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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트롱 Sep 15. 2017

소설 습작 <청새치와 바다>

처음 써본 소설, 단편

*학교 수업 과제를 기회로 처음 써본 소설.






1.

 그는 멕시코만 연안을 헤엄치고 있는 거대한 청새치였다. 청새치는 벌써 84일째 변변찮은 먹이를 먹지 못한 채였다.

 ‘큰일이군’

 청새치는 튼튼한 꼬리지느러미를 힘차게 흔들며 생각했다.

 ‘이대로 가다간 굶어서 저 깊은 바다 아래로 가라앉고 말겠어.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을까?’

 혹시나 정어리떼가 지나가지 않을까 사방을 주시하는 일을 잊지 않으면서 청새치는 유년의 자신을 회상했다. 어릴 적청새치는 동네 또래 친구들에 비해 유독 몸이 컸다. 청새치 족(族)의 자랑인 긴 침 모양의 주둥이는 남들보다 한결 더 날카롭고 길어서 어른 청새치들로부터 잘생겼다는 말을 숱하게들었다. 뿐만 아니라 머리도 명석해서, 머리 뒤 쪽으로 솟구친등 지느러미와 꼬리지느러미를 사용하는 방법을 또래보다 훨씬 일찍 익혀 부모를 흐뭇하게 했다.

 하지만 청새치의 특별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청새치들의 성장이 본격화되는 시기인 3살 때부터는 그만큼 덩치가 큰 친구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고, 5살에이르자 그는 몸길이 4.3미터, 몸무게 454kg으로 평균보다 약간 나은 수준에 불과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그에게 꼬리지느러미는 여전히 자랑삼을만한 것이어서, 나이가 들어서도 친구들과 헤엄치기 시합을 하면 튼튼한 꼬리지느러미에서 나오는 추진력 덕에 1등을 도맡아 하곤 했으나, 사실 그때까지 그와 헤엄치기 시합이나 하는 청새치들이 그리 대단한 어물(魚物)들은 아니었을 터였다. 그러나 6살로드디어 성년이 된 이후부터는 함께 헤엄을 치며 놀던 친구들조차 하나 둘 부모로부터 독립하며 다른 바다로 떠나가기 시작했고, 우리의 주인공 청새치는 뭔지 모를 조급함을 느끼며 1년간 열심히 독립을 준비하다, 7살이 되어서야 드디어 첫 항해를 시작한 것이었다.

 처음으로 혼자 나선 항해는 결코 쉽지 않았다. 84일이 되는 오늘까지 먹은 것이라곤 동물성 플랑크톤과 새우, 이름 모를 조그만 잡어들 뿐이었다. 언젠가 꼭 한 번 고등어 떼를 발견해 포식을 할 기회를 잡았으나, 아래에서 달려온 범고래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운 고향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고향을 떠나 올 당시에는 저 넓은 바다 곳곳을 헤엄치며 고등어와 오징어, 꽁치 등 이름값있는 생선들로 배를 가득 채우고, 그들의 뼈를 전리품 삼아 한층 비대해진 몸과 윤기 흐르는 비늘을 자랑하며 금의환향하겠노라 다짐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음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요즈음이었다.


2.

 그때 청새치의 눈에 거대한 정어리 한 마리가 들어왔다. 청새치는 그 7년의 긴 삶 동안 그렇게도 크고 통통한 정어리를 본 적이 없었다. 정어리는 본래 무리로 뭉쳐 다니기 마련인지라 잠시 의심을 품었지만 이내 눈 앞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분명 무리에서 도태된 정어리 이리라. 마음의 결단을 내린 청새치는 자랑스러운 꼬리지느러미를 흔들어 속도를 높여서는 고독하게 홀로 헤엄치고 있는 정어리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 강하게 정어리의 하얀 아랫배를 물었다. 수 십일 만에 맛보는 정어리 특유의 고소한 기름 맛이 입 안에 흘러왔다. 오랜만의 특등식을 음미하려 뱃살을 뜯어내려는 순간, 청새치는 입천장에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아프게 걸려 오는 감각을 느꼈다. 깜짝 놀란 청새치는 황급히 갈고리를 뱉어내려 했으나, 몸부림칠수록 그 날카로운 쇳덩이는 더욱 깊숙이 박혀올 뿐이었다. 청새치는 자신이 그 말로만 듣던 흉포한 ‘인간’을 만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청새치는 84일 전 집에서 출발을 준비하던 때 들었던 아버지의 말을 떠올렸다. 

 "바다에 험한 것이 많다, 많다 하지만 결국 가장 위험한 것은 ‘인간’이란다. 그것들은 보이지도 않지만 늘 바다 위에 떠서 미끼로 우리를 유혹하고 바다에서 꺼내 올려 버리지. 인간과 싸움이 붙었을 때는 달아날 수도 없고, 달아나서도 안 된단다.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야. 포기하고 바다 밖으로 끌려 올려지거나, 아니면 끝까지 싸워보거나"

 청새치는 이 작은 낚싯배와 싸워 보기로 했다.


3.

 입천장에 낚싯바늘이 걸린 지도 이틀이 되었다. 청새치는 배를 끌고 육지 반대 방향의 깊은 바다를 향해 있는 힘껏 헤엄치고 있었다. 그는 지난 이틀 동안의 사투에서 1년 간독 립을 준비하며 공부했던 각종 낚시꾼 상대 기술을 모조리 사용해 보았다. 조류가 흐르는 방향을 따라 뜀뛰듯 움직이며 낚싯대를 당겨보기도 했고, 상하로 움직여 놓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몸으로 배를 밀어 보기도 했고, 자신이 얼마나 큰 지를 보여주기 위해 물 위로 뛰어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낚싯줄을 던진 인간도 보통이 아니었다. 이 노련한 인간 어부는 그 모든 공격을 막아내고 여전히 낚싯대를 놓지 않고 있었다. 어부 역시 청새치를 낚아 올리기 위해 출항 전부터 숱한 훈련을 거친 듯했다. 가지고 있는 무기를 모두 사용해 본 뒤, 청새치는 마지막 수단으로 장기전을 택했다. 어부를 끌고 최대한 깊은 바다로 헤엄쳐 나가기로 했던 것이다. 

 배를 끌고 헤엄을 치던 청새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저 살이 잘 오른 정어리 한 마리를 먹고 싶었을 뿐인데 그게 이리도 힘들 줄은 직접 바다로 나서기 전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힘들다고 헤엄을 멈추고 끌려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끌려가더라도 살아서 항복할 생각은 없었다. 며칠간 아무것도 먹지 못해 몸은 삐쩍 마르고 비늘은 뜯겨 나갔지만, 있는 힘을 다해 부딪혀 보자는 생각으로 청새치는 열심히 꼬리지느러미를 흔들었다. 

 몇 밤이 지났을까, 마침내 낚싯줄이 끊겼다. 더 이상은 스스로가 위험할 정도로 육지에서 멀리 떨어지게 될 것이라 생각한 어부가 줄을 끊은 것이다. 며칠간 자신을 억압하던 줄이 끊겨 나가자, 청새치는 전에 느껴보지 못한 자유와 함께 빠른 속도로 앞을 향해 헤엄쳐 나갔다. 충분한 거리를 벌렸다는 생각에 뒤를 돌아보자, 멀찍이서 조그만 낚싯배가파도를 따라 가만히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다. 어부는 아무런 수확도 얻지 못한 채 보이지도 않는 육지를 찾아 새로이 힘든 여정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청새치는 며칠 간의 경쟁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4.

 며칠이 지나 청새치는고향 동네에 도착했다. 그 무렵의 청새치는 워낙 마르고 온 몸에 상처가 가득해서, 오랜 세월 그를 봐온 20대 후반의 노인들조차 처음엔 그가 누구인지알아차리지 못했을 정도였다. 청새치는 아무 말도 않고 조용히 자기 보금자리를 찾아 들어가 몸을 뉘었다. 그리고 깊은 잠에 빠졌다. 

청새치가 도착하고 얼마 있지 않아 그가 낚시 바늘에 걸린 채로 인간의 배를 끌고 저항하는 모습을 보았다는 목격자들이 속속 도착했다. 그들은 청새치가 끌고 온 배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마침내 낚싯줄이 끊기던 순간이 얼마나 대단했는지에 대해 마치 본인들의 경험인 양 자랑스레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정말 엄청나게 큰 배였어요. 아마 인간 수 십 명이 타고 있었을 걸?”

“굉장한 싸움이었을 거예요. 결국 정어리도, 고등어도 얻지는 못했지만, 녀석은 정말 위대한 싸움을 한 거예요.”

 동네의 청새치들은 한데 모여 가만히 깊은 잠을 자고 있는 청새치를 바라보았다. 청새치에게 밖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청새치는 꿈을 꾸고 있었다. 아주 어릴 적, 친구들과 헤엄 시합을 하던 때의 꿈을.








p.s) 많이들 느끼셨겠지만 소설 <노인과 바다>를 살짝 뒤집은 것입니다. 문장, 장면 등 유사한 부분이 많으니, 소설 <노인과 바다>를 다시 보시면 그런 재미를 느끼실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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