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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트롱 Feb 26. 2019

나는 왜 스타벅스를 찾는가?

카페는 음악이 중요하다

바르셀로나 어딘가에서 발견한 스타벅스. 이 때는 굳이 스타벅스 찾아다니진 않았었는데...

나는 이른바 ‘카공족’이다. 책을 읽고 싶거나 글을 쓸 일이 있을 때마다 종종 카페를 찾는다. 이상하게 카페에선 집중이 잘 되는 편이다. 카공족 중에서도 나는 일종의 카페 유목민이다. '가장 자주' 찾는 카페는 있어도 '이 곳만 간다' 하는 카페는 딱히 만들지 않아 왔다. 여기저기 다양한 카페를 찾아 유랑하다가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면 즉흥적으로 들어간다. '들어가 봐야겠다' 생각이 드는 카페는 어떤 유형일까? 딱히 정해놓은 기준은 없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널찍한 유리창 사이로 보이는 내부 인테리어, 붐비는 정도, 카페 이름의 센스 정도, 간판 디자인 정도가 카페를 선택하는 데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그 날 찾은 카페 역시 겉보기에는 이러한 기준들에 부합했다.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맛도 있었다. 쌉쌀하면서 뒷맛은 고소한, 딱 내 취향의 원두를 사용하는 집이었다. 사람도 많지 않았다. 흐뭇한 마음으로 가지고 온 책을 폈다. 그런데 함정이 있었다. 음악이, 심각하게 구렸다. 쿵짝쿵짝 강렬한 비트의 케이팝과 구슬픈 정통 발라드가 번갈아가며 재생됐다. 블랙핑크와 레드벨벳이 방방 뛰다가 허각, 정승환이 나와 울기를 반복했다. 도저히 엉덩이를 오래 붙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커피를 빠르게 마셔버리고 책을 덮고 카페를 나섰다. 가게 문을 열고 나서며 '다시는 여기를 다시 찾는 일은 없겠다'라고 생각했다. 모든 부분에서 지극히 만족스러운 카페였다. 단지 카페 주인장의 음악 취향, 딱 하나가 심각하게 아쉬웠을 뿐이다.

뜬금없지만 바르셀로나의 꽤 유명한 초콜릿 매장에서 마셨던 커피

이렇듯 카페에서 음악은 생각보다 매우 중요한 유인이다. 아무리 인테리어가 예쁘고 커피 맛이 좋아봐야 음악이 구리면 단골을 만들기 어렵다. 특히 케이팝은 절대 금물이다. 그 쿵짝거리는 빠른 비트를 듣고 있으면 독서도 공부도 대화도, 아무것도 제대로 집중이 되지 않는다. 이는 카페 체험 만족도를 심각하게 떨어트림은 물론, 심지어 '달갑지 않은 경험의 장소'라는 최악의 인식을 만들어 재방문율을 현저히 떨어트릴 수 있다. 물론 커피 한 잔 주문하고 1시간 이상 앉아 있는 그 자체가 민폐 아니냐는 시선도 존재한다. 이런 '민폐' 고객들을 쫓아내고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빠르고 경쾌한 비트의 음악이 분명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손님이 꼭 하루 방문하고 말 것도 아니지 않은가. 괜히 회전율 높이겠다고 이상한 음악 틀다가, 앞으로 꾸준히 가게를 찾아 줄 단골들을 놓치게 되면 장기적으로는 손해를 보게 된다. 그리고 어차피 요즘 카페를 찾는 고객들은 대부분 최소 1시간에서 2시간 정도는 앉아 있는다. 주인 입장에서는 최대한 받아들여야지 어쩔 수 없는 일이란 말이다.

과거 서독 수도이기도 했던 독일 ‘본(Bonn)’에 있는 스타벅스

최근에는 드디어 '단골 카페'가 생겼다. 한 달 정도 전에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스타벅스다. 사실상 여기에 정착을 했다. 해당 매장은 집 근처 걸어서 7분 정도 거리에 있다. 깔끔하고 널찍하지만 사람은 (스타벅스 치고) 별로 붐비지 않는 괜찮은 매장이다. 가게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스타벅스 카드를 만들고 자동 충전까지 등록해 놨다.

우리나라 스타벅스

이런저런 카페들을 유랑하던 내가 하필이면 '프랜차이즈 카페의 아이콘' 스타벅스에 내려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적당히 걸어가기 좋은 거리, 깔끔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인테리어, 적당한 산만함과 조용함의 조화, 스타벅스 카드 생성으로 인한 셀프 노예화 등의 이유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스타벅스 특유의 따뜻한 나무색 인테리어와 무척 잘 어울리는 매장 음악 역시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다고 본다. 스타벅스에서 재생되는 음악은 뭐랄까, 공감각적 표현을 살리면 갈색 갈색 하다고 할까? 나무나무하다고 할까, 그런 느낌이다. 재즈를 예로 들면 마치 스타벅스의 아메리카노처럼, 맛이 너무 진하지는 않으면서 부드러운 황토색 거품이 몽실 거리는 그런 종류의 재즈다.


그거 아시는지? 스타벅스는 전 세계 매장에서 트는 음악이 같다고 한다. 미국 본사에 음악 선곡 팀을 따로 두고 있다. 이 팀의 업무는 최대한 스타벅스 이미지와 잘 어우러지면서, 동시에 그렇게 널리 알려지지는 못한 좋은 음악을 월별, 혹은 2주 정도 간격을 두고 꾸준히 발굴해내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음악팀이 친구에게 추천하고 싶은 색다른 음악’, ‘흔히 들을 수 없는 음악’, ‘일요일 아침 신문을 읽으면서 들으면 좋을 것 같은 음악’ 같은 식의 기준을 두고 정한다고. 이 엄격한 선발 절차를 거친 뒤 최종적으로 스트리밍 저작권 문제까지 해결한 음악만 스타벅스에 ‘간택’된다. 추려진 음악들은 미국 1위 음악 스트리밍 업체인 스포티파이(Spotify)에 ‘스타벅스 음악 리스트’로 공개되고 매장에서도 스포티파이를 이용해 스트리밍 한다. 우리나라처럼 스포티파이가 아직 진출하지 않은 국가를 위해서는 CD를 따로 만들어 매장마다 배포한다고 한다.

스포티파이에 올라오는 스타벅스 앨범 / 출처 조선비즈

내부 인테리어 같은 시각적 요소가 공간과 브랜드에 대한 기초적인 인상을 형성시킨다면, 은은하게 매장에 깔리는 음악은 공간을 보완하며 시각을 ‘체험’으로 확장시켜 인상을 완성한다. 어떤 매장을 가든 비슷한 분위기의 인테리어(스타벅스 매장 인테리어는 전체적으로 아주 비슷한 분위기를 만들면서도 세부적으로는 각기 다르다. 아주 묘하다)와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확신은 스타벅스라는 브랜드 자체를 깊이 신뢰하게 만든다. 어딜 가나 같은 '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맥도널드나 버거킹 같은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를 찾는 이유와는 조금 다르다.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를 신뢰하는 이유가 '세계 어디에서든 동일한 맛'에 있다면, 스타벅스를 찾는 이유는 맛보다는 '동일한 체험'에 있다. 세계 어디에 위치한 스타벅스를 찾더라도 '스타벅스니까' 같은 종류의 ‘체험’이 보장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타벅스를 찾는다.

유튜브를 찾아보면 스타벅스 매장 음악 리스트를 들을 수 있다. 계정주는 후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는 듯

나 역시 조그만 경험이 스타벅스라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 향상으로 이어진 지 오래다. 처음에는 내 집 근처 새로 생긴 특정 스타벅스 매장이 좋아서 찾았지만, 이제는 다른 지역에 가서도 카페를 갈 때는 먼저 스타벅스부터 찾게 됐다. 브랜드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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