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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트롱 Jul 29. 2018

나는 패배에 눈물을 흘릴 정도로 치열했던 적이 있었나

UFC 조제 알도의 오랜만의 승리 경기를 보고

브런치에서는 처음으로 UFC 이야기를 적습니다. 오늘 조제 알도라는 선수가 제레미 스티븐스라는 선수를 1라운드에 KO로 이겼거든요. 그다지 알도의 팬은 아니었습니다만, 막상 그가 승리하니 짠해지기도 하고 괜히 행복하기도 하고 참 오묘한 기분이 됐습니다.

2013년 조제 알도(좌)vs정찬성(우) / 출처: bloody elbow

알도는 2015년 12월 코너 맥그리거에게 13초만의 충격적인 KO 패를 당하기 전까지, 무려 10년간이나 페더급 최정상에 군림하던 '폭군'입니다. 2013년에는 우리나라의 '코리안 좀비' 정찬성 선수를 상대로 4라운드에 TKO 승리를 거두기도 했죠. 이 경기는 지금까지도 한국인 유일의 UFC 타이틀전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알도는 초신성 맥스 할로웨이에게 두 차례나 연속으로 KO를 당하며 타이틀을 잃고 점차 시대에 밀려 내려오고 있는 중에 있습니다.


반면 제레미 스티븐스는 올해 1월 최두호 선수를 KO시킨 것을 포함해 3연승을 달리고 있던 기세 좋은 베테랑입니다. 40전을 넘게 치룬 경험, 체급 내 최고 수준의 돌맷집에 더불어 펀치력도 체급 내 최고 수준으로 강력합니다. 아마도 전성기 시절이라면 알도가 여유있게 스티븐스를 요리했을 테지만, 최근 분위기대로라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란 평이 많았습니다.

최두호(좌)에게 펀치를 먹이고 있는 제레미 스티븐스(우) 무시무시한 선수임에는 틀림없다 / 출처: Sherdog

그런데 오늘, 조제 알도가 저 ‘돌골렘’ 제레미 스티븐스를 1라운드에 피니쉬 시켜버린 것입니다. 정말 ‘클래스’란 게 있나 봅니다. 괜히 10년간 무패로 체급을 지배했던 게 아니죠... 알도가 상대를 피니쉬 시킨 건 2013년 8월 정찬성을 4라운드 TKO로 잡은 이후 5년만의 일입니다. 펀치를 세게 치고 펀칭 스피드도 매우 빠른 데 비해 피니쉬율이 별로 좋지 않은 알도인데, 신기하게도 페더급에서 맷집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두 명을 KO로 잡아버렸네요.

경기를 끝낸 바디샷

제레미 스티븐스는 2012년 이브스 에드워즈에게 당한 1라운드 실신 KO패 이후 6년만의 KO패입니다. 커리어 통산 2번째이고 페더급에서는 처음입니다. 지난 컵 스완슨과의 경기에서도 바디에 약점을 보였었는데, ‘진짜’를 만나서는 버텨내질 못하네요. 대기만성형으로 43전 만에 타이틀샷 직전까지 올라왔지만 결국 여기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사실 멜렌데즈, 최두호, 조쉬 에멧을 압도하거나 피니쉬시키며 3연승을 달리긴 했지만, 위 선수들은 조금 단순한 힘대힘 스타일로 제레미가 상대하기 좋은 타입이었죠. 멜렌데즈는 끝물에 있는 선수였고요. 다만 경기를 거듭하며 낮은 레그킥, 스위칭 스탠스 등 발전된 모습들을 보이기도 했는데 이번 경기에서는 그런 변화된 장점들을 잘 활용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끝나고 보니까 제레미가 조금 얼었던 것 같기도 해요. 10년간 압도적인 챔프였던 알도의 아우라가 동시대를 보낸 파이터들에게는 지금까지도 여진이 남아있나 봅니다.

경기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해봐야겠습니다. 알도가 제레미 스티븐스를 피니쉬시키며 아주 인상적인 결과를 만들긴 했지만, 사실 경기력 자체만 놓고 봤을 때 알도가 예전과 같은지는 의문입니다. 일단 너무 느려졌습니다. 옛날 같았으면 스티븐스 압박 정도는 손쉽게 아웃파이팅 했을 텐데, 이번 경기에서는 발이 잡혀서 케이지에 몰려 난타전을 펼치기도 했죠. 스탭만 느려진게 아닙니다. 펀칭 스피드도 눈에 띄게 느려졌습니다. 알도 하면 떠오르는 난타전 상황에서 우다다 몰아치는 훅 연타가 이렇게 느려 보이는 건 처음이었네요.  할로웨이 1, 2차전을 하며 데미지를 너무 많이 받은 느낌입니다. 신체 능력 자체가 확연히 떨어졌습니다. 스티븐스가 맞아보니 생각보다 펀치가 무거웠는지 압박을 지속하지 못한 탓에 알도의 스피드 저하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적었습니다만, 분명히 여러모로 운동 신경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파이터로서 알도의 미래가 썩 밝아보이지는 않습니다. 알도는 타고난 신체 능력에 의존하는 플레이를 많이 하는데(이 짐승같은 신체 능력에 경기 운영 능력까지 합쳐져 9차 방어라는 금자탑을 쌓은 것이죠), 앞으로 경기를 치뤄나갈 수록 자기가 생각하는 경기를 하지 못하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물론 기본기가 워낙 탄탄해 여전히 위빙 후 카운터같은 시그니쳐 동작들이 되긴 하지만, 운동 신경이 떨어져서 예전처럼 완벽한 동작들을 보여주진 못할 겁니다. 오늘도 그랬고요.

마무리 파운딩... / 출처: MMA Fighting

어찌됐건 알도는 이번 승리로 UFC/WEC 페더급 통산 17승을 기록, 최다승 기록을 더욱 공고히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이 부문 2위는 컵 스완슨(15승), 3위는 현 챔피언 맥스 할로웨이(14승)입니다. 마찬가지로 UFC/WEC 페더급 통산 최다 피니쉬 기록에 있어서도 10승으로 2위 맥스 할로웨이(9승)를 누르고 단독 선두에 올랐습니다.

알도는 이미 앞으로 3경기(UFC 계약 잔여 경기 수) 후 은퇴할 것이라고 공표를 한 상태죠. 3경기 후 은퇴하겠다는 이야기는 본인이 정상에 다시 서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그럼에도 다시 한 번 타이틀을 차지한 후 은퇴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알도의 정상을 향한 열망은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몇몇 안티들은 알도가 질 때마다 눈물을 흘린다고 ‘울도’라며 조롱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눈물이 알도의 위대함을 역설합니다. 경기를 패배하면 눈물이 터져나올 정도로 화가 나고 자존심이 상한다는 거죠. 애초에 패배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패배를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겁니다. 그래서 알도가 정상에 그렇게 오랫동안 서 있을 수 있었던 것이고요.

2015년 코너 맥그리거에게 패한 직후 서럽게 울었던 알도 / 출처: mma.uno
오늘은 승리의 눈물 / 출처: MMA Fighting

삶을 살다 보면 범인들은 결국 패배에 익숙해지게 됩니다. 지더라도 ‘이 정도면 잘했다’며 자위를 하거나, ‘역시 안되는구나’라며 포기를 하는 데 익숙해지게 되죠. 그래서 저는 알도의 눈물을 볼 때마다 더욱 그를 존경하게 됩니다. 나는 저렇게 치열하게 살고 있는가, 또 나는 한 번의 패배에 서럽게 울음을 터뜨릴 수 있을 정도로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 왔는가를 돌아 보면서 말이죠.

알도는 위대한 파이터이고 MMA 역사 GOAT 후보 중 하나임에 분명합니다. 잔여 3경기, 언제나 최정상에서 싸울 선수이기에 결코 쉽지 않은 경기들이 될 겁니다. 기량은 분명히 하락세에 접어들었고요. 타이틀을 다시 차지하기는 많이 힘이 들테고, 승패를 반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알도가 이기든 지든, 그 눈물을 잃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기면 옥타곤을 뛰쳐나갈 정도로 진심으로 기뻐하고, 지면 또 눈물을 펑펑 쏟아줬으면 좋겠습니다. 눈물은 아무리 현실이 힘들더라도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믿음을 잃지 않았다는 증거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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