블을 떠나 같은 집을 향해, 같은 방향으로 함께 걸어간다. 그들의 사랑은 현재다. 이들은 현실에 짓눌리기보다 꿈을 찾아 도전을 선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당당히 속을 터놓고 서로 진심을 교환한다. 비록 서로가 함께한 시간을 짧지만 순수하고 진솔한 사랑은 결실을 맺는다. 


4. 

세 번째는 커플이 아니다. 모종의 ‘결혼 사기단’으로 암시되는 중년 여성과 젊은 여성은 ‘한 탕’을 위해 남의 사랑을 가지고 노는 자들이다. 하지만 젊은이는 마침내 돈이 아닌 진짜 사랑을 만났다. 중년은 그런 그녀를 보며 과거 딸을 떠올리고 그녀의 새 삶을 응원한다. 해질녘의 그녀들은 과거는 가슴 속에 묻어두고 새롭게 걸어가려 한다.


5.

저녁의 커플은 아침의 커플과 마찬가지로 왕년의 연인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현재진행형이다. 남자는 현실적인 능력 부족에 여자를 놓아줬고, 여자는 새롭게 부유한 예비 신랑을 만나 약혼했다. 하지만 여자는 여전히 남자가 좋다. 남자가 파혼하라면 지금이라도 반지를 빼고 파혼하겠다 말한다. 여자는 대놓고 ‘바람을 피자’고 하지만 남자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카페를 떠나 거리에 마주보고 서니 남자의 반응이 달라진다. 이번에는 남자가 ‘난 여전히 너와 자는 꿈을 꾼다’며 그녀를 유혹한다. 여자는 ‘알고 있다’면서도 별달리 응답하지 않는다. 차로 데려다 주겠다는 남자에게 여자는 ‘아니, 차에 블랙박스 있어. 그 사람 차거든’이라며 거절한다. 결국 블랙박스가 있었으니 ‘바람을 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셈이다. 남자가 여자를 얻으려면 선택지는 단 하나 뿐이었다. ‘파혼하라’고 말하는 것. 확실한 결심만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무게를 절실히 느끼고 있는 둘은 그런 과감한 선택을 하지는 못한다. 여자는 떠나며 ‘이제 다시 볼 일은 없을거야’라고 말한다. 사랑을 확실히 하지 못할 거라면 확실히 끝내는 게 낫다. 둘은 여전히 사랑하지만 서로를 안지 않는다. 대신 서로의 현실을 향해, 반대 방향으로 헤어져 영원한 이별을 받아들인다. 두 번째 커플과 완벽히 대조되는 커플이다.


6.

영화를 가만히 보다 보면, 마치 우리가 바로 옆에 있지만 주인공들은 인지하지 못하고 저리 중요한 대화를 서슴없이 나누는 것 같다. BGM없이 인물을 근접해서 한 명 한 명 찍는 카메라 연출 방식은 관객으로 하여금 같은 카페에 있는 듯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사실 감독이 의도한 우리 자리도 이미 정해져 있다. 감독은 커플마다 카메라가 한 명의 뒤통수를 조명하는 씬을 꼭 하나씩 넣어놓았다. 우리 자리가 바로 그 뒤통수가 보이는 테이블이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왜, 조용한 카페에 책을 하나 들고 가서 읽으려 하다 보면, 글자는 눈에 안 들어오고 괜히 뒷자리에 앉은 커플이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에 귀가 기울여 질 때가 있지 않나? 아무리 재밌는 소설을 들고 갔다 해도 몰래 엿듣는 남의 대화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없다. <더 테이블>은 그렇게 뒷자리에 앉은 모르는 사람들의 대화를 몰래 엿듣는 영화다. 나처럼 남의 얘기 훔쳐 듣는 일에 흥미가 있으신 분들, <더 테이블>도 흥미 있게 관람하실 수 있을 것이다. 




★★★★(4.0/5.0)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시사회로 관람한 영화입니다.






상영 전 시사회 무대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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