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트롱 Mar 11. 2019

취준생 고민 필사록 - 내 철 없는 취업관

삶을 ‘살기 위해’ 살고 싶지는 않다. 허나 그렇게 될까, 그게 두렵다


<두려움>


이건 취업을 준비하며 생겨온 내 고민들을 길고 지난하게 풀이한 필사록이다. 주루룩 쓴 글이라 아마 비문도 많을 거고 그리 논리적이지도 못할 수도 있음. 하지만 감정이 논리를 눌러 진득하고 둔탁해진 글이 어쩔 땐 오히려 솔직해서 더욱 맛있는 글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이 취준생은 어떤 고민을 하고 살고 있는지 궁금한 다른 취준생 분들, 그 외 시간이 남는 분들 모두 그냥 한 번 읽어 보셔도 될 듯 함.


나는 비상경 인문계열을 졸업한 한국 나이 29세(만 27세) 남자 취준생이다. 누구에게든 동정을 자아낼 아주 모자란 신분과 극도의 조급함이 밀려오는 20 극후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철이 없게도 나는 여전히 조금 더 길게 봐서 내 앞길을 선택하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한다. 길게 보겠다는 말에 특별하거나 고상한 의미는 없다. 그저 내가 지금만 살 것이 아니고, (별 탈이 없다면)나이 40, 50, 60이 되어서 까지 잘 살아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겠다는 뜻이다. 29살이란 나이는 당장 우리끼리 놓고 봤을 땐 굉장히 많은 나이처럼 느껴지지만, 인생 도표를 쭉 펼쳐 놓고 위에서 내려다 본다 치면 아직까지 무척이나 어린 축에 속하는 나이일 터다. 그래서 급하고 싶지 않다. ‘언제까지는 취직해야 하는데…’, ‘뭐가 됐든 취업부터 하고 보자’ 하는 마인드로 잘 알지도 못하던 기업에 자소서 60개 70개씩 갈아넣어 하나 걸려 들어가 인생을 바치고 싶진 않다. 다른 친구들은 모르겠는데, 적어도 나는 그런 보편적인 방식으로(이게 보편적이라는 사실도 슬프다) 보편적인 취업을 해서는 행복하게 여생을 보낼 자신이 없다. 그래서 바로 앞만 보기 보단 조금 세상 많이 산 어르신 시점에서 이 취업 문제를 보고 싶다는 거다. 결코 어린 축이라고 할 수는 없을 40대, 50대가 되었을 때의 삶. 지금으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분명 언젠가는 마주할 그 시기. 나는 지금보다 그 때를 잘 살아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뜬금없지만 쓰고 보니 글이 너무 길어 이미지 하나 정도 있어야 할 거 같아서. 페루 갔을 때 쿠스코 입성하던 순간이다. 하루하루 행복했지 


그러면 저 시기를 잘 살아내려면 지금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게 있을까? 내 생각엔, 슬프게도 결국 취업 잘 하는 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존나 힘들지만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 앞으로 남은 내 삶 거의 대부분 영역을 직업과 직장이 차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그 좋은 직장이란게 도대체 뭐냐는 물음이 생긴다. 연봉이 높은 회사일까? 안정적인 노후가 보장되는 직업?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해주는 회사? 그렇지 않으면 비록 연봉도 낮고 복지 혜택도 형편없더라도 누구나 들으면 알 만한 브랜드 후광을 누리게 해주는 회사 일까? 음, 글쎄. 사실 이건 아주 주관적인 부분이라 개인마다 판단이 다 다를거다. 근데 일단 나는 연봉이 높은 회사는 ‘좋은 회사‘의 필요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초봉을 얼마나 받느냐 같은 문제는 내가 회사를 선택하는 데 있어 꽤 후순위에 위치해 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일단 나는 초년의 영광이 중장년의 영광까지 보장한다고는 믿지 않는다. 특히나 돈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20대 중반 대학 졸업하자마자 S 전자에 입사해 초봉 5~6천을 받는 영광을 누린다고 해서, 그 초봉의 영광이 40, 50대의 영광까지 보장하지는 않을거란 말이다. 이는 우리 부모님 연세가 많으시다보니 자연스럽게 형성된 신념이다.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쯤 이미 우리 아버지는 환갑을 향해 내달리고 계셨고, 그러다 보니 나 역시 주변 친구들의 부모님들보다 최소 5년에서 최대 10년은 앞서 보는 이야기들을 매일같이 듣게 됐다. 뭐, 인생사 새옹지마 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전래동화같은 그런 이야기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내 신념을 형성하게 했을 정도로 굉장히 설득력이 높았던 이유는, 아버지께서 늘상 말씀하시던 그런 이야기들이 모조리 실제 사례였기 때문이다. 어릴 때 외제차 몰고 나타나셔서 나 한 번씩 태워주고, 권 사장도 골프 한 번 배워봐야 하지 않나? 하시던 분들이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 슬슬 ‘생각‘이란 걸 할 수 있게 됐을 시점에는 더이상 그런 삶을 영위하지는 못하고 계시는 경우가 하고 많더란 얘기다.


삶은 어떻게 흘러갈 지 모른다. 특히 돈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진짜 존나게 돈이 많지 않은 이상 돈은 영원하지 않은 것 같다. 10대 대기업에서 사장까지 역임하고 퇴임하신 분이 중견기업, 중소기업 임원 혹은 고문으로 하나 하나 내려가다 결국 나이 들어 지금은 아파트 경비원을 하고 계시고, 학교 교장까지 마치고 나와 연금 두둑이 받고 사실 분이 왠지 모를 이유로 공장에서 조립 알바를 하시기도 한다. 이건 다 아버지 친구들의 실제 사례들이다. 물론 제각각 내가 알 수 없는 사정들이 있으실 거다. 그냥 심심해서 일하시는 분들도 있겠고, 자식 뒷바라지 문제로 생각보다 지출이 너무 많았을 분도 있겠고, 씀씀이가 너무 커져서 고위 공무원 연금이나 대기업 임원 퇴직금으로도 충당이 안되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이유가 뭐가 됐건 간에, 일단 겉으로 보이는 사실만 놓고 보면 저 분들은 원래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지위의 인간이 결코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는 지위의 일들을 환갑이 넘어서 하고 계신다는 거다. 이런 보고 들은 경험들이 쭉 쌓인 까닭에 나는 무척 자연스럽게 아주 젊은 시절에 돈을 얼마나 버느냐는 인생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그렇게까지 크게 중요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게 된 거다.


그럼 다른 요소들은 어떨까? 안정적인 노후가 보장되는 직업 혹은 직장? 그딴 건 없다고 본다. 특히 내가 늙어서 노후를 살아야 하는 시기에는 더욱 그럴거다. 공무원, 공기업조차도 그렇다. 쟤네들이 앞으로 40년 50년 뒤에도 여전히 안정적인 직장일지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당장 2006년만 해도 스마트폰 개념 꺼내면 그거 20년 뒤에나 실현될 미래 과학 취급 받았다. 근데 현실은 2007년에 아이폰이 나와버림. 안정적 노후는 그냥 로또같다. 영화 <업(up)> 첫 씬에서도 나오듯이 노후 위해 저금통에 열심히 돈 모으더라도 중간 중간 어떻게든 큰 돈 나갈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연금 고갈과 고령화, 저출산 등으로 고단한 미래가 뻔히 예측되는 상황이다. 사회가 내 나이 7, 80 될 때까지 이런 문제들을 발전한 과학과 혁신적인 시스템으로 극복하는 데 성공한다면 뭐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정적인 노후를 보내게 될 거 같다. 하지만 실패한다면 반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21세기 이후 가장 끔찍한 노후를 보내게 되지 않을까. 어쨌든 안정적인 노후를 20대부터 준비하고 기대하는건 좀 웃기는 짓 같다. 애초에 20대부터 노후 걱정하면서 살 거면 그게 사는 건가 싶기도 하고. 아, 물론 내가 저축이나 적금을 안 들거란 얘기는 아니다. 나도 사람이라 불안하기 때문에 넣긴 넣을 거임.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브랜드 후광. 이거 잠깐 누려서 뭐할 거냐……. 물론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있겠지. 명함 하나 딱 줬을 때 오오- 하는 사람들의 시선과 질시에서 오는 쾌감... 근데 나는 아니다. 40 중반 넘어서까지 그걸 잘 누릴 수 있다면야 어느 정도 성공이겠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할 확률이 높거든. 자기가 다니는 회사 브랜드로 자신의 겉을 포장한 삶은 결국 40중반, 50대를 넘어가면서 뒤집어지는 경우가 많더라. 이것도 뭐 그냥 주변을 둘러보니 그렇더라.


저녁이 있는 삶. 이건 되게 중요한 거 같다. 한 때는 내가 원하는 Best 조건이었다. 내가 보편적인 방식으로 보편적인 회사에 들어가기는 싫다는 이유는 영화 <모던 타임즈>같은 거다. 기업이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속 톱니바퀴 중 하나가 되어 돌고 돌다가 녹이 슬면 교체되고 그 존재조차 잊혀버릴 그런 삶이 싫어서다. 그래도 저녁이 있다면 최소한 내가 꾸준히 자신을 가꿀 시간 정도는 생길 게 아닌가. 스스로를 놓치지 않게 된다는 거, 이건 정말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톱니가 되고 싶지 않아


그런데 이제와서는 ‘저녁’조차 한 칸 단계를 내리게 됐다. 이건 독일에서의 인턴 경험 때문이다. 나는 작년 1월부터 7월까지 독일에서 해외 인턴을 한 적이 있다. 이 회사는 사실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하는 회사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참 독일답게도 5시 10분 종 땡 치면 전직원이 키보드의 Alt F4를 누른 뒤 드르륵 의자 밀고 일어나 집에 갔다. 물론 집에 가서 할 게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으나 그건 일단 여기서는 제껴두자. 어쨌건 실제로 그렇게 잘 지켜지는 ‘저녁‘을 3~4개월 정도 누리고 있는데, 어느 날 뭔가 번뜩 생각이 딱 드는 거다. “아 이건 아니구나!” 하는. 문제는 저녁이 아니라 오전 오후 중 업무 내용에 있었다. 그냥 학교만 다닐 때는 몰랐는데 알고보니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느냐’, 이게 진짜 어어어엄청나게 중요한 부분이더라. 보장되는 저녁이 나를 나로 유지시키고 발전시키는 게 아니다. 내가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느냐, 어떻게 시간을 보내느냐가 나를 재구성한다. 회사에서 맨날 창의력은 개나 준 반복 작업만 하면서 아 얼른 퇴근하고 싶다 하는 생각으로 머리 가득 채우고 살았더니 멍청해지더라. 어쩔 수가 없다. 머리를 열심히 굴리질 않는데 어떡하겠어. 노래도 안 부르면 부르는 방법을 까먹고, 글도 안 쓰면 점점 못 써지듯이, 머리라는 것도 안쓰면 나중엔 쓰는 방법을 잊게 되더라. 한 3개월 무기력하게 퇴근만 바라고 살다가 겁나서 비싼 해외 택배비 내고 궁여지책으로 책이라도 읽자고 10권 정도를 주문하고 퇴근 후에는 브런치랑 블로그에 이런 저런 글을 올리며, 어떻게든 머리를 써먹으려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물론 업무 외로는 좋은 경험도 많이 했다. 독일이라는 대표적인 선진국에서 6개월을 살며 여러가지 많이 배웠고 생각도 깊어졌다

독일에서 인턴을 마치고 귀국해서는 운이 좋게도 곧바로 또다른 인턴 기회를 얻게 됐다. 네이버 비즈니스 판이었는데 매주 3~4개의 비즈니스 인사이트가 담긴 기사를 쓰는 게 주업무였다. 업무 라이프는 독일에서랑 정반대였다. 매주 3~4개 기사를, 그것도 비즈니스와 관련된 내용을 쓰려니 매일매일 뇌 회로가 타들어 갈 정도로 머리를 굴려야 했다. 3~4개 기사를 쓰려면 못해도 발제거리를 5~6개는 확보해둬야 했고, 이 때문에 퇴근 후, 주말을 가리지 않고 매일같이 경제지를 뒤지고 외신을 번역해야 했다. 솔직히 존나 힘들었다.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출근하면 하루 뚝딱이었다. 인턴 동기들이랑 얘기할 때는 불평도 종종 했다. 그런데 정말 정말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런 생활이 썩 나쁘지 않았다. ‘이게 일이지’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만일 지금 신이 내 눈 앞에 나타나 “일주일 내내 쉬지 않고 머리 굴리고 고민하며 새로운 콘텐츠 찍어내는 일 할래, 아니면 회사에서 매일 같은 반복 업무 착착 하고 일찍 퇴근해 신선처럼 둥실둥실 지낼래?”라고 선택지를 준다면 나는 두말없이 전자를 택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회사와 업무는 앞으로 내 인생 거의 대부분 영역을 차지할 미치도록 중요한 요소다. 이 중요한 부분을 그냥 기계처럼 보내도록 놔두자고? 절대 그럴 순 없지.


결국 내가, 이번엔 스스로의 경험으로 깨닫게 된 진리는 ‘좋은 회사’의 조건이란 무엇보다 회사의 방향과 성격, 그리고 회사에서 내가 맡게 될 업무가 얼마나 내 가치관과 잘 맞느냐는 점에 있다는 것이다. 난 저것들이 내 가치관과 맞으면, 저녁 조까. 저녁 필요없다. 내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나날이 발전하고 성과를 경험할 수 있으면 셀프 야근도 할 수 있다. 물론 이것도 지금의 어린 생각일지도 모른다. 막상 취직해서 좀 굴려지다 보면 독일에서의 멍청한 업무 라이프가 그리워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그 때 경험해봐야 알 수 있는 문제다. 그래서 지금 첫 직장을 선택하는 내게 있어서 No.1 고려사항들은 ‘내가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회사의 비전은 뭔가‘ 같은 것들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 글의 진짜 제목은 ‘두려움’이다. 뭐가 그렇게 두렵냐면, 내가 그런 회사에 취직하지 못해서 정말 마지못해 회사를 다니며 퇴근만 기다리고 사는, 말하자면 ‘살기 위해 사는’ 그런 삶을 평생 살게 될까 그게 두렵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그런 삶을 살 확률이 내가 바라는 삶을 살 확률보다 더 높을 것이기 때문에 그게 너무 무섭다. 솔직히 급해지지 않겠다고 하긴 했지만 인간인데, 또 내 나이 숫자 보고 완전히 침착할 수는 없잖아? 근데 급해진다는 건 자소서 다 때려 박겠다는 결과를 낳을거고 그러면 아무 직장이나 들어갈거고 그러면 아주 평범한, 살기 위해 사는 삶을 살게 되겠지. 아 그게 싫다. 아 너무 무섭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왜 스타벅스를 찾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