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패스, 신작 영화 리뷰
1.
1979년 4월 4일 생인 히스 레저는 2008년 1월 22일, 우리 나이 30세(만 28세)에 죽었다. 평생의 필모그래피가 엄청났느냐 하면, 솔직히 그렇지는 않다. 생전에는 2005년 퀴어 영화 <브로크 백 마운틴>으로 한 번 평단의 주목을 받은 게 전부다. 다만 특이한 점은 2008년 사후 개봉한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그가 연기한 '조커' 캐릭터가 그야말로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켰고, 그 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는 것이다.
2.
사실상 유작이 된(이후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 극장>을 찍긴 했지만 촬영 중에 사망했으므로 온전한 유작은 아니다) 영화 <다크 나이트>는 '시대의 걸작'이라는 엄청난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다크 나이트>가 이런 높은 평가를 받게 된 데에는 사실상 영화의 주인공인 '조커'를 연기한 히스 레저의 공이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란만큼이나 컸다. 이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 정도로 히스 레저의 조커 연기는 압도적이었다.
3.
<다크 나이트>와 조커 이전의 히스 레저는 성장이 기대되는 헐리우드의 유망한 남자 배우였을 뿐, 특별히 주목 받는 존재는 아니었다. 히스 레저가 이렇게 전기 영화로까지 따로 조명될 정도로 추앙받게 된 것은 순전히 영화 <다크 나이트>와 그 캐릭터 '조커'를 최고로 잘 연기한 덕택이라 봐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하지만 물론,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가 조커를 남긴 바로 그 해 비명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심지어 조커는 얼굴부터 복장, 행동에 이르기까지 온 몸으로 광기를 표현하는 캐릭터였지 않은가? 최고의 영화의 최고의 미치광이 캐릭터를 최고로 잘 연기하고 세상을 떠난, 그 때까지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던 만 28세의 젊고 잘생긴 금발 백인 남자 배우. 스토리 라인을 잡기에 더할 나위 없는 조건들이다.
4.
그래서 이 <아이 앰 히스 레저>라는 영화가 나온 까닭은 그가 태어나서부터 쭉 지속해온 일상적 삶의 궤적이나 행동 양식이 너무나 개성 넘쳐서가 아니다.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식이 아니라, 극적이고 예술적인 결말에서부터 내려 오는 연역적 구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전기 다큐멘터리가 다 그렇지 않느냐 반문할 수 있겠지만, 히스 레저는 '전기 영화'가 만들어지는 인물 치고는 커리어가 하잘 것 없지 않은가? 오로지 충격적인 결말 하나 뿐이다. 그래서 영화는 히스 레저가 어떻게 해서 그런 특별한 엔딩을 맞게 되었는지를 그의 삶 전체를 파헤쳐 분석하려 한다. 짧은 삶의 필름을 쭉 펼쳐 놓고 비범함만을 구석구석에서 찾아내어 '자, 이래서 히스 레저는 이렇게나 특별한 배우가 된 것입니다 짜잔!' 하는 식으로 전시하는 것이다.
5.
다큐멘터리 영화 <아이 앰 히스 레저>가 조밀하게 파고 들어 보여주는 히스 레저라는 인물은 결코 평범하지 않아 보인다. 그는 자는 시간을 아껴서까지 활동하길 좋아하며,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듯 언제나 바쁘게 움직인다. 연기를 잘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창작 활동에도 조예가 깊다. 그를 기억하는 주변 사람들이 그를 두고 '예측할 수 없는 녀석이었다'며 다시 생각해도 기가 막힌다는 듯한 표정으로 웃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 역시도 '아, 히스 레저는 범인의 수준을 넘어 대단히 비범한 특성을 갖춘 인물임에 틀림없었구나' 라며, 그가 업적을 이룬 비밀을 알게 된 양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러고는 '저렇게 특이한 인간이니 조커 같은 명연기도 나올 수 있었겠지'라며, 왠지 모르게 눈에 밟히는 자신의 평범함이 괘씸해지기에 이르는 것이다.
6.
그런데 사실 이렇게 한 명의 삶을 쭉 파헤치고 들면 누구의 삶인들 특별하지 않을까?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개성이 있고 고유한 살아온 방식이 있다. 우리는 히스 레저의 전체 삶을 파헤쳐 있는 자료를 전부 모으고, 비명에 간 그를 그리는 주변인들의 인터뷰를 담은 이 다큐멘터리를 보며 '아 역시 히스 레저는 특별했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내 삶이나 네 삶도 이렇게 한 번 날 잡고 쭉 돌아보면 의외로 썩 평범하지만은 않았을 수도 있거든.
그러니까, 영화에 대한 감상은 대충 이 정도로 접고 오랜만에 내 삶의 히스토리나 한 번 슬쩍 돌아 보자는 소리다. What about you? 쟤는 히스 레저인데 너는, 그리고 나는 누구냐고.
★★★(3.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