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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트롱 Sep 04. 2017

오리지널 혹성탈출 1,2 편을 보고

명작 돌아보기



1.

혹성탈출 리부트 시리즈의 3편 '종의 전쟁'을 꽤 만족스럽게 관람하고 리부트 시리즈를 다시 정주행 할까 생각하던 차, 이번 리부트가 프리퀄 성격이 있다는 말을 듣고 오리지널 시리즈부터 차근차근 보자 결정했습니다. 일단은 어제 1, 2편을 연달아 보았는데요. 3~5편은 굳이 보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편은 두말할 것 없는 걸작인데 2편이 조금 많이 에러네요. 살짝 기가 빠졌습니다.


2.

1968년에 만들어진 <혹성탈출 1>은 대단한 걸작입니다. 같은 년도에 만들어진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미래를 그리고 있지만, 영화의 완성도와 시대적 충격을 놓고 봤을 때는 거의 동급의 클래스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 와서는 하도 많이 듣고 본 지라 별 이상할 것이 없지만, 사실 소재부터가 대단히 충격적이지요. 원숭이들이 인간을 지배하는 행성이라... 지금도 인간들은 우리와 많이 닮은 원숭이들을 보면 뭔지 모를 두려움과 혐오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당시 관객들은 오죽했을까요? 더군다나 이 원숭이 분장이 1968년의 그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교합니다. 무려 표정 연기가 가능할 정도니까요. 계속 보다 보면 자이라 박사가 왠지 이뻐 보이기까지 합니다.

영화 <혹성탈출1>의 주요 등장 인물들. 왼쪽부터 테일러, 노바, 자이라, 코넬리우스, 루시어스


3.

영화 초반 이들 원숭이들이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짓들을 보면 소름이 돋습니다. 문명을 가진 원숭이들은 말을 못 하는 허약한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인간들의 서식지를 습격해 사냥하고 납치해가죠. 사냥은 그냥 재미를 위해. 그리고 납치는 이들을 연구 대상으로 쓰거나 동물원에 전시하기 위해서입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인간을 사냥하고 그들을 전리품 삼아 기념 촬영을 한다

납치해가며 생긴 상처를 원숭이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치료해가며 우리에 가두고 전시합니다. 그래 놓고 인간을 교육시키겠노라 먹이로 유혹하며 말을 가르치려 하기도 하죠. 그러니까 이 영화는 사실 현실의 인간과 원숭이 간 자리만 바꿨을 뿐인데 이렇게 혁신적인 이야기가 탄생을 한 겁니다.

자, 자... 사탕 줄테니까 '주세요' 해보세요 이 미개한 짐승들아!


4.

냉전의 절정이던 당시 시대상에서 스탠리 큐브릭은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통해 '그럼에도 인류는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믿음을 보였다면, <혹성탈출>의 프랭클린 샤프너는 이 끝이 보이지 않는 소리 없는 전쟁의 끝이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로 치닫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보입니다. 영화는 내내 어두운 분위기를 유지하고 인간들은 끝까지 미개한 짐승의 자리를 유지하지요. 유명한 결말의 반전은 냉전이 도달할 디스토피아적 미래의 끝을 단 하나의 씬으로 상징적으로 그려낸 영화사 통틀어 가장 압도적인 순간 중 하나입니다. 이 장면은 그 자체로 굉장한 스포일러이니 사진은 올려두지 않을게요(사실 1968년 영화에 스포일러 방지를 하는 것도 의미 없지만ㅎㅎ).


5. 

사실 이 영화는 일종의 거대한 풍자극이기도 한 지라, 아무래도 현실을 오마쥬한 것들이 많이 숨어 있습니다. 당장 위에 그린 '짐승 사냥', '사육'등의 일반적인 것들부터, 신을 모시는 관습이라든지, 과학과 종교를 혼동한다든지 하는 과거 인간의 역사 그 자체를 그대로 원숭이와 역할만 바꿔서 때려 박았죠. 그래서 영화가 더 흡입력이 있으면서도, 한 편으론 스스로가 창피해지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영화 속 '테일러(찰턴 헤스턴)'의 재판 과정은 '원숭이 재판'으로 유명한 1925년 미국의 '스코프스 재판'을 그대로 본뜬 것입니다. 재판 과정에 판사 역할을 맡은 세 오랑우탄들이 '아몰랑'을 시전 하며 일명 '세 원숭이 자세'를 취하는데, 그것도 참 틈새 개그로 재미지더군요. 그런데 1968년 미국에 세 원숭이 자세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었을지, 그래서 저걸 얼마나 눈치챘을지는 모르겠네요.

사악한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


6.

<혹성탈출 리부트> 시리즈를 모두 재밌게 보셨다면 최소한 오리지널 1, 2편 정도는 봐도 좋을 듯합니다. 오리지널 시리즈들에서 가져온 오마쥬들이 많거든요. 몇 가지만 말씀드리면, 리부트 시리즈 3편 '종의 전쟁'에서 등장하는 '노바'는 오리지널 1,2 편의 히로인 '노바'의 오마쥬이죠. 리부트 시리즈의 오랑우탄 '모리스'의 이름은 오리지널 1,2 편에 등장하는 오랑우탄 장관 '닥터 제이우스'의 배우 이름을 따온 것입니다. 제이우스를 연기한 배우 이름이 '모리스 에반스'거든요. '종의 전쟁'의 대령의 부하 군대들이 팔에 새긴 문신 '알파 & 오메가'는 오리지널 2편에 등장하는 핵무기의 이름입니다. '종의 전쟁'에서 시저가 묶이는 X자 형틀 역시 오리지널 1의 금지구역 허수아비를 가져온 것이죠.

퀴즈 : 왜 이곳은 금지구역이 되었을까요? 정답은 영화 결말을 보고 찬찬히 생각해 보시면 나옵니다. 2편을 봐도 힌트가 있지요

이밖에도 오리지널 1편에서 원숭이가 우리에 갇힌 인간에게 물을 쏘는 장면을 리부트 '진화의 시작'에서 정반대로 묘사한 것이라든지, 혹은 몇몇 장면의 대사를 똑같이 가져왔다든지 하는 것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3~5편까지 확장시키면 더욱 많아지죠. 이렇게 오리지널 시리즈를 보고 다시 리부트 시리즈를 정주행 하면 군데군데서 찾을 수 있는 '아는 사람만 아는' 틈새 재미들이 많이 숨어있는 셈입니다. 


7.

하다 보니 1편만 이야기하고 2편 '지하 도시의 음모'는 거의 다루지 않았는데요. 영화 자체가 별로입니다... 초반부에는 조금 흥미로웠는데 갑자기 초능력이 나오고 너무 인간 이야기가 많아지고 하면서 내용이 산으로 갑니다. 결말의 허망함은 가차 없이 별점 0.5개를 날려버리는데 크게 일조를 했지요. 결론적으로 1편과 2편을 단순히 별점만으로 평가하라 그런다면 제 평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혹성탈출 1> - ★★★★☆(4.5/5)

<혹성탈출 2> - ★★(2/5)











p.s)<혹성탈출>의 원제는 'Planet of the Apes', '유인원들의 행성'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스포 방지를 위해서인지 제목을 혹성탈출이라 따왔고, 때문에 3편의 제목을 지을 때 원제와는 전혀 다른 제목을 짓게 됐습니다. 왜냐하면 3편의 영어 제목이 'Escape from the planet of the Apes', 즉 '혹성탈출'이었기 때문에요. 우리나라에서 개봉할 때는 이 제목이 '제3의 인류' 가 되었죠;;


p.s2) 오리지널 시리즈 1, 2의 주인공 '테일러' 역을 맡은 '찰톤 헤스턴'은 영화 '벤허'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합니다. 리부트 시리즈 3편 '종의 전쟁'에서 모리스가 노바에게 "노바"라는 이름을 말해주는 장면의 목소리가 찰톤 헤스턴의 당시 영화에서의 목소리를 리마스터링 한 것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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